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인상1988년당시 사립대학 등록금
동아일보
88올림픽 열기로 전국이 떠들석했던 1988년 8월, 당시 대학 2학년이었던 나에게는 가장 잔인한 여름이었다. 새 학기를 딱 한 달 남겨두고, 2학기 등록이 시작되었다.
당시 8월부터 시작되는 잔인한 등록의 계절. 전라도 여수 출신의 '꿈나무'(?)인 내게도 그 시련이 예외는 아니었다.
2학기를 앞두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등록금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비참한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시원찮은 벌이에도 등록금 한번 늦추는 법이 없었던 우리집에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80여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 마감일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하숙집 방문엔 '학생, 방값밀렸음'이라는 쪽지가 나붙기 시작했다.
공부라도 열심히해서 장학금이라도 받았으면 좋으련만, 65명 정원에 성적장학생은 달랑 2명. 웬만큼 공부해서는 그림의 떡, 넘지 못할 산이었다. 다행히 시골 출신 학생에게 선심(?)쓰듯 던져주는 근로장학금 20만원은 학과사무실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던 덕분에 건질 수 있었으나 나머지 60만원이 문제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등록금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등록금에 허덕이느니 눈물을 머금고 휴학과 군대 중에 양자택일해야만 했던 그 시절의 고민이 나에게도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고민해봤자, 부모들의 어깨만 무겁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래, 고민하느니 차라리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자! 3년 후면 뭔가 달라지겠지.'빨리 사회를 배우고, 인생을 아는 것도 좋은 재산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고 대자보를 써 붙이며 멋있게 양심 고백을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오늘 나는 대학을 휴학한다. 아니 군대간다'라고 혼자만의 결심을 굳혀갔다.
군대 가리라 결심하고, 휴학계까지 냈는데밤잠을 못 이루고 고민한 끝에 마지막으로 친구 5인방을 불러 모았다. 주막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한 잔씩 목을 축이니, 하필이면 최백호의 '입영전야'가 흘러나온다.
'그래, 구슬픈 리듬 속에 결연한 의지를 다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자.'"야! 나 이번에 휴학한다. 군대 갈 거야. 무거운 이야기하면 술맛 떨어지니까 그리 알고 술이나 퍼마셔라! 흐흐.""뭐? 야 임마! 뭔소리야! 예정에도 없었잖아. 우리하고 같이 군대가기로 해놓구선 뭐야!" "하여튼 그리 됐다. 등록금도 그렇고, 이제 동생들도 대학 들어갈 텐데 나 하나라도 덜어야지. 며칠 있다 휴학계 내고 시골 내려갈 거야. 영장 신청하고 나면 얼굴 보기 힘들 거니까 오늘 불러낸 거야. 자 한 잔씩해!"5인방 중 가장 어른스럽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 이창근. 그 녀석은 친구들의 수다에도 여전히 말 한 마디 없이 미동조차 없다. 4대째 독자로 태어나 대학까지 수석합격하여 등록금까지 면제받은 멋진 녀석은, 키는 또 얼마나 큰 지 190cm를 육박한다. 멀대같이 큰 키처럼 성격도 과묵한 녀석인데, 오늘따라 더 말이 없다.
다음날, 휴학계 처리하던 교무과직원이 의아한 듯 쳐다본다. 2학기까지 마치고 가면 2년 교련 과목 이수로 군대생활을 3개월이나 혜택 받을 텐데 뭐하러 군대 휴학을 하느냐고 구시렁거린다. 들은 체 만 체 휴학 처리를 마치고 발길을 돌리고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런데, 저 멀리서 본관 건물을 향해 달려오는 창근이 녀석이 보인다.
"야! 휴학은 했냐? 얼굴은 또 왜 이래? 초상났냐?"쓴웃음을 내보이는 나에게 대신 잽싸게 뭔가를 쥐어준다.
'1988년 2학기 등록금고지서 이창근. 수업료 면제. 기성회비 12만원.'"응, 이거 내껀데 니가 내라. 우리집은 그래도 여유가 좀 있어서 엄마한테 부탁했더니 좋아하시더라. 네 등록금은 지금 납부하고 오는 길이니까, 잔말 말고 내 등록금이나 내! 알았냐?" 알고 보니 창근이 이 녀석도 고민 끝에 고향집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였고, 허락을 받자마자 아침 일찍 내 등록금을 먼저 대납하고 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세상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낀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직 잊지 않았어, 그 고마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