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했다, 가해자가 아버지라면?

상담기관 사례를 통해 본 친족성폭력의 실태

등록 2010.06.06 20:18수정 2010.06.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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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하지 못할 기가 막힌 일이지만, 가족 중 한 사람이 성폭력 가해자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것도 가해자가 아버지라면?


1992년 1월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의 일이다. 삭풍의 가위질에 목련 꽃봉오리가 눈처럼 날린다. 충청도 충주의 겨울 밤하늘은 은빛이었다. 눈과 비가 매서운 겨울바람에 섞여 몰아친 1월 17일 저녁, 보은이의 남자친구인 진관이는 13년이나 의붓딸을 성폭행해온 가해자 김영오를 살해하고 만다.

'김보은-김진관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김보은-김진관 사건'으로 이름 붙여진 이 사건을 기억하는가. 보은이의 어머니는 보은이가 7살 때 김영오와 재혼을 했고, 김영오의 짐승만도 못한 만행은 의붓딸 보은이가 9살 때부터 시작됐다. 이때부터 시작된 상습적인 성폭행은, 보은이가 12살이 된 이후에는 목욕중이거나 생리 중에도 거의 매일 자행됐다. 음란비디오를 보고 그대로 할 것을 강요했고 각종 변태적이며 잔혹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보은이가 마침내 천안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주중에나마 아버지와 떨어져 기숙사에 머물게 되었고, 학교 행사에서 만난 진관이와 연인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보은이는 진관이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었다. 보은은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괴로워하며 진관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며 '헤어지자'고 말하게 된다.

보은이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진관이는 고통스러워하는 보은이를 도우려는 마음에 그 길로 김영오에게 찾아가 "이제 보은이를 놓아주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하지만 당시 충주검찰지청 총무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김영오는 오히려 "이것들을 다 잡아 넣고야 말겠다, 아니, 죽여 버리겠다"고 당당하게 나왔고, 진관이는 격분하여 김영오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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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김보은-김진관사건'(위)과 1991년 '김부남 사건' 기사. 이 두 사건은 1993년에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 여성신문


'김부남 사건'과 함께 성폭력특별법 제정에 한몫

'김보은-김진관 사건'은 그동안 금기시되어왔던 근친 성폭력의 엄청난 실상을 드러낸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고, 안식처로 여겨지던 가정 내에서 일어난 성폭행, 그래서 방치될 수밖에 없었고 또 지속될 수밖에 없는 근친성폭행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이 사건은 전년도에 일어난 '김부남사건'(1991년 1월 30일, 9세 때 자신을 성폭행했던 송백권을 살해한 사건)과 함께 우리나라 성폭력에 대한 인식에 큰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당시 천안까지 올라가 '김보은-김진관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에 참여했다는 광주여성민우회 백희정 사무국장은 "이 사건은 가부장적인 권위를 무기로 12년 동안이나 성적 노리개로 구타와 성폭력을 일삼아온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살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점에서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며 "친족성폭력이야말로 피해자의 인격과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회고했다.

또 "당시 전국규모의 공동대책위원회의 조직적인 활동은 친족 성폭력피해자 보호와 성폭력추방운동의 장을 새롭게 마련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으며 이듬해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후 18년이 지났다. 그러나 굳이 수치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아직도 연일 매스컴에선 친족에 의한 성폭력 사례가 쏟아져 나온다.

친족성폭력의 대다수는 '아버지'... '친부'도 절반이나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 상담건수 1338건 중 15.1%인 201건이 친족이나 친인척에게서 발생한 성폭력 상담인 것으로 집계됐다.

성폭력 피해를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로 살펴보면, 전체 1338건 중 아는 사람이 1137건(85.0%)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며, 모르는 사람 143건(10.7%), 미상 58건(4.3%)순으로 나타났다. 가해자가 아는 사람인 경우, 직장이 328건(24.5%)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는 친족, 친·인척 201건(15.1%), 초중고 및 대학 110건(8.2%), 친밀한 관계 101건(7.6%), 주변인의 지인 97건(7.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2009 성폭력상담소 보도자료)

특히 가정 내 성폭력 상담 201건 중 104건은 친족에 의해 발생하였고 이중 아버지에 의한 성폭력은 50여 건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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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성폭력 가해자별 현황 2009 성폭력상담소 자료 ⓒ 성폭력상담소


