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와 창틀 하나

[골목길 사진찍기 10] 사람이 살아내는 이야기

등록 2010.05.25 13:28수정 2010.05.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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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마실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꽃과 꽃그릇과 대문과 섬돌과 문패와 창틀이 반갑고 즐겁습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에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 최종규

골목마실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꽃과 꽃그릇과 대문과 섬돌과 문패와 창틀이 반갑고 즐겁습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에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 최종규

 

골목동네에 서 있는 나무를 내려다보거나 바라보거나 올려다볼 때면 늘 생각합니다. 이 나무 한 그루는 누가 심었을까 하고. 이 나무 한 그루는 아무도 심지 않았어도 스스로 씨앗을 떨구어 천천히 더디더디 자라났을까 하고.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바로 아래쪽 송림1동 자그마한 집에서 집크기만 한 텃밭을 일구고 있는 할배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당신은 당신 스스로 나무를 심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당신은 배를 먹고 나서 배 씨앗을 심는다든지 깡지를 묻었을 뿐인데 이 가운데 싹이 트고 줄기를 뻗어 배나무가 되곤 한답니다. 이렇게 하여 능금나무도 몇 그루 얻었고, 매실나무와 살구나무와 포도나무까지 얻었다더군요. 나중에는 나무 스스로 떨군 '미처 못 먹은 열매'가 땅으로 스미어 싹이 트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애써 목돈을 들인다든지 큰돈을 들인다든지 하면서 나무심기를 할 수 있는 한편, 돈이 아닌 품과 마음과 세월을 들여 나무기르기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개발사업과 토목공사란 오로지 돈을 들여서 부수거나 짓는 일입니다. 이 가운데 돈이 아닌 따순 손길이나 너른 마음이나 긴 세월을 들이면서 보듬는 개발이나 공사란 보이지 않습니다.

 

예부터 집을 지을 때에는 흙에서 얻고 흙으로 돌려주도록 짓는다고 했습니다. 옷 한 벌 지을 때에도 흙에서 일군 푸나무한테서 얻은 실을 자아 한 땀 두 땀 바느질을 하여 지어서 입었고, 이렇게 얻어 지은 옷은 땅에 묻으면 금세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밥 한 그릇 얻을 때에도 흙에서 가꾼 곡식으로 밥상을 차렸고, 이렇게 차려 먹은 밥을 똥오줌으로 누면 거름이 되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즈음 우리들 살아가는 터전인 도시에서는 집과 옷과 밥 모두 흙에서 얻지 않습니다. 흙으로 돌려주지 않습니다. 돈으로 장만해서 돈을 들여 쓰레기로 내버립니다.

 

고이 이어가는 삶고리가 끊어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런 도시에서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할 때에 아주 마땅히 돈으로 어린나무나 큰나무를 사들여서 또다시 돈을 들여 일꾼을 부리고 기계를 써서 땅을 파고 박아 놓겠지요. 한 곳에 뿌리내어 백 해를 살아내면서 백 해에 걸친 숱한 이야기를 베푸는 나무가 아닙니다. 백만 원조차 아닌 천만 원이나 일억 원을 들여 나무심기 아닌 나무박기를 하며 겉보기로 그럴싸하게 꾸미는 도시 터전 나무입니다. 이러한 나무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깃들지 않습니다. 오로지 구경거리일 뿐입니다.

 

골목동네에서 자라나는 나무와 풀을 바라보면서 곱씹습니다. 골목집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에 붙인 창문을 마주보면서 생각합니다. 이 도시에서는 무엇을 보며 살아숨쉼을 느끼고 어느 곳에서 싱그러운 빛깔을 읽을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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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46. 인천 중구 경동. 2010.5.11.17:47 + F11, 1/100초

오동나무가 우쑥우쑥 자라면서 이웃한 나무전봇대보다 높이 솟아나더라도 눈여겨보아 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오동꽃이 피고 널따란 오동잎이 하나둘 돋아날 때에도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그렇지만 오동나무는 뿌리내린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우며 자꾸자꾸 키가 커집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오동나무는 하늘을 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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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47. 인천 동구 송림3동. 2010.5.11.14:20 + F13, 1/80초

울타리 따로 없는 골목집은 창 바깥이 바로 길입니다. 땅이 좀 있고 돈이 좀 있다면 울타리를 새로 올려세우며 집 안쪽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한다든지 집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할 테지요. 어쩌면 꽃그릇을 마련하거나 텃밭을 일굴 땅에다가 울타리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울타리를 세우지 않으면 골목은 그만큼 넓을 수 있고, 울타리가 섰음직한 땅에는 꽃과 푸성귀와 나무가 자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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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48. 인천 동구 송현2동. 2010.5.23.12:06 + F7.1, 1/80초

나무문살에 창호지를 바른 창문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골목집이 꽤 많은 인천 골목동네입니다. 나무문살과 창호지 창문은 산속 깊은 절집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 골목집에는 나무문살과 창호지 창문에다가 지난날 일본강점기 무렵 나무창틀까지 살아 있습니다. 다만, 문화재는 아니며 문화재로 여기는 공무원이나 전문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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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49. 인천 중구 인현동. 2010.5.23.11:18 + F7.1, 1/50초

우편번호가 세 자리일 때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드뭅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기껏 플라스틱 쪼가리 하나인 문패일 뿐이라고 여기고 맙니다. 그런데 바로 기껏 플라스틱 쪼가리 하나인 주제에 서른 해 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마흔 해를 넘게 살아냈을는지 모릅니다. 몇 살 먹은 플라스틱 쪼가리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플라스틱 주소패 밑에는 못을 박아 이름패를 붙였습니다. 그러나 처음 이곳에 이름패를 박고 살던 이가 떠나면서 못자리만 남았고, 새로 깃든 집임자는 벽에다 당신 이름을 적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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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50. 인천 동구 화평동. 2010.5.23.13:29 + F5.6, 1/40초

대문이 아닌 나무창틀 한쪽에 누름단추를 붙였습니다. 아마, 이 집 대문은 하나일지라도 이 집에서 깃들인 사람이 여럿이라 대문에 누름단추를 붙일 수 없었으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5.25 13:28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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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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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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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사진찍기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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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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