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미사'에 참석한 신도들은 야외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미사를 진행했다.
최지용
"주교단이 (지난 3월 12일) 발표한 성명은 주교 한 명의 의견이 아니라 한국 주교단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모든 교인에게 드리는 주교들의 가르침이다. 천주교 신자라면 그것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숙명하고 지켜야 한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가 14일 전국 500여만 명의 천주교 교인들에게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주교단의 확고한 뜻을 거듭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오전 방송연설을 통해 밝힌 4대강 사업 강행 의지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강 주교는 이날 오후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성당에서 열린 '4대강 사업 저지 생명평화미사'에 참석해 "정부의 설명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4대강 사업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정부 입장을 '입력' 시키려는 식의 홍보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속에 뭐가 있는지 들어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교회의는 강우일 주교를 의장으로 정진석 추기경(서울교구장)을 비롯한 16개 교구의 교구장들로 구성된 천주교 내 최고기구다. 주교회의 이 같이 전례를 찾아 보기 힘든 강한 반발로 4대강 사업 반대 여론은 천주교 종단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계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교들까지 거리로 나서다 평일 오후, 조용했던 양수리에 4대강 사업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우일 주교, 최덕기 주교(전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를 비롯한 천주교 신부, 사제, 신자와 팔당 유기농단지 농민 등 1000여 명은 양수성당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섰다.
'생명평화기도순례'에 나선 대열은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강우일 주교와 최덕기 주교가 맨 앞에 섰다. 100여 m의 행렬이 푸른 들녘 위를 길게 늘어섰다. 참가자들이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이르자 양수리 주민들은 밖으로 나와 행진을 바라봤다.
대열이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신부님들 힘내세요"라고 외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을 지나는 주민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행진을 바라보며 관심을 보였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이아무게씨(23, 대학생)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신부님들의 뜻을 지지한다"라며 "양수리는 관광사업이 많아 4대강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지난 10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여주, 양평, 남양주 같은 팔당 주변 지역은 4대강 사업에 다 찬성한다"고 밝힌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주교들과 참가자들은 양수성당에서 유기농업단지가 있는 두물머리까지 약 2Km를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덥고 습한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렸지만 서로 격려하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천주교 주교들이 시국미사가 아닌 거리행진까지 참가한 것은 역사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맹주형 천주교연대 집행위원은 "과거 유신정권에 맞서 고 지학순 주교님이 교도소에서 풀려나면서 거리를 행진한 적이 있지만 환경문제와 관련해 주교님들이 거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4대강 사업에 대한 천주교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어 "한국 주교회의의 결정은 천주교의 모든 신부와 사제, 수녀, 신도들이 따르는 종단 차원의 결정이다"라며 "전 세계 10억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뜻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7월 5일 낙동강변에서 대규모 시국미사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