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불편한 이웃'

[정치 톺아보기] 잔인한 4월과 희망의 5월

등록 2010.05.04 09:56수정 2010.05.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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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천안함 46용사 합동안장식'에서 최원일 함장과 생존장병들이 영현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대한민국 해군의 주력 초계함인 천안함(1,200톤급)이 3월 26일 밤 9시 22분께 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두 동강난 채로 침몰한 이후, 대한민국은 한 달 내내 충격과 혼돈에 휩싸였다.

합참의 상황일지에 따르면, 승조원 104명을 태운 천안함은 통상적인 초계활동 중이었다. 사망-실종자 46명(구조 58명)은 대부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애인과 문자를 주고받거나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가 영문도 모른 채 비명횡사한 억울한 희생자였다.

국가가 할 일은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문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이 땅에서, 이 바다에서 생때같은 젊은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 비통한 부모들의 이런 울부짖음이 이 나라에서 다시는 울려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불편한 의문] 초계함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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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20일째인 지난달 15일 오후 백령도 장촌포 함미 인양해역에서 천안함 함미부분이 해상크레인에 의해 바지선 위에 실려있다. ⓒ 유성호


"너 군대 안 간다하고 할 때 엄마가 돈이 없어서 보냈는데…. 아빠도 없이 혼자서 클 때도 외로웠는데 그 싸늘한 바다에서 얼마나 힘들었니. 엄마가 미안해 죽겠다."(故 정범구 병장의 어머니)
"달나라도 가는 세상에 아무리 배가 침몰했어도 찾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 차라리 싸우다 죽었으면 덜 원통하겠다."(故 민평기 상사의 아버지)

민군 합동조사단은 지난 25일 2차 중간조사 발표에서 천안함 침몰 원인을 어뢰나 기뢰에 의한 '비접촉 수중폭발'(버블제트)로 규정했다. 그러나 돈이 없어 보낸 군대, 차라리 싸우다 죽었으면 덜 원통하겠다는 회한과 탄식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몇 가지 '불편한 의문'부터 해소해야 한다.


우선, 적의 어뢰 공격에 대비해 소나(sonar) 장비를 장착한 초계함이 아무런 위험도 감지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냐는 점이다. 더구나 그때는 '2010 한미합동 독수리훈련' 기간이었다. 한 척에 1조 원짜리 이지스함과 전술 배치된 한국형 구축함(KDX-Ⅱ)은 서해 해상을 손금 보듯이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럼에도 후방 깊숙한 곳에서 '한 방'을 먹은 것은 해군의 경계태세와 방어태세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음을 의미한다.

또 사건 발생 초기부터 지적돼 왔지만, '비접촉 수중폭발'에 의한 버블제트에 수반되는 물기둥이 목격되지 않았고, 현장에 대규모 폭발로 인한 까나리 같은 물고기 떼의 죽음이 없었고, 백령도 해병대 초병들이 찍은 열상감시장비(TOD)에 수온 상승이 감지되지 않은 점 등도 풀어야 할 의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버블제트에 의한 폭발, 수축, 재팽창 등의 연속충격으로 전함이 두 동강나려면, 전함이 수십 미터나 상승하강을 하는 동안 생존자와 사망자 모두 고막이 파열하거나 뇌진탕을 반복하면서 내장파열과 복합골절 같은 중상을 입어야 하는데 대부분이 멀쩡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네티즌 수사대'에선 북한이 '친환경 녹색어뢰'나 '스텔스 어뢰'를 사용해 천안함에 한 방을 먹였다는 얼토당토 않는 역설적 가설이 판을 친다. 그러나 이같은 가설은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제인연감이 기록한, 한국군에 비해 절대 열세인 북한군의 공격형 무기체계에 비추어 보면 공상과학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불편한 진실 ①] 북한은 '유력한 용의자'... 잔인한 4월, 반북 규탄의 5월?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윤덕용 민군 합동조사단장이 천안함 함수인양에 따른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들의 주장처럼 '암초에 의한 좌초 가능성은 없다'고 배제할 경우 남는 '불편한 진실'은, 아직은 기뢰인지 어뢰인지도 불확실하지만, 북한이 '유력한 용의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군 합동조사단의 최종발표가 예정된 5월 중하순에는 냉전시대의 반북 규탄시위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반도 부근 공해수역에서 잠수함을 운용하는 국가는 이른바 주변 4강국(미일중러)일 터인데, 이들이 한국군 초계함을 공격할 이유를 찾는 것은 역시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더구나 북한은 동해안 잠수함 침투 사건(96년)이라는 명백한 전과가 있다. 결국 어뢴지 기뢴지는 모르지만, 서해에서 어뢴지 기뢴지를 사용할 국가로 의심할만한 곳은 북한뿐이라는 자연스런 결론에 이른다.

