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4.22 11:41수정 2010.04.22 11:41
서울 용산 지하철역 7번 출구 층계를
두 계단씩 뛰어 올라가다가
흠칫 놀라 뒤돌아본다.
초겨울 바람 얼음송곳처럼
얼굴을 파고드는데
웃통을 벗고 벌거숭이로
층계참에 몸을 둥글게 말아
고개를 땅에 박고 있는 늙은 남자.
나는 순간 누가 내 얼굴에
물잔을 끼얹는 듯 확 정신이
든 눈으로 찬찬히 보니
누군가 아주 오래 전
공을 들여 한땀 한땀 새겼을
문신의 눈 먼 용 한 마리가
늙은 사내의 등가죽을 찢고
곧 날아오를 듯했다.
사내가 깔고 있는
신문지에는 용산시장이 화염 속에 불타고 있고,
동냥함으로 보이는
커피 얼룩 남아 있는 종이컵 안에
동전 서너닢과 지폐 한장 담겨 있었다.
그리고 때묻은 맨발 하나가,
부처가 관 밖으로 내밀 듯이
늙은 사내의 둥글게 말고 있는
옹관 같은 몸 밖으로
거북이 목처럼 내밀고 있었다.
늙은 사내의 얼어붙은 몸속으로는
도저히 똘똘 양말처럼
말아 집어 넣을 수 없었을,
시퍼렇게 얼어터진 다섯개 발가락들,
그래도 아귀차게 동사직전의 한 생명줄을
필사적으로 움켜잡고 꿈틀거리는 듯 하였다.
이따금씩 지하철 질주 하는 굉음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날카로운 호루라기 한 *점(點)이 길게 불어
곧 전경들과 물대포라도 출동한다면,
저 눈 먼 용의 눈동자에 화룡점정 그려지고
이글 이글 화염불이 뿜어나면서
태아처럼 웅크린 사내의 몸을 지붕처럼
뚫고 팍- 날아오르기라도 할 기세로 ….
덧붙이는 글 | 화룡점정(畵龍點睛) ;무슨 일을 할 때 최후의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함으로써 그 일이 완성되는 것이며, 또한 일 자체가 돋보인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 말은, 양(梁)나라의 장승요(張僧繇)가 금릉(金陵: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에 용 두 마리를 그렸는데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그 까닭을 묻자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용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며 용이 벽을 차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2010.04.22 1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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