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즈음한 강사들의 기자회견14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시민단체 및 학생단체 등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지난달에 나는 700만원을 벌었다. 나도 놀랐다. 좋다고? 이건 미친 짓이다. 시작은 1~2월 수입이 '0원'이라는 현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의 부탁 전화가 걸려온다. 시간만 맞으면 '무조건' 오케이다. 이번엔 천운이 따랐다. 그렇게 4개대학 5과목 24학점이 기막히게 겹치지 않고 배치되었다. 이렇게 달리면 6월쯤에 마이너스 통장을 졸업하는 기막힌 일도 가능하다.
개강을 하면서 월~금을 기준으로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75분 기준으로 일주일 16번 강의를 위해 지하철 250정거장 지나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 체력고갈. 하지만 고생이 기뻤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평생 다시 오겠는가? 물론 이동안 내 공부는 하나도 못했다. '조금' 못했다 이런 것이 아니라 '아예' 못했다(강사와 교수의 간격이 벌어지는 정확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짬짬이 칼럼을 쓰는 등의 부수입 등을 합쳐서 매달 400만원 정도를 벌었다. 그런데 5월 달에 또 다른 접촉이 있었다. 연구용역 공모가 눈에 보였다. 내가 공부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주제였다. 그러나 약간 응용하면 가능할 듯했다. 그렇게 2주를 밤새워 연구 프로포잘을 준비했다. 뽑아만 주면 목숨바쳐 연구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정성(?)이 통했는지, 운 좋게 선정되었다. 150만원의 선금을 받았다.
그때 한 온라인 교육콘텐츠 업체에서 연락이왔다. 몸은 녹초였지만 계속 7~8월이 생각났다. 이 기간 예상수입은 0원이다. 그리고 다음학기 강의 배정 전화도 늦다. 이미 물건너간 강의가 많다는 거다. 대충보니 100만원도 벌 수 있을까 의문이다. 고로 내가 '현재 몸 상태'를 고려할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얘기를 들어보니 1주일 정도 바짝 촬영하면 한 한기 분량이 완성된단다. 그러면 150만원을 받을 수 있고 이후 강의가 개설될 때마다 수강생에 따라 급여가 지속적으로 나온단다. 이른바 시간강사에게 고정수입이 생긴다는 거 아닌가. 마다한다는 것은 사치.
중간고사 기간을 전후하여 약간의 틈이 나는 시간을 노렸다. 밤새워 강의안을 준비하고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옷을 바꿔 입으면서 촬영을 했다. 그렇게 몸은 무너졌다. 촬영이 끝나니 중간고사 채점할 것이 700장이다. 또 1주일을 꼬박 밤을 새웠다.
하지만 괜찮다. 벌 수 있을 때 벌어놓는 게 나에게 좋고 내 가족에게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1년에 700만원을 버는 강사가 수두룩한데, 나는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몸에 이상이 왔다. 위궤양, 흉통, 소화불량. 온몸에 근육통. 한의원에 가니 '기'가 빠졌단다. 한 달의 절반을 뜬 눈으로 지샜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시간강사는 미래를 설계해서는 안 된다?난 왜 이렇게 '지독히도' 살아야 했을까? 왜 강의를 줄이지 않는 것일까? 건강도 문제지만 중요한 것은 '내' 공부를 하나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나 아직 박사 아니다. 학위논문이 제일 중요한 것인데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지난 3개월간 1%도 진도를 나아가지 못했다.
무슨 소리. 이건 주유소 아르바이트와는 다르다. 내 개인적인 이유로 한 타임 쉬고 다음에 복귀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쉬면 복귀는 없다. 그래서 시간강사는 미래를 '함부로' 설계할 수가 없다. 다시는 오지 않을 '찬스' 앞에서 조금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어차피 나를 도와줄 사람은 대학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고 내 후배도 아니다. 이 사회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이 사회의 분위기는 "시간강 3만원? 식당 아주머니는 하루종일 일하고 5만원 받습니다!"라고 따진다. 그러니 이렇게 사람이 죽어도 동정은 하지만 '한없이 나약한 인간' 그 이상의 논의를 하지 않는다.
시간강사는 이러한 상황을 매우 공포스럽게 느낀다. 시간강사가 이런 존재라는 것에 심각한 회의를 느낀다. 공포는 사람을 위축시킨다. 그리고 비틀어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떤 시간강사는 다가오는 미래에서 희망을 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자살을 택한다. 내가 미친듯이 이번 학기를 보내는 것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공포로 위축된 내 심리적 상황 때문이었다.
답? 그건 나도 모르겠다. 몇몇의 요구사항을 보면 이론적으로는 전혀 손색이 없지만 과연 '한국사회'가 여기에 답을 해 줄지는 의문이다. 다만 이런 삶이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 앞에 놓여있다는 것이 분명한 사회적 낭비라는 것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사회는 시간강사를 '잘' 활용할 생각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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