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국가 정책이란 쉽사리 나올 수 없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정책을 펼치지만 매번 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사학법 개정'을 반대했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진보·개혁 세력이 반대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정부는 다수 국민의 의견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되 소수의 의견을 존중, 적극 반영해야 한다. 특히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영하는 일에 더욱 힘을 쏟는다. 이는 법으로도 보장하고 있다. 국민이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이른바 집회나 시위를 하는 걸 법으로 보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공공의 안녕질서에 치중한 나머지 규제 일변도로 개정돼 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24일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집회법 10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 6월 30일까지 집시법을 개정해야 하고, 개정되지 않을 경우 해당 조문은 자동 폐기된다.
조진형(부평갑)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은 최근 집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조 의원이 발의했지만 한나라당과 정부의 개정안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 개정안은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10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왔지만, 야간집회 시간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집회 시위를 금지하자는 것이 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조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한 배경은 야간집회 시간을 규제하지 않으면 불특정 시민의 신분 은폐가 용이하고 경찰의 채증이 어려워 불법 집회시위가 발생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민주당 등 야당은 헌법 취지를 무시한 '개악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 집회시위를 근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주장은 불법 폭력 집회가 점점 줄어드는 등 우리나라의 집회 문화가 상당히 선진화되고 있어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9년도 전국 경찰서별 집회신고 및 개최·미개최 현황'을 보면, 전국의 2만8621건의 집회 가운데 미신고 집회는 3.42%에 불과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에 따르면 불법 폭력시위는 전체 집회의 0.5∼0.7% 정도로 상당히 적다. 또한 미신고 집회도 전체 집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3.4%인 980건에 불과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 등의 '유령집회' 신고가 횡행하고 있다. 유령집회란 집회신고를 내놓고 실제 집회는 하지 않는 것이다. 목적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세력들의 집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이다.
E-마트 연수점의 경우 2007년 1월부터 2009년 6월 말까지 총 884회의 집회신고가 제출됐지만, 단 한 차례도 개최하지 않았다. 명절과 휴가 등을 제외하고는 2년 6개월 동안 집회신고를 싹쓸이 한 셈이다. 롯데백화점 부평점도 이 기간에 신고 회수 883회 중 882회 동안 집회나 캠페인 등을 전혀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홈플러스 구월점도 신고한 883회 모두 개최되지 않았다. 이 밖에 홈플러스 작전점 607회(607)·홈플러스 가좌점 589회(589)·이마트 검단점 511회(511) 순으로 집회신고가 많이 접수됐다. 이들 지역에 접수된 집회신고도 절대적으로 '유령집회' 신고이다.
대형유통업체들의 집회신고의 주요 내용은 '기초 생활질서 확립' '정지선 지키기' '안전사고 예방' '한 줄서기 운동' 등의 캠페인이 대부분이다.
집시법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가 국가권력이나 강자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사회적 약자나 소수의 목소리를 원천 차단하는 데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등이 오히려 집시법의 맹점을 이용해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차단한 셈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조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집시법을 악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눈감은 셈이다. 때문에 범국민적 촛불집회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집시법을 개정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법률 개정은 그 법의 근본 취지를 적극 살리는 방향에서 이뤄져야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4.20 11:07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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