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을 다투는 아이, 뭐가 문제일까

성적 강박이 낳은 스트레스 증상,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등록 2010.04.28 15:05수정 2010.04.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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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교시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복도에서 지아(가명)가 울고 있다. 옆에서 친구 둘이 지아를 달래주고 있다. 어디 아프냐니까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그냥 눈물만 주르륵 흘린다.


"저 가슴이 먹먹해요. 어떻게 해요. 머릿속도 하얗고 공부도 안 돼요. 저 어떡해요."

지아가 내게 던진 첫마딘 가슴이 먹먹하고 머릿속이 하얗다는 말이다. 녀석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인도 알 수 있다.

지아는 반에서 1등, 전교에서 1, 2등 하는 아이다. 공부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흐트러짐이 없다. 한마디로 범생이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은 공부 아니 성적에 대해 지나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아이만 그런 게 아니다. 부모 또한 성적에 일희일비한다.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지면 아이들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기계처럼 공부한다.

 아이들은 누구나 이렇게 만개한 꽃이 되어 향기를 품고 싶어하는 소망이 있다.
아이들은 누구나 이렇게 만개한 꽃이 되어 향기를 품고 싶어하는 소망이 있다.김현

한 지인의 아들을 보자. 그 아이는 지금 고 1이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예전엔 시골에서 도시로 속칭 유학을 온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요즘은 버스로 20분 거리에 살아도 기숙사에 보낸다.

그 지인의 아이는 아침 6시 20분에 기상한다. 운동장에 나와 맨손 체조를 간단히 하고 아침을 먹고 교실로 등교한다. 그리고 아침 자율학습을 하고 수업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보충 수업. 보충 수업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다음 그 아이는 자정이 넘은 1시까지 공부를 한다. 요즘은 곧 있을 중간고사를 앞두고 2시까지 공부를 한다고 한다. 아이가 잠을 자는 시간은 약 4시간 남짓이다. 잠을 일찍 자라고 해도 불안해서 못 잔다 한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불안하다고 한다.


지아도 그랬다. 곧 있을 시험을 앞두고 지나치게 긴장을 하고 불안해했다. 숨소리도 안 내고 열심히 하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혹시 자신의 성적이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지아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계속 울먹였다. 점심도 속이 울렁거려 먹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니 상태를 그대로 얘기해봐."
"…… 그냥 심장이 밖으로 나올 것 같아요. 답답하구요. 저 어떡해요."

지아는 '저 어떡해요'를 반복하며 울먹인다. 그 아이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됐다. 나도 고3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노이로제였다. 고삼병이면서 시험과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노이로제 증세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증상은 일단 시험에 대해, 공부에 대해 잊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일단 바람이나 쐬자. 그럼 좀 나아질 거야."

아이는 여전히 말이 없다. 교문을 나섰다. 교문 앞엔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있다. 너무 맛있게 떡볶이를 해서 아이들의 칭찬이 자자한 집이다. 점심시간이 다 돼서인지 배가 고팠다. 지아도 뭐 좀 먹여야 할 것 같아 떡볶이 먹자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몇 개만 먹고 만다. 속이 메스껍다고 한다. 모두 신경성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홀로 꽃을 피워야 한다. 스스로 싸우고 이겨내야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홀로 꽃을 피워야 한다. 스스로 싸우고 이겨내야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김현

포장마차를 나와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약수터로 걸었다. 걸으면서 심호흡을 시키고 불면증을 해소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알려주었다. 어쩐 일인지 내가 한 번쯤 앓았던 증상을 지아는 호소하고 있었다.

다음날 지아는 잠을 푹 잤다고 했다. 잠자리에서 알려준 호흡법을 따라했는데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고 한다. 전날 잠을 자고 싶어도 잠을 자지 못해 애태웠던 아이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따금 머리가 멍해지는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 땐 책상에 앉아 책을 보려고 하지 마라. 책과 공부란 단어를 잊어버려야 해. 니가 책 속으로 들어갈수록 그 증상은 더 심해질 거야. 답답하고 멍할 땐 밖에 나와 산책을 하든가 심호흡을 해. 그럼 조금 나아질 거야."

하지만 이런 아이들은 대체로 책을 가까이 하지 않거나 책상머리에 앉아 있지 않으면 왠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책 속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줄기차게 책상에만 붙어 있으려 한다. 그럴수록 답답증만 밀려오는데 말이다.

문제는 지아와 같은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수험생들이 한두 번쯤은 겪는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주변에서 '점수 점수'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노이로제에 빠지게 된다. 이는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상관이 없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여러 증상을 호소한다. 이는 정글로, 정글로 내모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고 우리 어른들의 문제이다.

교실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면 꽃의 천지다. 그런데 아이들은 꽃 한 번 제대로 감상할 여유가 없다. 감상은커녕 바라볼 시간마저 없다.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수능시험을 향해 가고 있다.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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