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보낸 계절, 기어이 봄은 오고 있습니다

[포토에세이] 초계함 장병들에게 드리는 봄꽃, 봄빛깔

등록 2010.04.05 19:43수정 2010.04.0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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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시멘트 갈라진 틈에서 봄을 맞이한 꽃다지, 어떤 봄의 빛깔이 보이시는지요? ⓒ 김민수

▲ 꽃다지 시멘트 갈라진 틈에서 봄을 맞이한 꽃다지, 어떤 봄의 빛깔이 보이시는지요? ⓒ 김민수
 
시멘트 갈라진 틈 사이 뿌리를 내린 꽃다지, 지난 겨울 내내 벌벌 떨며 그 자리를 지키더니만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저 작은 꽃들도 보듬어 이렇게 피어내는데, 기어이 피어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떠나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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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단풍 돌틈에서 자란 돌단풍, 어떤 봄의 빛깔이 보이시나요? ⓒ 김민수

▲ 돌단풍 돌틈에서 자란 돌단풍, 어떤 봄의 빛깔이 보이시나요? ⓒ 김민수
 
돌 틈을 친구삼아 피어나는 돌단풍, 그리하여 꽃말도 '생명력'입니다. 이 꽃이 피어날 무렵 당신들은 추운 바닷가 속에서 사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당신들을 모두 보내버렸습니다. 그 꽃처럼 피어나는 기적을 간절히 바랐지만, 기적은 거짓과 숨김이 있는 곳에서는 피어나지 못하는 법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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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살며시 뿌리는 진달래, 어떤 빛깔이 보이시나요? ⓒ 김민수

▲ 진달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살며시 뿌리는 진달래, 어떤 빛깔이 보이시나요? ⓒ 김민수
 
그 어느 해 봄, 진달래가 필 무렵 절친하던 친구를 먼 이국땅에서 보냈습니다. 진달래꽃 즈려밟고 가듯이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할 틈도 없이 그 친구는 영영 떠났습니다. 검푸른 바다로 가신 그대들, 봄 되면 피어나는 진달래를 볼 때마다 생각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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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시멘트 블럭 위에서 자란 이끼의 삭, 어떤 빛깔이 보이시나요? ⓒ 김민수

▲ 이끼 시멘트 블럭 위에서 자란 이끼의 삭, 어떤 빛깔이 보이시나요? ⓒ 김민수
 
얼마나 척박한 곳이었을까요? 그럼에도 젊음과 청춘을 불태우며 살았을 그대들, 저 시멘트에 흘러내린 진흙을 붙잡고 기어이 피어난 이끼, 그리하여 언젠가는 저 시멘트 조차도 흙으로 만들 이끼를 닮은 그대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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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노랑 병아리 봄소풍 나온듯한 개나리, 또 다른 빛이 보이지 않나요? ⓒ 김민수

▲ 개나리 노랑 병아리 봄소풍 나온듯한 개나리, 또 다른 빛이 보이지 않나요? ⓒ 김민수
 
그러나 당신들의 수고를 힘있는 나리들께서 다 영광받으시고, 그대들은 그냥저냥 흐드러지게 피어나 별 대접도 받지 못하는 개나리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슬퍼하지 마세요. 아무리 오는 봄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노란 개나리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봄이라는 것을 아니까요. 그대들이 그런 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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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초 꽃이 아닌 것 같은가요? 저도 꽃이랍니다. ⓒ 김민수

▲ 사초 꽃이 아닌 것 같은가요? 저도 꽃이랍니다. ⓒ 김민수
 
그저 잊고 살았습니다. 꽃이 피어도 꽃인줄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잡초같은 꽃처럼, 그렇게 당신들의 수고를 잊고 살았습니다. 이젠, 조금이라도 당신들의 수고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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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의밥 봄철, 배고픈 꿩들의 밥이 되는 것일까요? ⓒ 김민수

▲ 꿩의밥 봄철, 배고픈 꿩들의 밥이 되는 것일까요? ⓒ 김민수
 
이른 봄, 양지바른 곳에서 피어나고 익어가는 꿩의밥입니다. 혹, 보신 적 있으신지요? 겨우내 배고팠던 꿩들이 먹는 것이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라 상상을 합니다. 먹을 것 없는 새를 위해서 피어나는 꽃, 그런 꽃같은 이들이 그대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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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마리 둘둘말린 꽃마리, 연분홍색과 보랏빛 아니면 청색이라고 할까요? ⓒ 김민수

▲ 꽃마리 둘둘말린 꽃마리, 연분홍색과 보랏빛 아니면 청색이라고 할까요? ⓒ 김민수
같은 꽃대에서 피어나도 아무렇게나 피어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순서대로 피어나는 것이 꽃이랍니다. 이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다고 합니다. 조금 늦게 와서 조금 빨리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대들의 삶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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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팝나무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저 작은 꽃망울 속에 하얀 꽃이 들어있습니다. ⓒ 김민수

▲ 조팝나무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저 작은 꽃망울 속에 하얀 꽃이 들어있습니다. ⓒ 김민수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망울 같았던 그대들, 그대들 피어나면 황홀했을 수많은 일들이 안타깝습니다. 그대들을 피어나도록 지켜주지 못한 우리의 무능함, 그대들이 꺾였을 때 왜 그랬는지 분명히 밝혀줄 것이라고 믿었던 배신감. 그 모든 것이 슬픈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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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오랑캐꽃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이맘때 오랑캐들이 많이 쳐들어왔다네요. ⓒ 김민수

▲ 제비꽃 오랑캐꽃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이맘때 오랑캐들이 많이 쳐들어왔다네요. ⓒ 김민수

 

여전히 그대들의 죽음을 농락하는 오랑캐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 오랑캐들의 침략을 그렇게 받았지만 지금까지 지켜왔습니다. 그대들의 죽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앞으로도 지켜갈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를 유린하려는 오랑캐 같은 것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대들 보낸 계절,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습니다. 천안호 젊은 영령들이여, 그 곳에서는 편히 쉬소서!

2010.04.05 19:43 ⓒ 2010 OhmyNews
#초계함 #천안호 #꽃마리 #사초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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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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