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대로에 가득찬 응원단
최지용
"지금 내리는 비는 그리스가 흘리는 눈물이다." 12일 오후 2010 남아공월드컵 거리응원전이 펼쳐진 서울광장, 경기 시작 전 사전 행사 사회를 맡은 개그맨 김한석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경기 종료 휩슬이 울렸고, 대형스크린에는 '한국, 그리스 2대0 완파'라는 자막이 떴다. 폭죽이 터졌고,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서 있던 수만명의 붉은 악마들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비가 내렸지만, 승리의 열기와 감동은 식힐 수 없었다.
박지성 쐐기골에 벌떡 일어선 붉은 악마 "대~한민국" 공은 둥글다. 그래서 '1대0'으로 앞선 채 후반전이 시작됐지만 서울광장은 알 수 없는 초조함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국팀 선수들이 월등한 기량으로 그리스를 압도하며 경기를 장악했고, 그에 따라 붉은악마가 구호를 외치고 응원가를 부르며 응원을 주도했지만, 시민들은 단 한 순간도 대형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특히 후반 7분 '캡틴' 박지성이 골문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는 순간, 광장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결국 박지성의 발끝에서 쇄기골이 터지자, 시민들은 '승리'를 자신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며 발을 구르고,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고은아(30)씨는 "2002년, 2006년에 이어 세 번째 거리응원전에 나와봤다"며 "2006년 때는 기다리는 것도 길고 힘들었는데, 오늘은 2002년 때만큼 재미있었다. 정말 짱이다"고 환하게 웃었다.
초등학생 딸들을 데리고 나온 송승호(43)씨는 "비가 와서 거리응원은 안 나오려고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이런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뒤늦게 나왔다"며 "2대0으로 이길 것 같더니, 정말 이겨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응원전에 참석한 박아무개(31)씨도 "이제 곧 결혼을 하는데, 결혼하기 전에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왔다"며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김아무개(47)씨는 "다 같이 보는 재미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다"며 "적어도 8강까지 갈 것이다. 멕시코와 붙어서 설욕을 해줬으면 좋겠고, 오늘 모든 선수가 잘했지만 차두리가 참 잘 했다"고 말했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시민들... 승리 자축 강남 코엑스 앞 응원행사장. 경기 종료와 함께 폭죽이 터지고 '오 대한민국' 응원가가 울려퍼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시민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개그맨 변기수가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며 응원구호를 선창하자, 시민들도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응원행사 주최측에서는 '모든 응원이 종료되었다'며 시민들의 귀가를 촉구했지만 시민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경기 시작 전까지만 해도 왕복 8차선의 영동대로 절반에만 자리 잡고 있던 시민들은 왕복 8차선을 모두 점령하고도 모자라 주변 인도까지 가득 들어찼다.
길거리 응원에서 빠질 수 없는 기차놀이가 시작됐다. 서로의 어께에 손을 올리고 넓은 도로를 질주하는 기차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거리 곳곳에서 떼를지어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한국의 월드컵 원정경기 사상 첫 무실점 승리를 자축했다.
촛불집회에서 만났던 유모차부대도 등장했단. 두 살난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함께 거리로 나온 심성숙씨는 "비가와서 나갈까 망설이다가 나왔다"며 "우리가 승리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격려도 이어졌다. 논현동에서 온 김학중씨는 "경기 시작 전부터 우리 대표팀 선수들의 표정과 그리스 선수들의 표정이 달랐다"며 "경기 승리를 확신했지만 정말 열심히 뛰어 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응원했다.
인근 상점도 발 딛을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시민들은 시원한 맥주와 함께 이번 경기 내용을 곱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하지만 코엑스 앞에서 진행된 응원전은 안전상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비가 내리고 있어 곳곳이 미끄러운데다가 좁은 통행로 때문에 자주 혼잡을 빚었다.
[2신 : 12일 오후 7시 43분] 스마트폰 응원부대 등장... 붉은악마와 자리싸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