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주름 깊은 낙동강

'4대강 사업'에 부쳐

등록 2010.06.08 17:58수정 2010.06.0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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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거품찌꺼기들이
이스트를 넣은 것처럼
점점 배가 부풀어 오르는
잿빛 낙동강 허리쯤에서
나는 보았다.

밤도둑고양이 같이
어젯밤 함부로 몰래 내다버린
폐가구 쓰레기더미 위로
검은 비닐 떼들
푸득푸득 모래먼지 날리며
누런 광목 같은 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것...


퀴퀴한 냄새 나는
강바닥에 고개 꺾고
쳐박힌 갈대들 사이로
썩은 수초들 거름냄새 풍기고,

물기름 때 날개에 흠뻑
묻힌 몇몇 아기 고니떼들
쓰레기더미 수풀 사이로 
허기져서 먹이 찾으러 분주히
갈귀 닳도록 헤집고 다니는 것 보았다.

바람 따라 물따라
흘러 흘러 예까지
밀려 밀려 내려온
하얀 스치로폴 떼들…
비닐 봉지 떼들…

을숙도 하구언
폐부 깊이 들어와
쿨쿨쿨 기침 소리 뱉으며
어린 아이 오줌 줄기처럼
가늘어진 오후 그림자 이끌고 
힘겹게 주름 깊은 강물 위로 정처없이 흘러갔다.

한때 낙동강변에서 나온
우유빛 재첩국 아침을
정수리에 이고 골목길마다 
(재첩 사이소 낙동강 재첩 사이소)
외치던 낙동강 
그 푸른 물빛의
새벽은 다 어디 갔을까.


을숙도에 하구언 들어서고 부터
점점 주름이 깊은
늙어가는 낙동강이여, 

늙은 창녀의 자궁 같이
기형어들이 잉태되고
죽은 물고기들이
심심잖게 부유하며
쓰레기더미 뒤섞인
갈대 숲 사이로 떠다닌다…

내 어릴적, 오리걸음 할머니
나무 함지 이고
안짱 걸음 할아버지
등지게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구포장 가는 날이면,

우리 집 흰둥이랑  
어디까지 꼬리치며 
쫄래 쫄래 따라가던
내 아버지 옥빛 대님 같이
길게 길게 풀려
노을 바다에 닿던 
낙동강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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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나루를 찾아서>에서 '율지나루' ⓒ 박창희


#낙동강 #낙동강 살리기 #보리밭 #보리피리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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