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웃기는 학교수업을 봤나"

시골 안성 개산초 4학년1반 공개수업 참관기

등록 2010.05.17 18:21수정 2010.05.1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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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재 개산초등학교 4학년 전부다. 이들이 오늘 공개수업을 끝낸 박향미 교사와 4학년 1반 아이들이다.

현재 개산초등학교 4학년 전부다. 이들이 오늘 공개수업을 끝낸 박향미 교사와 4학년 1반 아이들이다. ⓒ 송상호


안성 개산초등학교 4학년 1반이라고 하니 2반, 3반이 있는 줄 알겠지만, 4학년 1반이 전부다. 그럼 다른 학년은? 모두 그렇다. 학년이 반이고, 반이 학년인 시골 초등학교다.


지난 15일, 그들의 공개수업이 있었다. 소위, 학부모 초청 공개수업.

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연신 뒤로 눈이 간다. '울 엄마가 오실까. 누구네 엄마가 오셨을까. 아니 아빠가 오신 분도 있네'. 담임교사의 말은 한동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야, 누구 엄마 오셨다. 야, 누구 아빠 오셨다."

신기하다. 아이들에게 누구 엄마라고 누구 아빠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다 알아 맞힌다. 이게 시골 초등학교의 장점이 아닐까. 하여튼 오실 분이 다 왔다고 판단했는지, 아이들은 서서히 뒤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늘 주제 '표준어와 사투리(방언)'. 어떻게 이 주제를 풀어갈까. 자못 궁금하다. 먼저 '표준어와 방언'의 낱말 뜻을 사전에서 찾는 것으로 뚜껑을 열어간다. 아이들은 더듬더듬 찾는다. "부모님들도 뒤에 계시지 말고 함께 찾아 주세요"라는 담임교사의 말이 떨어지자 학부모들이 아이들 모둠에 전격 투입된다. 먼저 자신의 아이를 챙기는 듯하더니 조금 있으니 그런 것도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열심히도 찾는다. 사전을 찾아본 지 오래된 학부모들이지만, 그래도 한가락 하던 그 시절 실력이 어디 가랴. 생전 집에서는 아이들과 사전 찾을 일도 없었건만 학교에서 신나게 찾아본다.


방언을 가르치기 위해 영화 <해운대>를 모니터로 틀어준다.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이 '대박 코믹'이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모두 순간 웃음바다가 된다. 이쯤 되니 이미 아이들보다 뒤에 앉은 부모들이 더 신이 난다.

a 학부모 공개수업에 참여한 한 학부모가 자신의 자녀와 함께 사전을 찾고 있다. 이날 벌어진 아주 흐뭇한 장면 중 하나다.

학부모 공개수업에 참여한 한 학부모가 자신의 자녀와 함께 사전을 찾고 있다. 이날 벌어진 아주 흐뭇한 장면 중 하나다. ⓒ 송상호


사투리로 말해보는 시간은 그야말로 대박이다. "'싸게싸게'가 무슨 뜻이냐?"라고 모니터를 통해 물음을 던지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답을 말하며 떠들어댄다. 한 아이가 "울 엄마는 매일 아침 나에게 '싸게싸게'라고 말해요"라고 말하자, 순간 또 웃음바다. 뒤에 앉은 엄마도 "저거 우리 동네 말이랑게"라고 해서 웃음온도는 더 가열된다.


담임교사가 생소한 사투리를 읽는다. 어느 지방 말일까. 아이들이 알쏭달쏭 모르고 있을 때, 뒤에서 한 어머니가 "야, 드라마 '김만덕'할 때 나오는 말 아녀. '김만덕' 몰러"라고 이야기 하자, "아하 그렇구나"라며 한 아이가 "제주도"라고 외친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제주도요 제주도"라며 삽시간에 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마치 시장통에서 "싱싱한 갈치요 갈치"라고 외치는 듯.

조그만 쪽지가 아이들에게 나눠진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극 대본이다. 그래봐야 서로 한두 번 말할 수 있는 분량이다. 거기엔 각 지방 사투리로 적혀 있고, 아이들마다 각자 다른 내용의 대본이다. 처음엔 자신의 부모를 찾아 역할극을 해본다. 하지만, 잠시 뒤 무작위로 찾아가서 서로 사투리로 역할극을 한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하다 보니 교실은 삽시간에 '부산 자갈치 시장'이 된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교사도 모두 역할극을 하면서, 서로를 쳐다보며 재미있다고 깔깔 거린다.

a 역할극 지금 4학년 1반 아이들은 각 지방 사투리로된 역할극 대본으로 역할극 중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시끌벅쩍'한 것이 마치 재래시장이 학교에 선 것 같다.

역할극 지금 4학년 1반 아이들은 각 지방 사투리로된 역할극 대본으로 역할극 중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시끌벅쩍'한 것이 마치 재래시장이 학교에 선 것 같다. ⓒ 송상호


신기한 건 이렇게 어지러운 것 같은데, 담임교사가 교탁으로 돌아가 종을 땡땡 치자,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서 다음 순서를 기다린다. 평소 아이들에게 얼마나 질서 있게 수업을 하는지 자연스레 드러난다. 아이들 말로 "울 선생님 카리스마 짱"이다.

오늘 같은 날, 담임교사 입장에선 발표하는 아이들을 적당히 배분하느라 신경 쓰인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평소 손 들고 자기 의견을 많이 이야기 하던 아이가 오늘도 두 번 세 번 손을 든다. 교사 입장에선 평소 잘하지 않던 아이들, 특히 오늘 오신 학부모의 자녀가 손을 들고 적극적으로 발표했으면 하고 바란다. 다행히 조용하던 아이가 손을 들면 담임교사는 그걸 놓치지 않고 발표를 시킨다. 왜냐하면 뒤에 앉은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에게 온통 신경이 가 있을 테니. 어쨌든 담임교사의 눈과 머리가 참 바쁘다. 

45분 수업, 사실 웃다가 끝났다. 언제 시작했냐는 듯 끝나 버렸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만 있다면, 아이들은 만날 학교 가고 싶어 하지 않을까. 물론 공개수업이라 담임교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고, 사전에 준비해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더라도 그 수업이 어색하거나 평소 하지 않은 것을 한다는 티가 난다면 문제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연스럽다 못해 재미있기까지 했다. '억지로'라면 그렇게 할 수 없는 수업이었다.

개산초등학교(교장 이덕재) 4학년 1반 '박향미 선생님 짱'이다. 그리고 조그만 시골 초등학교 이래서 좋지 않을까.

a 사전 찾는 중 지금 아이들과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사전에 등재된 단어들을 함께 찿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재미있는 수업을 본 적이 있는가.

사전 찾는 중 지금 아이들과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사전에 등재된 단어들을 함께 찿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재미있는 수업을 본 적이 있는가. ⓒ 송상호

덧붙이는 글 | 개산초등학교 http://gaesan.es.kr/(031-672-3082)는 안성시 금광면 개산리에 위치해 있으며, 전교생이 80여명인 시골초등학교다.


덧붙이는 글 개산초등학교 http://gaesan.es.kr/(031-672-3082)는 안성시 금광면 개산리에 위치해 있으며, 전교생이 80여명인 시골초등학교다.
#안성개산초등학교 #공개수업 #박향미교사 #안성 #시골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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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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