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들을 앞에 놓고 추달하자 세 여인은 펄쩍 뛰었다. 무고한 자신들을 음해한다는 것으로 제법 힘깨나 있는 기관을 통해 으름장을 놓았다. 아닌 게 아니라 세 여인이 구금되자 여기저기가 들썩거려 관아에선 당황한 나머지 더 이상 들추지 말고 이쯤에서 봉합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여러분들이 애쓴 건 압니다만, 조사를 강행했다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소. 김규수야 세상을 떠났으니 별 수 없다 하더라도 산 사람은 살아야질 않겠소. 자네들도 관매파(觀媒婆)를 동원해 비구니들을 조사하지 않았는가. 여자로 판명났으니 이쯤에서 물러나시게. 여자들이 젊다보니 일시적으로 장난친 걸 풍속을 헤쳤다고 벌 줄 수는 없잖은가."
정약용은 자신이 본 적 있는 의서 <기담괴사>를 떠올렸다. 거기 쓰인 것은 어떤 사내가 남녀 생식기를 두 개 가지고 있는데 어느 것이든 필요에 따라 쓰는 용도가 다르다 했다. 호흡법을 익혀 자신의 남근을 뱃속에 넣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쓴다는 말이었는데 남근이 들어간 자리는 여인네의 도끼 맞은 자국과 비슷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의 판관은 그를 잡아들여 일벌백계로 다스렸다.
"얼마 전 참으로 해괴한 기록을 보았다. 새라는 짐승은 두 개의 난소를 가지고 태어나는 데 왼쪽에 있는 건 성숙하나 나머지는 흔적만 있을 뿐이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왼쪽 것을 못 쓰게 되었을 때엔 즉시 오른쪽 난소가 발육을 시작한다. 괴이한 것이 어찌 이뿐이랴. 발육이 된 난소는 엉뚱하게 고환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니 어찌 놀라지 않으랴. 그런가하면 굴(石花)도 섭씨 20도에서 22도 사이에 일 년에 한 번은 암컷이 되고 또 수컷이 된다. 항차 사람이라 해서 미물과 다를 바 없다. 인간들이라 하여 다 온전한 몸을 가지고 있겠는가. 어떤 자는 남녀의 음양을 모두 달고 나오는 괴물도 있으니 마땅히 이것들의 뱃속을 갈라 그것들이 어찌 됐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판관이 가른 사내의 뱃속은 여느 사람과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사내 물건이 뱃속으로 들어갔는가? 그것은 특수한 호흡법이었다. 호흡법을 이용해 자신의 남근을 뱃속으로 감추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정약용은 여승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 후 그들의 아랫도리를 까발린 후 그곳에 참기름을 발랐다. 미리 준비한 개를 끌고 와 그곳을 핥게 하자 주지 스님 얼굴은 순식간에 흑빛으로 변했다. 아무리 호흡으로 마음을 조정하려 해도 눈치 없이 핥아대는 개의 혀 놀림 때문에 잘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뱃속에 숨겨둔 남근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그 물건을 보는 순간 관매파는 질겁해 엉덩방아를 찧었다. 정약용은 판결문을 썼다.
<욕심이 많기로서니 스님으로 변장해 샘을 찾아 나섰다는 건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샘을 찾는 욕심의 불길에 기름을 뿌리고 냄새나는 버들가지를 씻어 그것을 멋대로 휘두르며 붉은 토끼를 타는 건 차마 볼 수 없다. 더구나 버들가지로 가는 버들을 치는 장소가 사문(沙門)임을 볼 때 그 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붉은 토끼란 여인네의 성숙한 음문을 가리킨다. 이후로 색을 밝히는 스님을 웅니(雄尼)라 부른 것은 '남자 여승'이란 말이다. 수인이 처형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를 것이오. 나는 사람들 마음에 깊숙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한 탓에 내가 죽었어도 명망 있는 사대부가에선 복되고 즐거운 날엔 색동저고리를 입고 나의 죽음을 기릴 것이오."
관원들은 수인이 헛소리처럼 뱉은 말을 믿지 않았으나 명절이 되자 도성 안 어린 남녀들이 수도 없이 색동옷을 입고 돌아다녀 관원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소문은 도성 안을 떠돌며 공덕암에서 불공을 드린 여인들을 좋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게 비록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한 번이라도 그곳을 다녀온 여인은 중죄라도 지은 듯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했다.
이런 저런 소문이 꼬리를 잇자 그곳에 있던 비구니들은 야반도주해 버리고 학덕 높은 스님이 그곳을 수리해 보덕암(普德庵)으로 바꾸었다는 말이 흘러 다녔다. 소문이야 어떤 형태든 세월이 약이다.
다섯 해가 지나는 동안 예전의 좋지 않은 풍문은 사라지고 과시 준비를 위해 도성으로 올라온 선비들이 잠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들르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김진사의 둘째 아들 상헌이 남태령 고갯길에서 괴한들에게 피습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관아에선 창상(創傷)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고 흉기에 대해 수소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상용 대감의 몸에 난 상처를 대비해 정약용은 그 자신 의문점으로 생각한 부분을 건드렸다.
