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은 정말 음악을 좋아할까. 음악을 좋아하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새벽의 클럽이나 노래방, 녹음스튜디오에 자주 나타나며 실제로 귀신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이들에 대한 소문도 적지 않게 들어왔다. 음악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귀신이라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 소문에 힘을 실어주는 책이 있으니, 음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신(死柛)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사카 코타로의 <사신치바>다.
그는 사신이다. 말 그대로 죽음의 신이라는 뜻이다. 음반매장에 비정상적으로 자주 드나들며 이름으로는 동네이름을 쓰고, 대화의 포커스가 미묘하게 빗나가며 항상 비를 몰고 다닌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음악'이며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 '교통정체'라고 말하는 그의 이름은 치바다. 그 역시 동네이름을 딴 것이다.
치바는 정보부에서 연락을 받으면 '죽을 예정'인 사람을 조사해야 한다. 조사대상인 인간에게 접근해 대화를 나누며 관찰하는 것이다. 삶에 희망과 열정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지금 죽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지를. 조사기간은 일주일이다. 여드레째 되는 날 정보부에 보고를 하면 되는 것이다. '가(可)' 인지 '보류'인지 말이다. '가'로 보고를 하면 조사대상은 다음날 죽게 되고 치바의 일은 끝난다.
이사카 코타로는 사신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판단하게 했지만 정보부라는 곳을 두어 사신의 모습을 현장의 말단 공무원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신치바>는 진지하고 엉뚱한 사신, 치바의 눈으로 바라 본 여섯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이야기다.
한때 '조사하면 다나와'란 말이 유행했었다. '조사'라는 가벼운 발음이 소리 내어 나올 때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인간에 대한 관심도 연민도 없는 치바는 죽음 또한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일 뿐이다. 유일한 낙은 조사하는 틈틈이 음반 매장에 들어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광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신들은 음악 삼매경에 빠져 있다가 짬이 나면 일을 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치바는 착실하게 일하는 타입이다. 결국 대부분 가(可)를 주게 되지만 말이다.
총 여섯개의 단편 중 첫 번째 이야기<치바는 정확하다>의 그녀는 전자회사의 고객 불만 처리반에 근무한다. 못난 외모에 자신감도 없으며 늘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자신만을 지명해 불만을 얘기하거나 노래를 해보라는 등의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는 고객과의 만남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일상에 아무런 낙도 없고 굳이 살 이유도 없던 그녀에게 '가'를 보고하기에 손색이 없었지만 치바는 자신이 만났던 여섯 명의 인간 중에 유일하게 그녀에게만 '보류'판정을 하게 된다.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던 인생의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며 그 희망이 어떠한 결실로 이루어졌는지는 마지막 단편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일주일간 조사대상과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잠을 자기도 하지만 치바는 며칠 후면 죽게 될 그들에게 어떠한 감정도 연민도 느끼지 않는다. 철저한 방관자의 태도로 그들의 일상에 맴돈다. 하지만 치바가 다른 사신과 다른 점이 있으니, 죽음을 앞둔 그들에게 생을 정리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들의 복수를 위해 은밀한 계획을 하는 부부의 일그러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거나 원망으로 인한 살인이 단순한 오해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기도 하며 사랑을 시작하게 된 남자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위해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죽음을 맞게 된 사람의 풀리지 않았던 실마리를 풀 수 있게 도와주거나 미련을 덜 가지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이 일하는 날이면 늘 비가 온다며 투덜대던 치바에게 맑고 투명한 하늘을 느끼게 해 주는 마지막 단편<치바&노파>는 인간이 치바에게 선사하는 선물과도 같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생의 끝에서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채 떠나게 해 준 보답과 같이 말이다.
독특한 여섯 가지 스타일의 연작소설인 <사신치바>는 추리소설 같은 미스터리, 사랑이 시작되는 로맨스, 눈물 나는 감동까지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가 담겨졌다. 인간의 죽음을 다룬 내용이지만 결코 어둡지도 공포가 서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지도, 배고픔과 아픔을 느끼지도 잠을 자지도 않지만 썰렁한 감각으로 연기를 해대는 치바의 엉뚱함에 피식거리며 웃게 된다.
비오는 오후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면 그가 혹시 내 남은 인생의 가부를 결정하는 사신이라면 그에게 '보류'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지금 이 시간을 열정적으로 보내고 있는 것일까. 이사카 코타로는 <사신치바>를 통해 묻고 있다.
2010.05.13 16:49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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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양장)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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