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본부가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일때 사용하는 피켓. 오른쪽이 법원행정처에서 보낸 공문
신종철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30일 공문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설립신고가 돼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0일 출범식 및 간부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불법적인 단체활동을 강행함으로써 관계기관에서 관련자들에 대해 조사를 하거나 징계처리를 진행 중에 있다"며 "앞으로 법원에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법원노조 소위 전공노 명의로 하는 불법적인 활동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원노조는 소위 전공노 명의의 현수막, 벽보 부착, 선전유인물 배포, 코트넷(법원내부통신망)을 통한 게시문 게시, 피켓시위, 법원청사시설물 무단 사용 등 일체의 불법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협조해 달다"고 요청했다.
이와 관련,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오병욱 본부장은 5일 기자와 만나 "법을 집행하는 법원에서 설립신고 반려에 대해 소송 중인 공무원노조에 대해 '불법단체'라고 규정하는 무지한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오 본부장은 "정부기관인 행정안전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법부에서 설립준비 중인 노조를 탄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며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법원에서 헌법에 보장된 노조의 자율적인 단결권마저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노조의 자주권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조치인 만큼 이번 공문은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권옹호 기관인 법원에서 이렇게 노조탄압에 앞장선다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며 "법원당국은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역사의 큰 흐름에 역류하지 않도록 사법부다운 중심을 잡아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본부 "전공노 불법단체 아니다... 사법부가 행정안전부 하부기관 아닌지"이번 공문을 받은 법원본부는 즉각 긴급회의를 갖고 지난 1일 '이상훈 법원행정처 차장 법관직을 즉각 사퇴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현재 법원당국이 벌이고 있는 노조탄압은 법과 상식을 초월해 진행되고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법원본부는 "법치행정의 모범을 보여야 할 행정안전부가 법치를 훼손하고 있는 가운데, 인권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이를 견제하기는커녕 부화뇌동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며 "사법부가 '행정안전부의 하부기관'이 아닌지 또 '사법부는 따라쟁이'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질타했다.
법원본부는 "통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의결절차에 의해 탄생한 정당한 노조"라며 "다만 현 정권이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보완요구에 매번 응해도 설립신고가 수차례 반려되고 있을 뿐, 전공노는 불법단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법원본부는 "전공노는 현재 노동부의 부당한 설립신고 반려 처분에 대해 행정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한 만큼 법원당국은 최소한 행정법원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전공노에 대한 적법 여부 판단을 유보해야 마땅하다"며 "그럼에도 법관 신분을 갖고 있는 이상훈 차장이 판결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예단하는 공문을 보낸 것은 행정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더구나 이상훈 차장은 차장직무가 끝나면 다시 고등법원 판사로 돌아가 재판을 할 수도 있고, 대법관으로 임명될 수도 있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따라서 이번 공문은 향후 법관으로서 재판을 진행하는데 있어 노조에 대한 편협된 인식을 갖고 있음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라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법원본부는 그러면서 "이상훈 차장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법원본부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며 "만약 이와 같은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전공노 법원본부는 향후 이상훈 차장을 대법관 임명 부적격자로 분류해 끝까지 임명 저지 투쟁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관 승진의 로얄 로드(Royal-Road)로 통한다.
법원본부가 강력 반발하는 것은 현재 노동부가 3회에 걸친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를 반려해 놓고 불법단체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설립신고가 되지 않은 단체는 법외노조이지 불법단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공무원들 "권력의 시녀가 되는 사법부인가" 성토이번 법원행정처의 공문 발송에 대해 법원 일반직공무원들은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법원공무원 A씨는 "행정안전부에서 내려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사법부에서 할 일이냐, 권력의 시녀가 되는 사법부인가"라고 따져 물으며 "법을 제일 잘 아시는 분들이 불법을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게 이해가되질 않는다"고 성토했다.
B씨도 "이런 공문이 법원에서 시행되고 집행된다는 것에 좌절을 느낀다"며 "사법부가 행정안전부의 앵무새는 아니지 않느냐"고 개탄했다. C씨도 "법원가족들은 법관은 법과 상식, 양심을 겸비하고 사법부 독립의지가 강한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 공문은 그런 인식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D씨는 "대법원장을 옆에서 보좌하는 고위직 판사가 이 모양이니, 집권여당에서 한 번 건드려 볼 만도 하다"고 비꼬며 "과연 현 정부의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반려가 노조활동 보장을 위한 관리 차원인지 아니면 탄압이 목적인지 생각해보고, 사법연수원 교재에 법외노조의 지위를 한 번 필독해 보기 바란다. 판사의 신분으로 함부로 불법을 논하다니 매우 불쾌하다"고 꼬집었다.
행정관리실장 "법원직원들 보호하기 위한 것"사태가 악화되자, 법원행정처 강영욱 행정관리실장은 2일 법원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전공노 활동 중지 공문 관련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사법행정을 책임진 법원행정처로서는 공무원노조를 담당하는 정부부처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전공노' 명의로 하는 활동을 금지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며 "그것이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강 실장은 "법원직원이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관을 관철하려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의심받게 만드는 면이 있으므로, 법원직원은 법관과 마찬가지로 사법부 공무원으로서 독자성과 순수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 공무원이 행정부공무원과 동일한 연합체를 구성한다면 행정부의 간섭은 예견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노조는 맞서 싸우는데, 법원행정처는 굴복하는 모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