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

다시 한나라당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등록 2010.05.23 10:30수정 2010.05.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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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고 이후 한국 사회의 혼돈과 분열은 심각한 정도를 넘어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처럼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을 본다.

 

그동안 날카로운 이념의 공세에 무력했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북한'과 관련된 국가안보는 쉽게 벗을 수 없는 운명의 굴레나 다름없다. 반세기의 질곡 속에서 영리해진 사람들은 말을 공식적인 관계에서 말을 아끼고 익명의 사이버 공간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곳 역시 권력의 칼자루를 쥔 정부는 그런 역사적 경험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현실, 정부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언론만이 호기를 잡은 듯 설치는 현실에서 순진한 유권자들만 혼란스러워한다.

 

국회가 없는 나라.

정권이 하자는 대로 들쥐처럼 죽음의 길로 가던 여당 의원들은 자신들만 가는 것이 아쉬웠던 것인지 죽음의 행렬에 야당의원들까지 끌어들이려 한다.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야당의원들에게 거침없이 북한 비호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여당 대표.

 

천암함이 두 쪽 나서 침몰하였듯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세종시 문제도 일거에 가라앉아 버렸다. 오직 북한 응징론만이 대세를 가름하는 이슈일 뿐이다.

 

민족의 장래가 보이지 않는다. 어렵게 씨를 뿌려 가꾼 남북간의 평화는 물 건너 가버렸고  한반도 운명은 풍전등화.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결코 막보기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를 희생하여 후손들은 살리겠다는 처절한 의미를 담은 말이다. 자신으로 모든 것을 끝내겠다면 부모는 없을 것이다. 나로 인해 후손이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종자를 베고 죽어가는 농부, 그건 부모의 마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들, 특히 여당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하고 싶다.

요즘 선거철이다. 민족에 대한 애정도 없고 역사의식도 없는 인간들이 당선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온갖 선심과 입에 발린 소리를 쏟아내는 계절이다.

 

그런데 지방선거임에도 정부는 마지막 종자까지 먹어치우는 막된 농부처럼 온갖 수단과 방법에 위기감까지 조성하면서 유권자들에게 1번을 강요한다. 덩달아 여당까지 가세하여  미래가 없는 선거판으로 만들고 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종교계의 반발을 잠재우고, 세종시를 주장하는 충청도민의 염원을 희석시키고, 생존경쟁에서 밀린 자영업자,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의 꿈을 죽이는 선거판. 정부의 발표대로 천안함 사고는 북한의 소행이라면, 그렇게 당한 책임자 처벌은 거론하지도 않고 오히려 정부 발표에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는 야당 의원들을 '죄빨'로 몰아붙이는 선거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천안함 사고 원인을 발표한 것은 전혀 정략적이지 않다는 말인지, 오히려 야당에게 천안함 사고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여당의 일부 국회의원들을 보고 있으면 후안무치와 적반하장의 전형을 보는 것만 같다.

 

국민들에게 내재된 이념에 대한 공포의식을 활용하여 국민의 정당한 심판을 받지 않겠다는 심보는 나중에야 어떻게 되건 종자라도 먹어치우겠다는 농부의 막보기와 무엇이 다를까?

 

적어도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작은 씨앗은 남겨야 함에도 잡아먹을 절호의 기회를 만난 것처럼 적대적 관계를 키워 영원한 분단을 획책하는 꼴이 너무 답답하다. 만약 지금대로 하여 지방 선거에서 여당이 이긴다고 하더라도 긴 시간을 두고 본다면 결코 한나라당에게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독재시절에도 삼선 개헌에 반대했던 여당의원들이 있었음을 상기하며 나를 죽여 민족을 살리는 씨앗이 되겠다는 장한 뜻을 가진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5.23 10:30ⓒ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후안무치 #적반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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