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313) 민주적

― '민주적이라고 부를지도', '민주적 제도' 다듬기

등록 2010.05.16 11:44수정 2010.05.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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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민주적이라고 부를지도

 

.. 정부는 이것을 민주적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민주적 원칙들이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지역들이 많이 있다 ..  <트래피즈 컬렉티브/황성원 옮김-혁명을 표절하라>(이후,2009) 94쪽

 

'이것을'은 '이를'이나 '이를 놓고'나 '이 일을'이나 '이러한 모습을'로 다듬고, '부를지도'는 '할지도'나 '말할지도'로 다듬습니다. "영향력(影響力)을 행사(行事)하지 못하는"은 "힘이 닿지 않는"이나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으로 손질하고, '지역(地域)'은 '곳'으로 손질해 줍니다.

 

 ┌ 민주적이라고 부를지도

 │

 │→ 사람들을 생각해서 한 일이라고 할지도

 │→ 사람들 뜻을 널리 받아들였다고 할지도

 └ …

 

오늘날 사회 틀거리에서는 '민주'라는 낱말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한 가지 제도를 가리키는 '민주'와 '민주주의'이기에 이 낱말을 다듬는다든지 거른다든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그대로 쓰기에 넉넉하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적'을 붙여 '민주적'이라고 할 때에는 좀 달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평화-평화주의'를 말할 때와 '평화적'을 말할 때에는 다릅니다. '통일-통일주의'를 다룰 때와 '통일적'을 다룰 때에는 다릅니다. '독재-독재주의'와 '독재적' 또한 다릅니다.

 

먼저, '평화-평화주의'에서는 '평화'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이 말마디가 가리키는 뜻과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화적으로 해결합시다!" 하고 외칠 때에는 "사이좋게 일을 풉시다!"라든지 "다투지 말고 일을 풉시다!"를 나타내려 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통일-통일주의'를 읊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통일주의'를 외따로 쓸 때에는 이 낱말이 가리키는 뜻과 느낌을 오롯이 살려야 한결 알맞습니다. 이러면서 '통일적'은 '골고루'나 '두루'나 '널리' 같은 낱말로 살며시 다듬어 낼 수 있습니다. '독재적'이라면 '멋대로'나 '제멋대로'나 '함부로'나 '마구잡이로'나 '마구' 같은 낱말을 넣을 수 있겠지요.

 

 ┌ 민주적 원칙들이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

 │→ 민주 원칙들이 거의 아무런 구실을 못하는

 │→ 민주주의 원칙들이 거의 지켜지지 못하는

 │→ 사람들 뜻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 사람들 뜻을 널리 귀기울여 듣지 않는

 └ …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면서 "민주적으로 진행합시다!" 하고 외칠 때에는 이 '민주적'이란 무엇을 가리킬까요? 우리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어떻게 마주하기를 바라면서 '민주적'이라고 외칠까요?

 

우리한테 '민주적'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하려고, 어떤 생각을 밝히려고, 어떤 길을 걸으려고 '민주적'이라는 낱말을 꺼내고 있을까요?

 

서로서로 머리를 맞대고 '민주적'을 슬기롭게 풀어낼 수 있는 나날을 꿈꿉니다.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민주적'을 알맞게 다듬을 수 있는 삶터를 꿈꿉니다.

 

 

ㄴ. 민주적 제도

 

.. 민주적 제도를 활용하는 싸움의 관건은 '여론'입니다. 여론은 대화와 토론으로 형성되지요 ..  <손석춘-민주주의 색깔을 묻는다>(우리교육,2010) 77쪽

 

'활용(活用)하는'은 '살리는'이나 '북돋우는'으로 다듬습니다. "싸움의 관건(關鍵)은"은 "싸움에서 눈여겨볼 대목은"이나 "싸움에서 깊이 살필 대목은"으로 손봅니다. "대화(對話)와 토론(討論)으로"는 "이야기로"나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며"로 손질하고, '형성(形成)되지요'는 '이루어지지요'로 손질해 봅니다.

 

 ┌ 민주적 제도

 │

 │→ 민주 제도를

 │→ 민주주의를

 │→ 민주주의 틀을

 └ …

 

우리 나라는 민주 나라라고 합니다. 여느 사람들이 나라에서 임자라는 소리입니다. 다만, 허울은 이처럼 여느 사람들이 나라임자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정작 여느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마음껏 낼 수 없도록 가로막혀 있습니다. 언론과 집회를 할 자유가 있다지만 언론과 집회가 제대로 자유를 누리며 너른 목소리와 생각을 쏟아내도록 열려 있는 나라라고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있는 이 나라가 어찌 민주 나라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목소리가 가로막히면서 생각이 가로막힙니다. 생각이 가로막힌 곳에서 삶은 가로막힐밖에 없습니다. 말이 가로막히고 글이 가로막힙니다. 옳고 바르게 가눌 말글이 아닌 가로막힌 말글인 터라, 사람들 스스로 옳고 바른 말글이 아닌 허울좋은 말글이나 겉치레 말글로 기울어집니다. 참다운 말글을 북돋우지 못하는 이 터전이요, 참다운 삶이나 넋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 나라입니다.

 

 ┌ 사람을 섬기는 제도를

 ├ 사람을 아끼는 제도를

 ├ 사람을 생각하는 제도를

 └ …

 

보기글을 생각해 봅니다. 민주 제도를 살리는 길을 살피는 보기글입니다. 민주 제도란 허울만 그럴싸한 제도가 아니라, 참다이 여느 사람들 삶을 아끼고자 하는 제도인 줄 알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이러한 민주 제도라 한다면 "사람을 섬기는" 제도라든지 "사람을 생각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사람을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민주 제도일 때에는,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일구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겠지요. "맑고 밝게 살아가려는" 몸짓을 나누려 하는 민주 제도일 테지요.

 

 ┌ 아름다운 터전을 가꾸려는

 ├ 삶터를 아름다이 일구려는

 ├ 맑고 밝게 살아가려는

 └ …

 

그런데 이런 민주 제도를 "민주 제도"라 말하지 못하고 "민주적 제도"라 말하는 지식인입니다. 북녘을 이야기하면서 "공산 제도"라 안 하고 "공산적 제도"라 하는지요? 우리는 "자본주의 제도"로 움직이지 "자본주의적 제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회주의 제도"로 움직이는 나라가 있을 뿐, "사회주의적 제도"로 움직이는 나라란 없습니다.

 

우리가 맑고 밝은 나라를 바란다면 우리 삶부터 맑고 밝게 가꿀 노릇입니다. 우리 삶을 맑고 밝게 가꾸고 싶으면 우리 넋과 얼을 맑고 밝게 가꿀 노릇입니다. 우리 넋과 얼을 맑고 밝게 가꾸려 한다면 우리 말과 글을 맑고 밝게 가꿀 노릇입니다.

 

착한 마음과 참된 생각과 고운 삶을 사랑하면서 이 땅에 슬기롭고 빛나는 사람누리를 펼칠 수 있는 좋은 틀거리를 차근차근 엮어 나가는 날을 꿈꿉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5.16 11:44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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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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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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