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퍼주기=어뢰'라는 나경원 말이 파괴력 지니려면

등록 2010.04.29 15:16수정 2010.04.2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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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딸아이가 친구와 인터넷 채팅으로 대화하는 것을 슬쩍 본 적이 있다. "얘, 네 말에 주어가 빠졌어" "주어가 빠졌다구?" "그래. 빨리 주어 넣어. 안 그러면 네 말 무효다" "피, 알았어. ㅋㅋ" '주어' 얘기가 그날 식사 자리에서도 화제가 되었는데, 대학생 아들녀석은 휴대폰 문자로 친구와 교신을 할 때도 주어가 빠졌다는 둥 주어 넣으라는 둥의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07년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동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당 대변인 나경원 의원이 "주어가 없으니 무효"라고 말한 것이 그 기원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광운대 강연 모습을 담은 BBK 동영상을 지금도 인터넷 공간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데, BBK에 관한 소개와 설명 중에는 분명히 주어가 있다. "내가 BBK를 설립했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에서 '내가'는 주어이다. 'BBK'는 목적어이고, '설립했다'는 서술어이다.

 

나경원 의원이 무엇을 근거로 "주어가 없다"고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사법고시까지 공부한 사람이 주어가 뭔지도 모를 리는 없고, 참 오묘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의 말대로 주어가 없다고 치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나 의원의 친정 아버지가 딸에게 와서 "아버지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아버지다"라고 하지 않고 그냥 "아버지다"라고 했으니, 즉 주어가 없으니 그럼 아버지가 아니겠네? 이 질문을 언젠가는 나 의원에게 직접 해봤으면 싶다.

 

오늘에도 젊은이들의 대화에 '양념' 구실을 할 정도로 생명력이 긴 '주어 명언'을 남긴 나경원 의원이 최근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하여 또 한번 길이 남을 히트 발언을 했다. "대북 퍼주기가 결국 어뢰로 돌아왔다"는 주장이다. 그는 16일 오전 <원음방송>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북한 개입설에 대한 '신중론'은 이적행위라며, "북한 개입설을 섣불리 차단하고 음모론을 제기한 것과 대북 퍼주기가 결국 어뢰로 돌아온 점에 대해 민주당과 정세균 대표는 사과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한-미 해군 허수아비 된 상황 설명할 수 있어야

 

'어뢰 명언' 역시 오래 남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 같다. 언제 어디로 또 날아가서 어떤 식으로 터질지 모를 어뢰(語雷)다. 그게 진짜 어뢰가 되려면 몇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북한이 과연 어떤 기술력으로 귀신도 곡하게 만드는 신종 어뢰를 발명하고 사용했는지, 또 북한이 언제부터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까지도 능가하는 수중 전투능력을 확보하게 되었는지도 말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한미합동해상훈련까지 한 한국 해군과 미군은 허수아비가 되고 만 상황 속에서 그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져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그런 요건들을 갖추어야 '나경원 어뢰'는 파괴력을 지닐 수 있다.

 

정확성을 지니지 못한 어뢰로는 북한을 제대로 공격할 수 없다. 대북 응징 쪽으로는 아무 쓸모도 없는 그런 유치한 구시대적 어뢰는 북한 쪽으로 날아가기보다는 괜히 좌충우돌하거나 도리어 자신에게 날아올 공산이 크다. 그래서 나경원 어뢰는 망동(妄動) 위험이 크다. 실은 그런 성격 때문에 오래 생명력이 유지되는 아이러니를 내포한다.  

             

천안함 침몰 사고를 계기로 많은 국민들이 국가지도자들의 병역 미필 사실을 소상히 알게 되었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린 국가안보장관회의에 참석한 12명의 면면들 중에 군대를 갔다온 사람은 국방장관 한 명뿐이고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국정원장 감사원장을 포함 모조리(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역시 석연치 않은 일병 귀휴) 병역의무를 면제(?)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많은 국민들이 놀라고 한숨을 쉬었다. 놀라지 마시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중에 병역의무를 면제받은 사람이 무려 50여 명에 이른다. 

 

이와 관련하여 한가지 우스운 일이 국회에서 있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여성 의원이 국무총리에게 질의를 하는 도중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의 병역 면제 문제를 거론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정옥임 여성 의원이 반격을 하면서 "군대도 안 갔다 온 대통령, 군대도 안 갔다온 총리 운운하며 정치공세에 나선 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 분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한다"는 말을 했다.

 

그게 공식적인 사과 대상일까?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때로는 사실 왜곡, 여성 비하, 인종 차별 등 마땅히 사과해야 할 일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병역의무 미필 사실을 거론한 것에 대해, 그것이 날조된 것도 아니며 유언비어도 아닌데 그것에 대해 사과를 하라니, 적반하장의 진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위에 적은 사례들은 무수한 궤변들의 숲 속에서 손쉽게 기억해낸 것들이다. 상식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들, 치졸함과 속임수 따위를 내포하고 있는 말들은 한마디로 '영혼 없는 말'들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부처님을 믿으며 산다 할지라도 거짓말과 분별 없는 말,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은 일단 영혼이 없는 사람이다.

 

말은 영혼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 성경에서 하느님은 '말씀'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말은 그대로 '신'을 내포하는 것이다. 말이 얼마가 거룩하고 존엄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말 같지 않은 말들이 난무하고 범람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저 영혼 없는 사람들의 영혼 없는 말을 분별하는 눈이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29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되었습니다.  

2010.04.29 15:1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29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되었습니다.  
#주어 #어뢰 #병역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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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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