광주여성민우회 부설 <가족과성상담소>의 보호시설인 '다솜누리' 입소자를 중심으로 집계한 지난해 친족성폭력 자료에 따르면 가해자의 80%이상이 30~40대였으며, 가해자 중 13.4%는  전과자(성범죄전과 22.2%)였던 것으로 집계돼 관심만 가졌으면 사전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2009 가족과성상담소 자료)

가해자는 역시 아버지가 가장 많은 70.3%(친부 54.1%, 계부 23.5%, 양부 5.4%)를 차지했으며 오빠가 13.5%, 그 외 친족이 16.2%로 뒤를 이었다. 피해 당시의 연령대는 중학생이 62.3%, 초등학생이 27.5%, 고등학생이 7.2% 이었고 학령기이전도 2.9%나 됐다.

특히, 피해자 본인이 신고하는 경우는 37.0%, 어머니나 지인이 신고하는 경우가 각각 30.4%였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증거 불충분'이 27.6%로 가장 많았으나 '가족친지의 만류'로 못한 경우가 20.7%, '가해자에 대한 인정' 때문에 못한 경우도 17.2%나 차지했다.

친부성폭력의 경우 피해자 처벌의사 반영 힘들어

#사례1
▶ 피해자 : OOO(여, 18세)
▶ 가족관계 : 아버지, 여동생

▶ 피해내용
- 피해자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살게 됨
- 피해자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버지에 의한 성폭력(강간)이 지속되어 왔으며,  중학교 1학년에 재학하던 중 임신이 되어 학교를 자퇴하였고, 아이를 출산하여 입양시킨 경험이 있음
-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아버지에 의한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여 낙태함
- 고등학교 2학년부터 성폭력이 중단되었으나 여동생(중 2)이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됨
- 아버지를 신고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신고할 경우 아버지마저 없이 살아야 하고, 자신이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신고를 미룸. 그러나 동생의 임신에 충격을 받아 주변의 사회복지사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신고를 하게 됨
- 가해자인 아버지가 출소를 앞두고 있음.

#사례2
▶ 피해자 : OOO(여, 12세)
▶ 가족관계 : 어머니, 의부

▶ 피해내용
- 피해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 의부와 함께 살게 됨

- 친어머니와 의부사이의 성관계시 피해자를 함께 있게 하여 성관계하는 것을 돕게 함
- 친어머니가 안 계시면 성추행을 요구하고 지속적인 피해를 입음
- 학교 선생님이 알게 되어 상담소로 의뢰가 되어 쉼터에 입소

#사례3
▶ 피해자 : OOO(여)
▶ 가족관계 : 아버지, 어머니(이혼, 타지역 거주), 오빠
▶ 피해내용
- 피해자의 부모는 사이가 좋지 않아 다툼이 많았고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살게 됨

-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성추행은 이후 3년 동안 지속되었고, 중학교 진학 후 오빠의 성추행이 있었음
- 오빠에게는 사과를 받았으나 아버지는 예뻐서 한 행동이었다며 사과하지 않음
- 본인 스스로 독립할 수 없는 상황이라 현재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음

믿기 어렵겠지만 위의 사례는 최근 <가족과성상담소> 입소시설인 '다솜누리'에 접수된 가정 내 성폭력 사례들 중 일부다. 더 많은 사례가 있지만 일부만 소개한다. 문제는 상담기관 등에 접수되지 않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근친강간 성폭력사례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친부의 성폭행이 결코 희귀한 사건은 아니라는 데 오늘의 비극이 있다.

특히 아버지가 딸을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한 경우, 실형이 선고된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의 선처로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사회봉사, 형식적인 교육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아 어린 피해자의 법적 처벌의사가 거의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친족성폭력은 가장 큰 후유증을 남기는 범죄

또, 아버지라는 제왕적인 권위 때문에 그나마 형식적인 교육프로그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교정·교화를 기대하기란 힘든 실정이다. 이럴 경우 가해자가 범죄사실을 인식하고 죄를 뉘우치거나 진심으로 사죄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아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2차적인 피해 또한 심각하다.

