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규탄문화제 참여로 또 '소환장' 받았어요

삼성과의 질긴 인연, 그래도 꿋꿋이 싸우렵니다

등록 2010.04.20 22:00수정 2010.04.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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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서울 서부경찰서에서 "2차 출석 요구서를 발부했다"고 통보하는 전화였다.

 

2월 5일 강남역 삼성 본관 앞 촛불 문화제에 참가했었다. 삼성 하청 노동자들과 백혈병 피해자 가족들, 민중가수들, 지역 촛불들이 함께한 자리였다. 매우 추운 날씨에 캔커피로 언 손을 녹이며 촛불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작지만 의미있는 촛불을 들었다. 삼성 본관 앞에는 뭐가 그리 두려운지 더 많은 경찰들이 배치돼 삼성 보호에 앞장섰다.

 

그런데 두 달이나 지나서 불법 집회에 참가했다며 경찰은 내게 출석요구서를 발부했다. 출석요구서를 받아들고는 뭐이리도 삼성과의 악연이 질긴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삼성과의 악연은 2005년에 시작됐다.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이 고려대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으러 온다는 소식에 수여식이 열리는 인촌기념관으로 갔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하려해도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권리조차 짓밟으며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른 이건희 회장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다는 것은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는 대학의 지향점이 정의와 진리가 아니라 돈에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친구들이 징계 명단에 오르고 징계 반대 운동을 한 달 가까이 펼친 끝에 누구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이유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삼성의 실체와 대학 기업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곧이어 삼성 X-파일이 폭로돼 다시금 학생들의 시위가 정당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고려대에서 출교를 당했다. 본관 밤샘 시위가 명분이었지만 실은 이건희 시위에 참가한 것이 진짜 이유였다. 학교는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지만 후에 재판과정에서 출교생들이 이건희 시위 등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징계를 정당화하려 했다.

 

자퇴한 김예슬씨가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학 생활에 의문을 가지게 된 3가지 사건 중 하나로 출교 사건을 꼽을 만큼 이 사건은 고대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힘든 천막 농성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나 삼성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연대가 내게 큰 힘이 됐다. 출소하자마자 천막을 찾아 주신 김성환 일반 노조 위원장님, 시사저널 파업 기자들, 이마트 노동자들이 우리에게 용기를 복돋아줬다.

 

복학한 이후 나는 삼성에 맞서 싸우는 많은 이들과 연대하고자 했다. 출교 철회 투쟁이 승리한 것처럼 삼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하길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건희씨에게 1인 특별 사면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그리고 이건희씨가 사면된 날 반삼성 활동가 한 명이 급작스레 연행됐다.

 

박지연씨를 비롯해 노동자 9명이 '죽음의 공장'이라 불리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뒤 2년여만에 목숨을 잃었다. 삼성 사장은 박지연씨가 1천 년 동안 모아야 쥘 수 있는 돈을 연봉으로 받고 있다. 이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삼성 일가는 이제껏 누군가의 권리를 짓밟고 빼앗으며 부를 쌓았다. 이건희 일가의 부와 웃음 뒤에는 삼성 노동자들의 피땀과 눈물이 있다.

 

삼성에 맞선 싸움이 비록 어렵고 외롭더라도 가치있고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많은 다윗들이 굴하지 않는다면 골리앗들을 넘어뜨릴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얼마 전,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가 주류 언론들의 철저한 외면에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에 승리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윗들의 승리는 우리 사회 억압받는 사람들, 정의를 바라는 이들의 승리라고 확신한다.

 

나 역시 혹여 갑자기 또 연행되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수년 간 탄압에도 포기하지 않으며 골리앗 삼성에 맞서 싸우는 수많은 다윗들을 생각하며 끝까지 소환에 응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더 많은 다윗들이 생겨나 이 싸움에 함께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도 꿋꿋하게 함께 싸우며 승리에 힘을 보태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중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4.20 22:00ⓒ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민중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삼성 #김지윤 #소환장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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