물론, 아직은 경험칙에 의한 심증뿐이다. 그러나 북한 군부는 1968년 1.21사태에서부터 2002년 제2연평해전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정전협정 위반 사실을 시인한 적이 없다. 심지어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사건(83년)과 KAL-858기 폭발테러 사건(87년)의 경우, 테러범들이 잡혔거나 살아있지만 북한은 테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때마침 불거진, 탈북자로 위장침투한 북한 공작원의 황장엽 암살기도 사건은 용의선 상에 오른 북한에 대한 심증을 굳혀준다. 황장엽 암살기도 사건을 공개한 시점은 석연찮지만, 정부가 국민을 기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건전한 상식을 기반으로 분석하면, 김정일 충성분자들로 가득 찬 북한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남한에 암살조를 보내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자를 암살(기도)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인 이한영 암살(97년) 이후 처음이다.

북한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사실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불편한 진실'은 왜 이런 일들이 이 시기에 벌어졌는지를 분석하는 데에 있다.

북한 군부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과 평화공존의 관계를 유지했던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서해에서의 우발적 교전 성격을 띤 1차 연평해전(99년)에 이어 보복 성격을 띤 2차 연평해전(2002년)을 감행한 호전적 집단이다. 따라서 평화공존 관계가 깨진 상황에서 발생한 천안함 참사는 지난해 11월의 3차 서해교전(대청해전)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예고된 참사일 수 있다.

[불편한 진실 ②] MB, 김대중-노무현 10년 쌓은 신뢰 2년 반만에 침몰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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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의 범행임을 전제하면, 이한영 암살과 동해 잠수함 침투 이후 10여 년만에 북한 군부가 다시 황장엽 암살조를 침투시키고, 바다 속으로 잠수함을 침투시켜 어뢰를 쏘고 도망가는 극단모험주의로 치닫는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어렵게 쌓은 '신뢰'가 이명박 정부 2년 반만에 침몰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도한 '안보상업주의'는 첨예한 대결정책으로 이런 사태를 초래한 이 정권의 정책적 실패만 부각시킬 뿐이다. 그런데도 조중동은 천안함 침몰 사건의 근원적 배경인 남북관계 파탄과 위기관리 실패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책임은 모른 체하고 연일 '애국주의'를 부추길 뿐이다.

<조선>과 <동아>는 '천안함 46용사'의 영결식에 맞춰 사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자폭정신' 발언을 거론하며 "미치광이"(조선) "요란스럽게 짓는 개"(동아) 같은 거칠고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같은 날 <중앙>의 문창극 대기자는 우리 정부더러 '자위권을 선포하라'고 주문했다. 사실상의 전쟁 선포를 촉구한 셈이다.

<중앙>은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2~3면에는 4월에 공개된 김정일 사진 4장을 싣고는 '천안함 사건 이후 김정일 사진은 유독 웃는 얼굴이 많았다'고 제목을 달아 '가증스런 김정일' 이미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메시지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4월에 공개된 이명박 대통령 사진 중에서도 활짝 웃는 사진을 골라 '천안함 사건 이후 MB 사진은 유독 웃는 얼굴이 많았다'고 설명을 달 수도 있는 것이다.

조중동의 진군 나팔소리에 고취된 탓일까. 이 정부는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띤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상 6월 말~7월 초에 열리는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한 달 이상 앞당겨 여는 '반칙'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다. 국가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미명 하에. 그러나 국방장관이 아닌 대통령이 직접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병역을 미필한 대통령의 '과잉행동장애'로 비칠 수도 있다.