'가족과성상담소' 허정순 소장은 <오마이뉴스>와 전화·이메일 인터뷰에서 "유년시절 친족에 의한 성폭력은 청소년 대상 성폭력 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후유증을 남기는 피해로, 성장기를 거치면서 심리적 위축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가족에 대한 신뢰가 깨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허 소장은 또 "대부분의 친족성폭력 가해자는 친부 또는 의부인데 같은 공간에 생활하고 있는 가해자와 분리가 우선돼야 하며, 어머니가 이혼을 결심하게 될 경우 피해자는 보호시설에 입소하지만 가족에 대한 지원이 따로 없어 장기적으로는 자립할 수 있도록 주거지원사업이 절실하다"며 고 강조했다. 

'영혼의 살인마' 검은 그림자... 공포에 떠는 아이들

여성들은 일상에서 유무형의 수많은 성폭력을 경험한다. 음란한 농담 등 언어폭력으로부터 시작해 공공장소에서의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 통신매체를 통한 희롱, 골목길의 변태, 대중교통 치한, 데이트 폭력, 몰래카메라 등등.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장소나 상황은 거의 없다. 하지만, 생각만해도 가슴 떨리는 것이 가정 내 성폭력 사건이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렵고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도 망설여진다. 아들녀석 엉덩이만 두드려도 "아빠, 변태?"라고 반문하는 요즘 아이들인데,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면 그 후유증은 너무나 심각하다. 사건이 발행할 때마다 커다란 사회적 파장이 이는 것도 유사하다. 단기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대책 역시 유사할 수밖에 없다.

친족성폭력 사실을 알게 되면 가해자로부터 분리하여 보호, 지원계획이 수립되어야 하는데 가해자가 친권을 주장하는 경우 현실적으로 그 실행이 어렵다. 실제로 강제로 집으로 끌려간 친족성폭력 피해 청소년이 자살에 이르는 극단적인 사례처럼 친권제한 및 친권상실제도는 친족성폭력 문제에 있어 중요한 쟁점이자 현실적인 필요성을 가진다.

친권상실 및 제한선고에 관한 법제도 개선과 관련기관장에게 친권제한 및 친권상실 심판 청구권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 또 아동보호조치를 위한 법원의 역할강화와 법원시스템의 전문화, 실질적인 행정집행력의 강화 등의 방안이 재고되어야 한다.

다행히 누군가의 도움으로 가해자가 설령 법에 의한 처벌을 받는다 해도 어린 소녀의 마음에 남은 깊은 상처가 언제나 치유될지, 치유될 수 있기는 한 것인지 그저 먹먹할 뿐이다. 짐승보다 못한 이들로부터 무방비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가해자가 '가족'이기에 미워하다가도 그 관계에 혼란스러운 감정에 괴로워하고, 그것을 묵인하거나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원망하고 무기력함에 안쓰러워하는 우리 아이들을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가족'이라는 이름. 그늘에서 상처받는 가족들이 있는 한, 그 이름은 의미를 잃은 단어에 불과하다. 제2의 '김보은-김진관 사건' '김부남 사건'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또 다시 '정당방위냐, 아니냐'의 여부를 놓고 무죄인가 유죄인가 갑론을박 할것인가?

덧붙이는 글 | 현재 친족성폭력 피해 아동, 청소년에 대한 지원은 일반 성폭력피해자와 피학대아동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09년 기준 보건복지가족부 지원기관으로는 아동보호전문기관(44개소) 및 공동생활가정(35개소)이 있고, 여성부에 신고, 운영되고있는 기관으로는 성폭력상담소(172개소), 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28개소),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20개소), 여성·학교폭력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16개소), 해바라기아동센터(4개소)가 있다. 각 기관들은 친족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지원 면에서 본다면 다소 중첩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기관마다 대상자나 서비스 전달방식, 서비스 내용 등의 면에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현재 친족성폭력 피해 아동, 청소년에 대한 지원은 일반 성폭력피해자와 피학대아동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09년 기준 보건복지가족부 지원기관으로는 아동보호전문기관(44개소) 및 공동생활가정(35개소)이 있고, 여성부에 신고, 운영되고있는 기관으로는 성폭력상담소(172개소), 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28개소),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20개소), 여성·학교폭력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16개소), 해바라기아동센터(4개소)가 있다. 각 기관들은 친족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지원 면에서 본다면 다소 중첩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기관마다 대상자나 서비스 전달방식, 서비스 내용 등의 면에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성폭력 #친족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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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를 기존 언론들이 다루지 않는 독자적인 시각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웃을수 있게 재미있게 써보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사, 저에게 맡겨주세요~^^ '10만인클럽'으로 오마이뉴스를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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