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내 남편이 아닌 것에 감사합니다

[이란 여행기 49] 신경질 많은 운전기사와 함께 한 이상한 하루

등록 2010.05.07 09:17수정 2010.05.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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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상한 남자와 함께 간 천년된 마을 카라나크. 지금은 사람이 살고있지 않았다.

이상한 남자와 함께 간 천년된 마을 카라나크. 지금은 사람이 살고있지 않았다. ⓒ 김은주


페르세폴리스를 여행할 때 미니버스를 태워줬던 기사는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릴 위해 쿠키와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우리가 원하는 걸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신의 욕구보다는 손님의 요구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를 '나이스 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키쉬섬을 여행할 때 공항에서 숙소까지 운전해준 기사는 수다스런 남자였습니다. 우리가 버스에 타면서부터 시작된 이 남자의 수다는 내릴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30분 정도를 끊임없이 떠들었습니다. 그의 수다는 소란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친구나 누구에게 우리 일행에 관해서 얘기하며 낄낄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하더니 만약 이 남자 같은 남자가 셋 모이면 접시가 아니라 놋그릇도 깨질 판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삐걱거린 이상한 남자

그런데 오늘 우리와 함께 한 남자는 이상한 남자였습니다. 나이스 가이와 완전히 반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이스 가이가 손님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이 남자는 자신의 욕구가 중요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손님인 우리에게 자신의 욕구를 강요했고, 우리가 그걸 들어주지 않으면 어린애처럼 심통을 부리고 삐딱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힘들었지만 우릴 인솔하는 길 대장은 매우 피곤한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의 오늘 일정은 대상 숙소에서 출발해서 천 년 된 마을 카라나크와 조로아스터교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인데, 그래서 일찍 출발해야 했는데 그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나타났습니다.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늦게 왔으면 미안하다느니 어떤 변명이라도 해야 할 텐데 아무런 언급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실수에는 아주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차도 주인을 닮아서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아주 낡고 비좁았습니다. 자기 덩치만큼의 짐을 갖고 있던 우리 일행은 짐짝처럼 포개서 차에 올라타야 했습니다. 매우 비좁고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늘 일정을 끝내고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반다라아바스까지 자기 차로 태워주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반다라아바스까지는 10시간 정도를 가야 하는데 이런 상태로 거기까지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답은 '노우'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필요할 때는 떠듬거리는 영어로 잘도 요구를 표현하면서 불리할 때는 '난 영어 못해요'로 일관했습니다.


담을 넘어 들어가란다, 황당하네

우리가 이날 이 이상한 운전자와 함께 간 곳은 카라나크라는 천 년 된 마을과 아테슈카테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총 본산, 그리고 조로아스터교의 조장 터인 침묵의 탑인데 이런 곳에 가려고 하면 순순히 데려다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간을 많이 빼앗기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내면에 암 덩어리처럼 퍼져있는 심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난 영어 전혀 못하기 때문에 절대 거기 몰라요' 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우리가 침묵의 탑을 오를 때는 오후 다섯 시 무렵이었는데 그는 자기가 늦은 건 생각도 하지 않고 다섯 시가 되면 돈 받고 떠날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와 약속한 시간인 5시에 침묵의 탑에 오르겠다고 하니까 우릴 골탕 먹이고 싶었는지 산을 오르는 정문이 아닌 엉뚱한 데 내려주고는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들어 가느냐고 했더니 황당하게도 담을 넘어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2미터는 족히 넘을 담을 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정문을 찾아 담을 반 바퀴는 돌아야 했습니다.

이때 나는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저 남자를 남편으로 두지 않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요. 한편으로 그의 아내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사 저렇게 요구가 많고, 삐딱하게 굴고, 신경질적이라면 정말 함께 살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안면식도 없는 그의 아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달라고 했을 때도 의견마찰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양고기를 절대로 못 먹기 때문에 '피자'라고 했는데 굳이 케밥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로도 계속해서 의견마찰을 일으키며 싸우다가 결국 우리가 원하는 피자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피자집을 선택해준 게 그가 심술궂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의견소통이 안 되는 부분이라는 걸 입증했습니다. 그는 심술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따라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만난 이란인들이 자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타인의 생각이나 가치관 욕구 같은 건 아랑 곳 없고 자기의 의지와 고집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먹으라는 케밥을 먹고, 자기가 추천하는 엽서를 사고, 자기가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조장 터 같은 건 안 보기를 바랐을 뿐인데 우리가 그의 생각을 무시하고 우리 생각을 관철하자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가 한 유일하게 좋은 일은?

a  누워서 피자를 기다리고 있는 큰 애.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피자집에서 큰 애는 피자가 나오는 시간 동안 이렇게 누워서 기다렸다. 피자집이지만 이란전통식당처럼 꾸며놓았다.

누워서 피자를 기다리고 있는 큰 애.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피자집에서 큰 애는 피자가 나오는 시간 동안 이렇게 누워서 기다렸다. 피자집이지만 이란전통식당처럼 꾸며놓았다. ⓒ 김은주


그런데 그가 좋은 피자집을 소개시켜주는 바람에 그에 대한 나의 인상은 그냥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인 남자로 기억할 뿐 그를 특별히 나쁘게 보지는 않습니다. 어디나 이런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이런 사람은 본인 스스로 살아가기 힘들기에 연민의 감정도 조금 느꼈습니다. 그가 지난번 나이스 가이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면 그는 훨씬 행복해질 텐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상황과 마찰을 빚는 것입니다. 결국 그의 내면에 도사린 이기심이 그의 환경을 이렇게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가 소개시켜준 피자집은 참 훌륭했습니다. 하루 종일 밉상을 떨던 이상한 남자가 이날 한 유일한 좋은 일이 바로 우릴 이 피자집으로 데려다 준 것입니다.

이 집은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썼으며 의자도 전통 식당처럼 카펫과 쿠션으로 이뤄져있습니다. 눕든지 앉든지 알아서 최대한 편한 자세로 먹고 가라는 구조지요. 좁아터진 버스에 구겨 앉아있느라 다리가 불편했는데 다리를 편 채 반쯤 누울 수 있는 구조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피자입니다. 가격은 저렴하고 맛은 환상적이었습니다. 거기다 다른 피자집과 달리 드레싱까지 함께 주었습니다. 원래 우리는 한 판 시켜서 셋이 나눠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맛있는 피자라서 한 판 더 시켜서 먹었습니다. 다음에 누군가가 야즈드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집을 꼭 소개해주고 싶은데 가게 이름을 알아놓지 못했습니다. 위치는 조로아스터교 총본산 가까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야즈드 #카라나크 #조로아스터교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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