그런데 2, 3분이나 지났을까? 떠들썩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서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관악사지 암각문과 몇 개의 안내문도 읽고 반쯤 핀 생강나무꽃을 살펴본 후 커다란 함성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곳으로 갔다. 어찌된 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환호하며 게임을 하고 있는 그곳에는 '법당지'라는 팻말과 '문화재를 사랑하자'는 팻말이 서 있었다. 10여 미터는 족히 됨직한 현수막이 법당지 한가운데 걸려 있었다. 내용인즉 한 산행모임의 신입회원 환영 행사, 어림짐작 100여 명은 될 것 같았다. 남녀 두 사람이 발을 묶고 달리다 풍선을 터트리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왁자지껄, 환호하고 박수치며 열광했다. 풍선 터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마치 운동회를 보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먼지가 일고, 그들의 함성으로 관악사지는 들썩들썩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밥을 먹던 일행 중 한 사람은 "밥 먹을 자리 잘못 잡았다. 정말 해도 너무하네!"라며 툴툴거리기도 했다. 눈살을 찌뿌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과 같은 색의 조끼를 입고 일행과 조금 떨어져 전화를 하고 있는 지긋한 나이의 사람에게 "사적지인데.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요"라며 말했지만 눈만 껌벅할 뿐, 대꾸 한마디조차 없다. 우리는 청산당의 부도 명문과 석축의 조각 맞춤을 한참 살펴본 후 관악사지를 뒤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시작 얼마 후까지 이들의 함성은 관악산을 뒤흔들고 있었다.
관악사지에는 사시사철 사람이 많이 몰리긴 몰리나 보다. 민들레와 양지꽃, 냉이와 보리뱅이, 질경이 등 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들이 관악사지 주변에 많은 것을 보면. 등산 인구의 증가가 생태학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좋지 않단다. 이처럼 옷이나 신발에 씨앗들이 묻어 옮겨져 평지에서 주로 자라는 식물들이 높고 깊은 산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30여 분후 우리는 사당 암릉구간으로 접어들어 오른쪽의 깃대봉과 젓꼭지 바위가 있는 능선을 바라보며 내려왔다. 봄꽃이 거의 피지 않아 산행 중 꽃을 막 피운 생강나무 3그루만 보다가 낙성대역 가까이 이르러 양지에서 꽃망울을 막 터트린 진달래 몇 그루를 만나니 반가웠다. 오후 4시를 훌쩍 넘겼는데 한낮의 햇살처럼 환한 것이 며칠 새 봄볕이 많이 길어졌다.
1년 가까이 산행을 하는 동안 산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실 그동안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어떤 믿음이 있었다. 산이 좋아 산행을 하는 만큼 산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만큼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갖췄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제 만난 한 산행모임의 운동회를 방불케 할 만큼 시끌벅적한 한영행사는 어떻게든 이해되지 않는다.
문화재에 대한 기본 소양이 부족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산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산행모임이라면 더욱 더 앞장서서 말이다. 그들을 보며 문득 지난해 가을 영봉 가는 길에 만난 한 일행이 떠올랐다. 열 명 남짓의 그들은 커피를 마실 물을 끓이고 있었다. 산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그들이 오를 산들이 가엾고 염려된다.
내가 아는 한 문화재, 즉 사적지에서 운동회를 방불케 하는 게임은 안 된다. 문화재 보호법상 있어선 안되는 일이며 소양부족이다. 규제, 그 실제는 어떨까. 아래는 5일(월요일) 오전 11시쯤 문화재청(042-481-4650)과 과천시청(502-5001~5006)에 전화, 오후에 연주암에 전화 통화한 그 내용이다.
- 어제 과천 관악사지에 갔는데 한 산행단체가 법당지에서 운동회를 방불케 하는 게임을 하더라. 문화재보호법의 이에 대한 규제는 어떤가.
문화재청 : "예전처럼 유적지나 사적지 등에서 무조건 엄숙해야 한다는 아니다. 현충원과 같은 추모시설이 아니라면 그곳에서의 행사나 게임을 100% 차단하지는 않는다. 유적지에서의 백일장이나 사생대회, 간단한 수건돌리기 정도의 레크레이션은 허용한다. 다만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한다(상황설명과 게임정도를 설명하자). 그 정도라면 국민의 문화재에 대한 소명 부족이다. 아마도 그런 행사라면 과천시청에서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과천시청에 전화하여 그에 대해 알려 답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위 문화재청과 같은 질문에 대해,
과천시청 : "원래는 경기도청 문화재과에서 쉴 수도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는 정자 등과 같은 편의시설들을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지금처럼 개방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허가하지 않았다.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그 단체 이름을 알려주면, 과천시의 모임이면 제재 등을 해보겠다. 관악사지의 소유자는 연주암이다. 관리도 연주암에서 한다. 연주암에서 관악사지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연주암에 전화해 그런 행동을 자제해달라는 팻말을 세워 달라고 해보면 좋을 것 같다."
- (과천시청에) 유적지로 발굴, 문화재로 지정되면 소유자와 해당청이 동시관리 해야 하는 걸로 아는데
과천시청: "직원들이 수시로 올라가 돌아본다. 지난주에도 올라갔었다. 관악사지는 산 정상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직원이 늘 머물면서 관리하기 힘든 면도 있다. 관리와 팻말 설치는 우리 임의로 함부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4월과 5월에는 등산객들이 많으니 경기도청 문화재 관련부서와 연주암과 상의, 관련 안내문 설치를 고민해보겠다."
- 과천 관악사지 소유자가 연주암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관리하는가.
연주암 : "그런 일이 워낙 많다. 그곳만이 아니라 염주암 경내에서도 무분별한 행동을 하는 등산객들이 많다. 그에 대해 말하면 '왜 참견하냐?'며 화를 내며, 말한 사람을 도리어 바보로 몰아버리는 경우도 많다. 연주암 경내에서도 이 지경인데 그곳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사람이 늘 지켜 서서 그런 일들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보셔서 알겠지만 여건상 그럴 수 없다. 원래는 울타리를 둘러달라고 했는데 어떤 이유인지 그것도 해주지 않는다(현재 3곳 법당지 일부에 30센티 높이 정도의 울타리를 3면만 둘렀음). 등산객들이 워낙 많이 몰리다보니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