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가 바로 '담벼락'이다

[取중眞담] 젊은 표와 전국 '담벼락' 1만3388개

등록 2010.06.01 22:18수정 2010.06.0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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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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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 두 달 전에 "(악을 이기려면)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고 격정을 토로했다. ⓒ 오마이뉴스 그래픽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해 이맘때 쏟아낸 격정 발언이다. 지난해 6월 25일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 30여 명과 자택 부근의 한 식당에서 오찬을 하면서 한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몸 반쪽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고 했고,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권양숙씨의 손을 잡고 펑펑 울었던 그는 이날도 감정에 북받쳐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고,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무엇'을 이기는 길인지, 목적어를 적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목적어가 무엇인지를 다 안다. 그는 이에 앞서 11일 저녁 6·15 공동선언 9주년 특별연설에서 "많은 국민들이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 것을 걱정하고 있다"면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고, 지난해 초부터 이명박(MB) 정권이 민주주의와 민생경제 그리고 남북관계의 3대위기를 불러왔다고 경고해 왔기 때문이다.

평화공존에서 전쟁 위기로... '실제상황'이 되고만 DJ의 예언

불행하게도 그의 예언은 이제 '실제상황'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이 난 천안함 사건과 이를 '안보장사'에 활용한 MB 정부의 무모함으로 한반도의 안보 리스크와 전쟁 위기지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남북한의 국가 최고 지도자들이 손을 잡고 화해협력과 평화를 다짐했던 6·15공동선언은 10년만에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평화공존에서 전쟁위기로 치닫는 남북관계의 역주행을 막을 브레이크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6·15공동선언을 부정하는 듯한 모호한 태도로 지난 정부와의 '무모한 차별화'를 꾀하고, 말로는 '실용'을 외치면서 행동은 '강경'을 고수하고, 물위로는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물밑으로는 북한 붕괴 대비계획을 짜 '신뢰의 위기'를 자초하고,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며 무대책으로 일관한 MB정권의 필연적 결과다.

'부자 감세'와 '지출 확대'로 요약되는 'MB노믹스'는 임기중 90조 원의 국가재정수입 감소에도 불구하고 4대강사업 같은 '삽질' 위주의 무리한 국책사업 추진으로 나라살림이 거덜날 만큼 국가채무(2007년 299조→2009년 360조)가 급증한 결과를 초래했다. 하루에 1조 원씩 쌓여가는 국가채무 증가속도는 OECD 28개 회원국 가운데 단연 1등이다.


MB의 '747' 대선공약은 '447' 공약으로 추락한 지 오래고, 연간 60만 개, 5년간 3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은 오히려 일자리 7만 개 감소(2009년)로 나타났다. 특히 청년 실업률을 절반으로 축소(7~8%→3~4%)하겠다는 공약 역시 '사실상의 실업자'가 400만 명을 넘어서는 '400만 백수' 시대를 여는 것으로 끝났다.

반인권과 반언론의 역주행으로 인한 민주주의 위기는 국가폭력이 극대화된 용산참사와 언론악법의 강행처리 및 방송인 김제동의 강제퇴출로 상징되는 MB정권의 방송장악으로 요약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종합편성채널' 선정에 목을 맨 '조중동'은 언론 본연의 책무인 권력의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포기한 채 'MB의 푸들'(애완견)로 전락했다.

이번 선거는 MB정권 중간평가이자 4대강·세종시 중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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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30일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투표현장 모습. ⓒ 유성호


이런 상황에서 집권 반환점을 앞두고 있는 MB정권의 역주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표밖에 없다. MB정권의 집권 반환점에 치르는 선거여서 누가 보기에도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중간평가'일 수밖에 없는 이번 선거는 4대강사업과 세종시 같은 대형국책사업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승리가 가져올 후폭풍은 눈에 선하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과 '불통'하는 이 정권의 '국민 무시' 국정운영과 '밀어붙이기' 국책사업은 더욱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 정권은 이미 지난 대선에서의 승리를 '한반도대운하' 공약에 대한 승인으로 제멋대로 해석해 밀어붙이다가 민심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4대강사업으로 '위장축소'한 바 있다.

반대로 야당의 승리는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국정운영을 저지할 동력을 가져올 수 있게 된다. 유시민 경기지사후보는 이미 여러 차례 "제가 도지사가 되면 4대강사업으로 파헤친 준설토를 경기도 어디에도 쌓아놓을 수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실성 없는 엄포가 아니다. 4대강 사업 권한은 중앙정부에 있지만, 지방단체장들이 법적-행정적 절차를 밟아 환경영향평가의 재조사와 준설토 적치장 거부 같은 수단방법을 통해 사업을 지연시킴으로써 사실상 중단시킬 수 있다.

또 그에 더해 4대강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안희정 충남지사후보(금강)와 이광재 강원지사후보(북한강), 그리고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낙동강)까지 승리하면 '4대강 사업'은 '1대강 사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것은 '4대강사업이 그렇게 국리민복을 위한 좋은 사업이라면 1개의 강부터 우선사업으로 먼저 해보고 4대강으로 확대하자'는 합리적 중도의견과도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투표용지는 권력을 이기고, MB정부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종이총알'인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젊은 시절 목숨 걸고 이뤄낸 이 땅의 민주주의가 MB정권이 들어선 이후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참혹한 현상을 지켜보며 팔순을 훌쩍 넘긴 노구를 이끌고 또 다시 광장에 섰다. 그리고 그는 후배들에게 "여러분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민주화, 서민경제, 남북화해를 위해 힘써 주세요"라며 이렇게 말했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담벼락'은 전국에 1만3388개나 있다

그날 격정을 토로한 오찬에서 '연부역강하니까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은 이들은 70대의 한승헌 전 감사원장, 60대 중반인 한명숙 전 총리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50대 후반인 이해찬 전 총리 등이다. 이 가운데 한 전 총리는 MB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서울시장후보로 직접 나섰고, 이 전 총리는 그의 선대위원장으로 나섰다.

이들이 그럴진대, '나이가 젊고 기력이 왕성한' 청년들이라면 여당을 지지하건 야당을 지지하건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나가서 표의 '세대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인이라는 동물은 유권자 표의 무게만큼 정책과 공약을 짠다. 결국 유권자의 한 표는 자기결정을 넘어선 자기존중이다. 청년들은 자존을 위해서도 투표소에 가야 한다.

2002년 12월 18일 대선을 하루 앞두고 '정몽준 폭탄'이 터졌을 때 모두가 선거는 끝났다고 했다. 그때 낙담하지 않고 투표장에 나간 젊은 표가 '바보 노무현'을 구했듯이, '담벼락'에 욕만 하는 것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을 살짝 비틀면 '백욕(百辱)이 불여일표(不如一票)'다.

투표소가 바로 '담벼락'이다. '담벼락'은 전국에 1만3388개나 있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6.2지방선거 #김대중 #노무현 #담벼락
이 기사는 연재 2010 지방선거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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