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 스님 "화계사 주지·승적 모두 내려놓겠다"

'다시 길을 떠나며' 글 남기고 잠적... 문수 스님 '소신공양'에 충격 받은 듯

등록 2010.06.14 11:01수정 2010.06.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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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문수 스님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소신공양해 숨진 가운데,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마련된 분향소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 스님이 눈물을 닦고 있다.

문수 스님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소신공양해 숨진 가운데,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마련된 분향소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 스님이 눈물을 닦고 있다. ⓒ 권우성


[기사 보강 : 14일 낮 12시]

"더 이상 저처럼 거리로 나서는 수행자들이 없게 해 달라.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는 당장 바랑 지고 산골로 들어가 촌로로 살겠다."

'문수 스님 소신공양 국민추모제'에서 조계종 종단을 향해 눈물로 호소하던 수경 스님(61·불교환경연대 대표)은 결국 그의 말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났다. 수경 스님은 지난 12일 오전 조계사 서울선원에서 진행된 기도를 끝으로 화계사 주지와 조계종 승적을 모두 내려놓겠다는 심경의 글을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앞서 지난 1일 문수 스님 '소신공양' 애도 기자회견장에서도 수경 스님은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다루라는 죽비소리를 전해줬다"며 "나도 이제 큰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남은 인생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

수경 스님은 지난 13일 측근에게 남긴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며 "화계사 주지 자리와 조계종의 승적을 내려 놓겠다"고 밝혔다.

이어 스님은 "환경운동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며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불교계의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을 이끌어온 수경 스님의 심적 부담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조계사 서울선원의 선원장인 지관 스님은 14일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스님이 떠나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불교환경연대를 책임져 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남기시고 지난 금요일 사직서를 제출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경 스님이 (소신공양과 같은) 다른 행동을 하시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며 "주위에서 너무 걱정하지 않게 해달라 당부하셨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수경 스님의 결정은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불교환경연대 한 활동가는 "(수경 스님께서) 몇 년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문수 스님 소신공양으로 인해 큰 결심을 하신 것 같다"며 "주위에서는 당혹스럽고 의아해 하는 반응"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수경 스님이 남긴 글의 전문이다.

다시 길을 떠나며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먼저 화계사 주지 자리부터 내려놓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4대강 사업 #4대강 사업 반대 #수경스님 #불교환경연대 #문수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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