"이 반달 모양의 조각도는 연전에 사건을 일으킨 강변칠우라는 자들이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관아에서 일손이 부족해 어지간한 사건은 다루질 못했습니다만, 김진사 아들이 그 같은 창상을 입고도 발고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 일은 연유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사해볼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정약용은 연전에 사고를 당한 이상용 대감의 검시기록을 참조하기로 하고 당시 초검관이 작성한 시형도를 펼쳤다. 그곳엔 어쩌면 사건과는 무관해 보일지도 모르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 관에서는 일찍부터 강변칠우란 불법단체의 모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은밀히 그들을 탐색해 왔는데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시를 읊고 술을 마시므로 그것만으로 잡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들이 난행하는 걸 볼 수 없었으나 한 가지 의심스러운 건 그들이 한결같이 '마음에 부처를 새긴다'는 말이었다. 부처를 마음에 새긴다는 건 술과 육식과 탐심을 멀리 해야 하는데 젊은이들이 그런 것관 상관없이 시주풍류(詩酒風流)를 즐긴 걸 보면 아무래도 의심 가는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김진사 아들이 강변칠우들에게 피습을 당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정약용은 무엇보다 보덕암을 탐문하려는 생각을 굳혔다. 상처를 입은 상헌의 형이 심신을 수양키 위해 거기 머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으나 정약용이 찾아간 보덕암에 김상운은 없었다.
정약용을 맞이한 주지 스님은 염주 알을 고르게 굴리며 무표정한 낯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주님께선 누구를 찾으신다 하셨소? 재동의 김진사 큰아들이라구요? 그런 분은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거 이상한 말이군요, 스님. 틀림없이 이곳에 갔다 했습니다만···."
"젊은이들이야 오가다 길이 어긋나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요."
"그럼 그 댁 둘째 도령은 왔습니까?"
"그 분도 오지 않았습니다."
정약용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댁에선 이곳으로 갔다 했고 여기에선 오지 않았다 하는데 그럼 어디로 사라진 것입니까, 스님?"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다는 것인지 말을 하기 싫다는 것인지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불호만 중얼거렸다. 정약용은 그곳에서 나와 불현듯 명부전으로 향했다. 그곳엔 죽은 자의 위패를 모셔놓는 곳이기에 무언가 실마리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과연 공중에 매단 지전(紙錢)에 김상운(金尙雲)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이것은 김진사의 큰아들이 이곳 보덕암에서 죽었다는 얘기다. 정약용은 곧장 주지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께선 이곳에 오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어찌 물으십니까. 소승은 일곱 달 전 이곳 암자에 왔습니다. 암자란 이름을 쓰는 건 이곳이 산사(山寺)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지요. 암자라 해도 '격'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떨어질 뿐이지요."
정약용은 얘기의 방향을 틀었다.
"내가 여기 온 건 김진사의 큰아들이 이곳 암자에서 머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허면?"
"그 댁 둘째 아들이 칼을 맞고 목숨이 위태로워···."
"얼마나 위태롭습니까? 칼에 찔린 상처가 그 정도면 목숨은 구할 것이라 했는데···."
"조금 전엔 김진사의 아들이 오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그 젊은이들은 오지 않았지요. 이곳 암자에 온 건 젊은이들이 아니라 과거의 원령들이었어요. 한때 산중에서 동고동락 하던 수인(垂仁)이란 분이 내 사형입니다. 그때는 부처님의 말씀만을 따르던 훌륭한 불제자였는데 어느 날 모습을 감추었다 두 해 만에 나타나더니 그 나름의 대단한 도학(道學)을 익혔다는 것이었어요. 그게 무어냐 물었지만 끝내 대답을 않고 떠나갔는데 나중에 들린 풍문엔 이곳에 공덕암이란 암자를 차리고 엽색으로 포교했다는 희한한 말이었어요. 그제야 나는 그 분이 익힌 게 스승이 금기로 여긴 호흡법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스님, 내 스님께 물을 것이니 있는 그대로만 말씀해 주십시오."
주지 스님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관원께선 이곳 암자를 뒤져서라도 찾을 게 있거든 찾으십시오. 소승은 해드릴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음날 해 뜨기 전 김진사의 둘째 도령이 보덕암을 찾아와 어떤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대웅전으로 가서 주지 스님을 만났다. 도령이 꺼내놓은 건 오래된 색동저고리였다.
"제가 아내와 놀이를 즐긴 건 모두 어머니가 들려주신 얘기 때문입니다. 저의 아버님께서 젊었을 적에 어머니의 방을 찾아갈 때엔 사전에 어떤 묵계(黙契)를 주고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묵계에 따라 어떤 때는 착한 선비의 행색으로 어떤 때는 술 잘 먹는 한량으로, 또 어떤 날은 길거리의 무뢰한처럼 거친 사내의 모습으로 찾아갔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저도 아내의 방을 찾아갈 때엔 두건을 썼습니다. 이것은 그 옛날 아버님이 어머니를 찾아갈 때 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의 방에서 이상한 물건 하나를 주었는데 그것은 조각도였어요. 반달 형태의 날(刃)이 선 조각도를 보자 덜컥 의심이 생긴 거죠. 이게 아내의 방에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자신이 아내를 찾지 않은,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으로 인해 아내를 찾아가지 못한 날들을 헤아려 본 거죠. 그 달 보름날을 생각하자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주]
∎관매파(觀媒婆) ; 여인의 은밀한 곳을 조사하는 관아에 소속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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