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제주로, 남자인 내가 해녀학교 다닌 이유

한수풀해녀학교 1기 졸업자가 보는 문화유산으로서의 '해녀물질'

등록 2010.06.04 11:13수정 2010.06.0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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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맘때쯤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작은 어촌마을에서는 제주해녀문화의 보존과 전수라는 기치 아래 '한수풀 해녀학교' 제1기 신입생 입학식이 열렸습니다. '해녀'와 '학교'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아이템의 조합 때문인지 '해녀학교'는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해녀학교'로 작은 어촌마을은 각종 공중파 TV 프로에만 20여 차례 그리고 신문, 라디오 등 기타 매체에 100여 차례 떠들썩하게 기사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해녀학교'는 2008전국주민자치박람회 주민자치센터 특성화 사업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 당시 나는 '한수풀 해녀학교' 학생이었습니다. 서울에서 해녀물질을 배우겠다고 다니던 두 남학생 중 하나였습니다. '해녀학교'와 '서울남자학생'이라는 이 조합 또한 어울리지 않기로 따지자면 앞에 것 못지 않아 TV, 신문, 라디오에 보도되어 유명세 아닌 유명세도 치렀습니다.

서울에서 제주로, 내가 해녀학교에 나간 까닭은

한수풀해녀학교 사진 ⓒ 이한영


평소 바다와 스쿠버를 좋아하고 종종 강구, 하저 등 남해바다나 제주 등지에서 해녀분들과 바다에 들어가보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흥미로워 해녀의 물질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없을까, 하며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한수풀 해녀학교 입학 안내 기사를 찾았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우리의 문화 유산인 '해녀'를 학교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는 사실과 그 발상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한림읍사무소 주민자치계에 십여 차례 문의전화를 하고 지원서를 낸 뒤, 결국 매주 서울에서 제주로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해녀학교를 다녔습니다.

이후 해녀에 대한 각종 미디어의 관심은 전과 비교해 과히 폭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색적인 아이템으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잡아야만 하는 방송의 특성도 있겠지만 제주의 무궁무진한 관광 자원 중 하나인 해녀문화가 이제야 제대로 재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해녀학교의 명성은 미디어로 인해 확대 재생산 되었고. 한수풀해녀학교 공식카페인 한수풀해녀학교(cafe.daum.net/jejudiver)에 많은 분들이 입학문의를 해왔습니다. 2010년 5월에 시작한 3기 입학생 53명 중에는 화가, 농업인, 의사, 은행원, 선생님, 건축사,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입학했습니다. 재미교포 한 분을 포함한 '외국인'이 7명이고 여자 직업 대명사인 해녀를 배우러 온 '남자'가 14명입니다. 해녀의 고령화를 걱정하는 이 시기에 '20대'가 13명입니다.

추측컨대 이들 가운데 실제 해녀가 되고자 온 분들은 몇 분 없을 것입니다(대부분 언론에서는 그렇게 비춰지고 보도하기를 좋아하지만). 그리고 하고 싶어하는 분이 있더라도 정작 고된 해녀의 삶을 며칠도 버티기 힘들 것입니다. 아마도 해녀사랑을 바다사랑과 동일시해 오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처럼 산과 물은 항상 대구(對句)를 이룹니다. 하지만 1800만이 등산인구라는 이 시점에 우리가 물을 즐길 곳이 어디 그리 많던가요? 한강시민 공원이 있다지만 한강변 공원에서 즐기는 것이지 정작 물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전 해녀 물질을 여러 각도로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녀 물질, 이렇게 개발해보면 어떨까요?

한수풀해녀학교 사진 ⓒ 이한영


한수풀해녀학교 사진 ⓒ 이한영


그 중 하나는 체험 관광으로의 해녀라는 아이템입니다. 선진국형 여행은 단순히 먹거리, 놀이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문화답사나 문화체험의 관광상품이 대세입니다. 하지만 정작 제주의 해녀문화는 체험관광으로 좋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되게 상품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두 번째 스포츠로서의 물질입니다. 육상, 수영, 승마 등은 원시시대 부터 내려온 실생활의 기술이 스포츠화 된 것이지요. 스키도 그 기원을  B.C 3000년 교통수단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태권도, 검도, 유도 등 다양한 격투기도 전쟁과 경쟁적 삶의 현장에서 그 기원이 있죠.

시작은 사냥과 살상에서 출발한 사격과 양궁은 이제는 어떤 것을 사냥하거나 죽이는데 의미를 두지 않고 얼마나 정확하게 맞추는가를 겨루는 경기가 되었죠. 이 모든 것이 지금은 최초의 본원적 목적에서 동떨어진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수렵, 낚시, 스킨 스쿠버도 사실은 실용적 목적에서 출발하여 레저화된 경우입니다. 

물질도 수렵과 낚시 스킨스쿠버처럼 바다에서 모두가 즐기는 레저화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실내사격 실내양궁처럼 바다에서 무엇을 잡는 것으로 겨루는 것이 아니라 실내 잠수풀에서 정교한 기술로 기량을 겨루는 경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물질은 태권도처럼 우리나라가 종주국인 스포츠가 되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으면 조금 황당하게 느껴지실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경기가 스포츠화 되기 이전에 이 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지금은 허황된 꿈처럼 느껴지지만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힘차게 추진하면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무형·유형문화재로서 해녀의 가치와 보존입니다. 위의 두 가지 개발 각도가 보는 관점에 따라 고된 해녀의 삶을 단순한 레저나 관광거리로 전락시킨다고 우려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해녀문화를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으로 접근한다면 그것은 기우일 것입니다.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더 보호받고 있듯이 말입니다.

해녀도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었으면

한수풀해녀학교 사진 ⓒ 이한영


한때 몇 만 명에 달하던 제주해녀가 지금은 5000여분 정도 계시다고 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고령화되어 대를 이을 해녀가 없다는 점입니다. 5000명이나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냐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해녀는 일시적이고 산발적인 해산물 채취조직이 아닌 제주의 문화적 역사적 환경적 특수성에 기반을 둔 자생적인 공동체 문화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해녀의 고유한 문화가 세계적으로 그가치를 인정받고 나아가 현재 해녀를 하고 계신분들이 인간문화재처럼 보호 육성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대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더 사라지기 전에 전통해녀문화를 복원하고 보존하여야 합니다. 나아가 세계에서 유일하고 독특한 해녀 문화를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해녀문화에는 물질외에도 유형적으로는 불턱(일종의 탈의실로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쬐며 쉬는 곳으로 공동체의식을 나누는 공간), 등과 무형적으로는 해녀노래, 영등굿  등이 있습니다.

부디 '해녀학교'가 작은 어촌마을의 이벤트로 끝나지 말고 더 나아가 해녀문화의 보존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한영씨는 한수풀해녀학교 1기 졸업생이며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추진 운동본부 제주해녀문화보존회 대표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한영씨는 한수풀해녀학교 1기 졸업생이며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추진 운동본부 제주해녀문화보존회 대표입니다.
#해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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