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은 아름다운 서정시만 썼을까?

영랑의 시가 그대로 배어있는 강진 영랑생가

등록 2010.04.29 11:08수정 2010.04.2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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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영랑 생가 ⓒ 전용호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영랑생가

강진읍내로 들어서서 영랑생가를 찾아간다. 강진을 지나칠 때마다 들러본다는 게 쉽게 가지지 않는다. 읍내를 한 바퀴 돌아 들어가니 영랑생가라는 커다란 팻말이 보인다. 도로에서 바라보면 쭉 뻗은 길 끝으로 초가가 보인다. 햇살이 쨍하게 내린 길을 걸어서 들어간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사립문이 보인다. 정감이 넘치는 문이다. 도시에서 아파트 철문만 보고 살아서 그런지 너무나 반갑다. 대나무를 어긋나게 엮어서 큰 문을 만들고, 옆으로 작은 문을 만들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면 돌담이 이어진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절로 노래가 나온다. 돌담 아래 시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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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의 아름다운 돌담.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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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 안채. 구조는 기와집인데 초가를 얻었다. ⓒ 전용호


문간채로 들어서니 마당이 무척 넓다. 집은 초가지만 넓은 마루에 난간까지 달았다. 초가집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조다. 영랑이 살던 때도 초가였을까? 영랑생가는 1948년 가족이 서울로 이사하면서 팔았는데, 지붕이 시멘트 기와로 바뀌고 변형이 되었다.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을 하고, 1992년 지붕을 초가로 복원하였다.

모란꽃 시인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영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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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에 있는 영랑 초상 ⓒ 전용호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 1903~1950)의 이력에는 1919년 3.1운동 때 종로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강진으로 내려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영랑은 주옥같은 시 80여 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 편이 광복 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강진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란다. 마당을 거닐다 보면 시가 저절로 떠오르겠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모란이 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영랑은 해방 후에 강진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결성하고 대한청년단 단장을 맡으면서 정치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1948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나, 떨어진 후 강진을 떠나게 되고,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낸다. 이 시기에는 서정시보다는 이념적 갈등을 표출하는 시들을 발표하게 된다.

새벽의 처형장에는 서리 찬 마(摩)의 숨길이 휙휙 살을 에웁니다.
탕탕 탕탕탕 퍽퍽 쓸어집니다.

정치가로 변신한 후 쓴 <새벽의 처형장>이라는 시에는 서정시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극도의 감정을 쏟아내며 정치적인 색채를 띤다. 정치를 하다보면 모란이 총으로도 바뀔 수도 있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마당 여기저기에는 영랑의 시 속에 나오는 소재들이 보인다. 우물, 감나무, 돌담, 동백나무, 모란 등등. 그 옆에는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한 시비를 세웠다. 시비를 읽어가며 시의 주제가 된 소재를 찾아보는 것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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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생가 안채 풍경. 시 속에 등장하는 감나무가 마당 가운데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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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시집 ⓒ 전용호


사랑채 마루에 앉아 본다. 대숲이 사락거리고, 동백이 붉게 떨어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가져간 영랑시집을 펼쳐본다. 봄을 노래한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온다.

뉘 눈결에 쏘이었소
온통 수줍어진 저 하늘빛
담 안에 복숭아꽃이 붉고
밖에 봄은 벌써 재앙스럽고

꾀꼬리 단둘이 단둘이로다
빈 골짝도 부끄러워
혼란스런 노래로 흰구름 피어올리나
그 속에 든 꿈이 더 재앙스럽소
                                              - 김영랑 <뉘 눈결에 쏘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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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생가 사랑채 ⓒ 전용호


지금쯤 모란이 한창이겠다.

덧붙이는 글 | 4월 17일 풍경입니다.


덧붙이는 글 4월 17일 풍경입니다.
#영랑 생가 #강진 #모란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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