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면 어떡해요?" 난생 첫 TV출연에 떨다

[지방선거] 대타로 나간 6.2 지방선거 비례대표 TV토론회... 실수 연발에 진땀

등록 2010.06.03 18:35수정 2010.06.0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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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전국의 시·도·교육청 등 지방의 리더들이 결정됐다. 지난 2주의 선거 운동 기간 끝에 시장, 도지사, 구의원, 시의원, 교육감 등 지역 대표자들이 뽑힌 것이다. 지방선거 기간 동안 나는 사회당이라는 정당에서 부산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의 선거 운동을 했다.


시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며 사회당을 알리기도 하고, 각종 선거운동과 관련된 일을 처리한다고 2주를 정신없이 보냈다. 5월 마지막 주에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하는 TV 토론에 출연하는 사회당 비례대표 후보를 위해 선관위 사무실과 부산MBC 방송국을 줄기차게 쫓아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비례대표 후보가 갑작스런 개인사정으로 TV 토론회에 출연할 수 없게 되어 내가 대신 토론회에 나가게 됐다. 26살 밖에 되지 않고 아직 대학에서 인문·사회과학을 배우고 있는 정치 초짜인 나에게 토론회에 나갈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첫 방송 긴장을 풀어준 안동진 아나운서

 6·2 지방선거 부산광역의원 비례대표 토론회, 안동진 아나운서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6·2 지방선거 부산광역의원 비례대표 토론회, 안동진 아나운서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배성민

드디어 5월 28일 오전 11시 부산 MBC 방송국에서 부산광역시의원 비례대표 TV 토론회 녹화가 시작됐다. 나와 함께 하경옥 진보신당 후보, 김명미 국민참여당 후보가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첫 출연이라 긴장이 많이 됐다. 나를 제외한 두 후보자들은 모두 지역에서 쟁쟁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 후보는 신라대학교 총학생회 회장 출신이었고, 김 후보는 부산 민주공원 이사로 역임하고 있었다. 쟁쟁한 타이틀을 보니 더 긴장이 됐다.

녹화장소에 들어가서도 긴장이 돼 떨고 있는데 토론회의 사회를 보는 안동진 아나운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직 군대 안 갔다 오셨어요?"
"네."
"늦게 가시면 피곤할 일 많을 텐데..."
"뭐 감수해야죠."
"사실 근데 저도 25살에 갔다 왔어요. 피곤한 일이 많기는 하지만 은근히 나이 먹은 사람 대우해 주더라구요."
"아하 고맙습니다."

안동진 아나운서와 짧은 대화를 하며 녹화 들어가기 전에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토론회 사회자라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었지만 방송에 출연하는 출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예상밖 질문에 공부방을 과외로 잘못 얘기하다

 방송 녹화가 시작하기 전 긴장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나), 왼쪽(진보신당 하경옥 후보)
방송 녹화가 시작하기 전 긴장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나), 왼쪽(진보신당 하경옥 후보)배성민

녹화가 시작되자 준비한 말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선후배들과 편안하게 토론하는 것과 달리 카메라가 있으니 눈에 많이 거슬렸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할 때 그 사람의 눈을 보지 않고 카메라를 보고 얘기해야 하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방송 중에 시선 처리가 되지 않아 곤란한 적이 많았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해 놓고 카메라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발언을 마치고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 눈을 힐끔힐끔 거리기도 했다.

첫 방송의 실수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지역내에 교육·문화 시설을 많이 늘려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김 후보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회당에서도 지역 내 교육·문화 시설을 확충하는데 찬성합니다. 현재 많은 당원들이 지역 내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과외... 과외가 아니라 공부방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교육을 반대하는 진보정당 토론자 입에서 실수로 과외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방분권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하는데 스포츠뉴스에 어울릴 법한 단어도 사용했다.

"지방 정부에 권한이 너무 없습니다. 중앙과 의회에서 모든 권한을 쥐고 있습니다. 완전한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에서 집중 마크 하고 있는 경찰, 소방, 행정 등에 대한 권한을 지방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중앙에서 집중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 내가 평소에 농담 삼아 즐겨 쓰던 '집중 마크'라는 말로 나와버린 것이다.

실수에도 웃음과 칭찬으로 화답한 지인들

첫 방송 출연이라 예상치도 못했던 실수를 너무 남발했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 하고 싶은 얘기를 속 시원하게 하지 못하고, 작은 실수를 많이 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방송을 본 지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부모님) 우리 아들 정말 멋있네. 말도 논리적으로 너무 잘하더라. 우리 아들 짱이다!"
"(친구) 배성민 외모 포텐셜(potential -잠재력)이 터졌어."
"(후배1) 햄 말투가 평소와 너무 달라요. 긴장해서 그런 거예요? 진짜 웃기네요."
"(후배2) 완전 쩔어요. 완전 훈남임."
"(룸메이트) 방송에서 멍 때리면 어떻게 하노. 동아리 애들이랑 토론회 할 때랑 많이 다르제? 잘했다 형!"

아쉬움이 많은 토론회였는데 지인들이 재미있게 봐주고 다양한 반응을 보여줘 위로가 됐다. 첫 방송 출연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혹시나 또 한 번 TV 토론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며칠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카메라 시선 처리 연습을 한 뒤 나가고 싶다.  

그리고 부산광역의원 비례대표 기호 9번 사회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7993(0.58%)표를 얻었다. 20대 정치 초짜의 어색한 토론회를 보고도 사회당에 한 표를 준 부산광역시 유권자 모두에게 이 자리를 통해 감사를 표하고 싶다.

부산광역의원 비례대표 TV 토론 감상하기 클릭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 사회당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사회당 당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뷰, 사회당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사회당 당원입니다.
#지방선거 #TV토론 #부산광역의원비례대표 #사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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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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