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03)

― '작심삼일의 전형'을 물으면 다듬기

등록 2010.05.13 12:38수정 2010.05.13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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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심작일의 전형

.. 정말 매일 쓴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라서, 작심삼일의 전형을 물으면 당연히 '일기와 가계부'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  <혼마 마야코/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 옮김-환경가계부>(시금치,2004) 18쪽


"정(正)말 매일(每日) 쓴다는 것은"은 "참말 날마다 쓰기란"이나 "그야말로 날마다 쓰는 일이란"으로 다듬습니다. '보통(普通)일'은 그대로 둘 수 있지만 '여느 일'이나 '쉬운 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당연(當然)히'는 '마땅히'로 손질하고, '전형(典型)'은 '보기'로 손질해 줍니다.

 ┌ 작심삼일(作心三日) :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말
 │   - 굳은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다 / 금연 선언을 하였으나 작심삼일이었다
 │
 ├ 작심삼일의 전형을 물으면
 │→ 작심삼일로 그친 보기를 물으면
 │→ 작심삼일로 그치는 보기를 물으면
 │→ 사흘 만에 두 손 드는 보기를 물으면
 │→ 사흘을 넘기지 못하는 보기를 물으면
 │→ 며칠 만에 손을 터는 보기를 물으면
 │→ 며칠을 못 가는 보기를 물으면
 └ …

보기글을 곰곰이 살피면 여러 가지 한자말이 골고루 나타납니다. 이러한 한자말은 사람들이 제법 쓰고 있기 때문에 따로 다듬지 않더라도 이 글월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한자말들을 어렵잖이 알아들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 같은 낱말을 꼭 써야 했을까를 생각한다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참말 날마다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서, 얼마 안 가 그만두는 일을 물으면 저절로 '일기와 가계부'라고 말합니다."처럼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그야말로 날마다 쓰기란 어려워, 며칠 못 쓰고 손드는 일을 물으면 바로 '일기와 가계부'를 듭니다."처럼 이야기할 수 있고요.

우리들은 두 가지 말을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누구나 손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고, 하나는 누구나 손쉽게 알아들을 만하지 않은 한 꺼풀 씌운 말입니다. 지난날에도 두 가지 말을 쓰면서 살던 우리들이었으나, 지난날에는 얼마 안 되는 권력자와 지식인이 쓰던 말 하나에 거의 모든 여느 사람이 쓰던 말 하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여느 사람들 누구나 초중고등학교를 의무처럼 다니고 신문방송이나 인터넷을 즐겨쓰고 있기 때문에 말이 차츰차츰 껍데기를 뒤집어씁니다. 수수하고 꾸밈없이 쓰던 말은 스러지거나 밀리고, 겉바르고 꾸미는 말이 자꾸자꾸 치솟습니다. 나누는 말은 잊히고, 자랑하는 말이 떠오릅니다. 함께하는 말은 밀리고, 내세우는 말이 앞장섭니다.

'작심삼일' 같은 말마디를 헤아려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런 말마디를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신문방송이며 책이며 인터넷이며 끝없이 쓰고 있으니까 사람들한테 익숙하게 자리잡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말마디를 그리 먼 예전부터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들 여느 말투로 '흐지부지' 된다고 하거나 '어영부영' 그만둔다고 했습니다. '사흘을 못 간다'고 하거나 '며칠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국어사전 보기글을 들여다봅니다. "굳은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다"와 "금연 선언을 하였으나 작심삼일이었다"가 실려 있습니다. 이 보기글 가운데 첫 글월은 첫머리부터 엉터리입니다. '결심(決心)'이란 굳게 먹는 마음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굳은 결심'이라 하면 "굳은 굳은 마음(다짐)"을 가리킵니다. 잘못 쓴 겹말입니다. 건물이나 버스역 같은 데에 보면 '금연(禁煙)'이라는 말이 적혀 있곤 한데, 우리 말은 '담배 피지 마셔요'입니다. '담배 안 돼'입니다. '담배 뚝'이나 '담배 그만'입니다. 그러니까, "굳은 다짐이 사흘로 끝나다"나 "담배를 끊겠다 하였으나 며칠을 안 갔다"처럼 적어야 알맞고 올바르며 손쉽습니다. 널리 나누고자 하는 말투라면 널리 나눌 수 있도록 다듬어야 하고, 두루 함께하고자 하는 글월이라면 두루 함께 하도록 손질해야 합니다.

 ┌ 흐지부지 끝나는 보기
 ├ 어영부영 끝내는 보기
 ├ 어설피 그만두는 보기
 └ …

말뜻 그대로 "사흘 만에 그치다"라 하거나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며칠 만에 끝내다"라 하거나 "며칠을 가지 못한다"고 해도 잘 어울립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즐겁고 싱그럽게 어우러질 말마디를 살가이 찾을 노릇입니다. 서로서로 기쁘게 맞아들일 말투를 살피고, 다 같이 웃으며 받아들일 말결을 곱씹으며, 저마다 반가이 익히고 나눌 말씨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 몇 번 하다가 손 드는 일
 ├ 조금 하다가 그만두는 일
 ├ 얼마 못하고 손 떼는 일
 ├ 제대로 못하고 그치는 일
 └ …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릴 적부터 옳게 익힐 말입니다. 티끌 모아 큰산을 이룬다는 말처럼 조금씩 꾸준히 갈고닦으며 북돋울 말입니다. 먼 길은 한 걸음 두 걸음이 모인다는 말처럼 나날이 힘쓰고 애쓰며 돌볼 말입니다.

그냥저냥 쓰던 대로 쓸 때에는 내 말이 망가질 뿐 아니라 내 둘레 사람들 말까지 망가뜨립니다. 대충대충 하던 대로 하겠다고 할 때에는 내 삶이 흐트러질 뿐 아니라 내 둘레 사람들 삶까지 흐트리고 맙니다.

말이란 아무렇게나 할 수 없습니다. 생각이란 아무렇게나 품을 수 없습니다. 삶이란 아무렇게나 보낼 수 없습니다. 말이든 생각이든 삶이든 알맞고 즐겁고 올바르고 기쁘고 멋있고 훌륭하고 아름다이 보듬으며 다스려야 합니다. 곱게 말하고 곱게 생각하며 곱게 살아야 좋은 우리들 하루하루입니다. 맑게 말하고 맑게 생각하며 맑게 살아야 넉넉한 우리들 나날입니다.

제자리를 찾고 제길을 다스리며 제대로 흐를 말과 넋과 삶이 되도록 꾸준히 땀을 들이고 힘을 쏟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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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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