[불편한 진실 ③] 한국 주도 통일까진 북한, 중국, 미국 세 장벽을 넘어야

조중동의 논조에 따르면, 마치 우리가 전쟁을 결심하기만 하면 김정일 정권은 금방 붕괴되고 통일이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을 하려면 국민과 군이 현재의 전쟁 지도부를 믿고 총력전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국론통일' 말고도 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라는 세 장벽을 넘어야 한다.

우선 누구나 통일을 노래하지만 통일의 이상과 현실은 천양지차다. 이상 속의 통일은 '우리의 소원'을 노래하는 것으로 가능하지만 현실 속의 통일은 38도선 이북의 '미수복 지역'을 수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은 대한민국 육군과 해병대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땅을 점령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60년 전인 6.25 때도 남북한을 통틀어 66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북한 군부의 저항이 거셀 경우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나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미연합군이 38도선을 넘을 경우 중국의 위협과 참전 여부가 관건이다. 북중 관계는 전통적으로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설명된다. 이 때문에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미연합군의 전면전 대비계획인 '작계 5027(OPLAN 5027)'에도 중국 변수를 고려해 북진을 청천강 한계선에 두고 그 북쪽에 '완충지대'를 둬야 한다는 작계가 포함돼 있다. 그럴 경우 통일을 하더라도 한민족이 웅비했던 발해와 고구려 땅은커녕, 조선시대의 국경에도 못 미치는 통일신라의 영토로 축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연합군이 북한 땅을 점령하더라도 북한 지역을 누가, 어떻게 통치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한국 정부는 통일부장관이 미수복지역의 행정원장관이 되어 통치하는 비상계획을 갖고 있지만,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유엔 회원국이자 독립국가이기에 일정기간 군정이나 신탁통치를 실시하는 복안을 갖고 있다. 한미간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처럼 무력에 의한 통일은 지난하다. 결국 전쟁을 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이기려면 남북한이 서로 무력 흡수통일을 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쌓아 가는 수밖에 없다.

[불편한 이웃] 북한은 '쇠갈고리 찬 상이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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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낮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설치된 '고 천안함 46용사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요즘 세대는 쇠갈고리라면 피터팬의 후크 선장과 해적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 풍경이 사라졌지만, 40대 이상이라면 대부분 어릴 적에 고무팔에 쇠갈고리를 찬 상이군인에 대한 공포를 경험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5일장 시장에서 상인들로부터 자릿세를 수금해가는 쇠갈고리를 찬 상이군인에 대한 어릴 적 공포감이 오랫동안 남았었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공포감과 위화감을 주는 쇠갈고리를 찬 상이군인을 찾기 어렵지만 그 시절에 번뜩이는 쇠갈고리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장애인의 생존 도구였다. 그것은 돌이켜보면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희생을 당한 사람들에 대해 국가가 보호 의무를 방기했거나 '골치 아픈데 알아서 먹고 살아라'고 적당히 방치한 결과였다. 결국, 힘없는 서민들은 번뜩이는 쇠갈고리가 무서워 돈을 뜯기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북한은 6.25 전쟁의 도발국이자 최대 피해국이다. 무려 북한 인구의 1/3이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들이다. 전후 북한은 실로 '거대한 상이군인의 나라'였다(북한은 상이군인을 '영예군인'이라고 부른다). 60년이 지난 지금, 그 쇠갈고리는 '핵'으로 대체되었을 뿐, 북한은 여전히 '불편한 이웃'이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두고 조중동은 '천안함 국면 물타기'라고 규정하지만, 실은 생존을 위한 예정된 '구걸외교'라는 분석이 더 우세하다.

이 '불편한 이웃'을 전쟁으로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 아니라면 평화롭게 공존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천안함의 처참한 모습을 보존해 전시해야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46명의 젊은이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것이 잔인한 4월을 보내며 희망의 5월을 맞는 방법이다. 그것이 천안함 침몰사건을 해결하는 정답일 것이다.
#초계함 침몰 #불편한 진실 #천안함 #불편한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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