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게 사막을 건너는 방법, 노래하고 춤춰라

[이란 여행기 47] 사막 체험

등록 2010.04.19 21:38수정 2010.04.1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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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자신의 행복을 주체할 수 없어서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작은 애.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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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애가 앉은 바닥은 하얀 소금기가 느껴졌다. 사막에서 왜 소금이 있는지 신기했다. ⓒ 김은주


야즈드 시내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 케르반사라이에 도착했습니다. 케르반사라이는 예전에 실크로드가 제 역할을 할 때 대상들이 쉬어가던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 실크로드는 여행자 차지가 돼버렸고, 대상 숙소 또한 체험상품 정도로 전락했습니다. 우리 일행 또한 그 옛날 대상들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대상숙소를 이번 여행경로에 집어넣었고, 그래서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대상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여기서 하룻밤을 보낼 것입니다.


짐을 풀고 우린 곧바로 사막으로 나갔습니다. 대상 숙소에서 준비하는 저녁이 다 될 때까지는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 사막을 돌아다니는 게 우리가 할 일이었습니다. 사막은 그간 생각했던 사막하고는 좀 달랐습니다. 가늘고 깨끗한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사하라 사막 같은 사막을 기대했는데 우리가 이란에서 본 사막은 차라리 황무지에 가까웠습니다. 메마른 겨울 들판처럼 그냥 황량한 들판일 뿐이었습니다. 생명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는 대상 숙소에서 키우는 낙타가 남기고 간 배설물 정도였습니다. 간혹 보이는 나무도 바싹 말라있었습니다.

사막을 한참 걷다가보니 하얀 빛의 바닥이 보였습니다. 그 하얀 빛이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사막에 어떻게 소금이 있는지 신기했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바다였는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다였던 곳이 사막으로 변하고, 사막이었던 곳은 바다가 되고. 이렇게 세상은 변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 아마도 '무상'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그 진리를 사막에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사막을 걷고 있으려니 조금 슬픈 생각도 들었습니다. 밤이 다가오는지 지평선에 맞닿은 하늘은 서서히 오렌지 빛으로 물들고, 이역 만 리에서 할 일없이 난 걷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조금 쌀쌀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감정을 조금 맬랑꼴리하게 만드는 모양인지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리를 점령하면서 마음이 조금 우울해졌습니다.

큰 애는 현재의 상황을 재미없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름답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사막을 목적 없이 걷는 현재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큰 애에게 언제나 감탄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빨리 파악해내고 바로 행동에 옮긴다는 것입니다.

"방에 가서 음악 들으면서 책 볼래."


마침 큰 애처럼 사막을 걷는 일에 지친 일행들이 대상 숙소로 돌아가고 있어서 난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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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불을 피웠는데 남은 숯검정으로 야만인처럼 얼굴에 낙서를 한 작은 애. 이런 행동 속에서도 작은 애는 행복을 점점 키워갔다. ⓒ 김은주


큰 애가 돌아가고 작은 애와 함께 계속 사막을 걸었습니다. 하늘의 노을은 점점 짙어져갔습니다. 사막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하늘이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여전히 내 감정은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애는 나와 달랐습니다. 아주 유쾌하고 발랄하고 왕성한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았습니다. 현재에 굉장히 만족하고 지금 상황이 좋아 죽겠다는 태도였습니다. 작은 애는 여행 와서 계속 이런 상태기 때문에 뭐 특별할 것도 없지만 사막에서는 좀 더 유난했습니다. 아마도 사막에서 자연을 느낀 모양입니다. 작은 애는 사막의 대 자연 속에서 자유로움과 생동감을 느낀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기쁨을 퍼포먼스로 표현했습니다.


무대는 아주 근사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무대고, 배경은 붉게 물든 허공입니다.  이 멋진 무대에서 작은 애는 노래를 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배운 '태평가'를 춤을 곁들여 구성지게 한 가락 뽑았습니다. 첫 곡을 뽑고 신명이 한창 오른 하나는 내쳐 손담비의 노래 '미쳤어'를 의자춤까지 곁들여 열정적으로 부르고, 이어 '산도깨비'와 '화신'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아는 곡을 열정적으로 다 공연했는데도 그놈의 지칠 줄 모르는 신명이 가라앉지 않아서 재공연을 했습니다. 하나의 공연을 세 번 반복해서 봐야했습니다. 아마도 말리지 않으면 공연은 밤새도록 이어졌을 것입니다.

가장 멋진 순간을 가장 멋진 방법으로 보낼 줄 아는 하나가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 작은 애는 어디서 그 많은 행복이 샘솟는지 매순간 현재를 즐겼습니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현재를 소비하는 나와는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참 복도 많은 아이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래를 부르다 보니까 저 멀리 죽은 나무 뒤에서 사람들이 불을 지피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대상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던 일행들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막 뛰어갔습니다. 사막이라 저녁이 되자 추워지기 시작했는데 불을 보자 무척 반가웠습니다. 모두들 거기에 감자를 구워먹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창의력 뛰어난 하나는 다른 방법으로 또 그 순간을 즐겼습니다. 하나는 숯을 보자 야만인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어느새 숯검정으로 얼굴에 온통 낙서를 했습니다. 얼굴에 낙서를 하고 문명국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그 순간을 즐기고 또 추억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하나처럼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의 이런 성향은 아마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물이 대접에 담기던지 크리스탈 컵에 담기던지 그것에 불평하지 않고 모습을 온전하게 바꾸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성향이 있기에 아무것도 없는 쌀쌀한 사막에서도 완벽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야즈드 #사막 #케르반사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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