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도 아닌데 절에 웬 반달곰?

지리산 문수골 명물, 반달곰 사는 '문수사'와 아흔아홉 칸 집 '운조루'

등록 2010.06.18 15:28수정 2010.06.1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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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렇게 물든 밀밭. 구례 문수골 풍경이다. ⓒ 이돈삼

누렇게 물든 밀밭. 구례 문수골 풍경이다. ⓒ 이돈삼

거리의 메타세쿼이아가 싱그러움을 뽐낸다. 초록이 더 짙어간다. 지리산 문수골로 간다.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속하는 문수골에는 두 개의 명물이 있다. 하나는 반달곰이 사는 문수사라는 절이고, 또 하나는 아흔아홉 칸 한옥인 운조루다.

 

문수사로 먼저 간다. 문수사는 도로변에 '반달곰이 사는 절 문수사'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어 찾기도 쉽다. 이 간판을 따라 들어가니 들녘이 누런색과 초록색으로 나뉘어져 있다. 누런색은 수확기를 맞은 밀밭이다. 초록색은 모내기를 마친 논이다. 여기서 시작되는 길을 따라 산으로 7∼8㎞ 정도 들어가면 문수사에 이른다.

 

문수사로 가는 길은 산길이다. 평탄하던 길은 오미리를 지나 경사진 길과 만난다. 왼쪽은 산비탈이고 오른쪽은 낭떠러지다. 그 아래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지리산 왕시루봉에서 시작한 물이 문수사를 지나 내려오는 계곡이다. 물이 정말 맑고 깨끗하다. 그 계곡 너머로 보이는 산비탈의 계단식 논 풍경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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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는 아낙. 오미리에 사는 한 할머니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 이돈삼

빨래하는 아낙. 오미리에 사는 한 할머니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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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대웅전. 3층 목탑 형태의 건물이 여느 절 분위기와 다르다. ⓒ 이돈삼

문수사 대웅전. 3층 목탑 형태의 건물이 여느 절 분위기와 다르다. ⓒ 이돈삼

문수계곡은 옛날 지리산 빨치산들의 이동로였다. 이곳에 살고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은 그때의 기억을 아픔을 넘어 고통으로 간직하고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 건너 백운산이 여·순사건 때 빨치산과 토벌대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문수골은 토벌대와 빨치산 사이에서 낮과 밤으로 이념을 달리하며 살아야 했던 지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없이 고요한 산골마을이다.

 

문수사는 해발 1000여m에 위치에 있다. 높은 곳에 자리한 만큼 풍광도 좋다. 문수사 주차장에 서서 보니 왕시루봉의 자태가 늠름하다. 지리산자락의 아름다움도 그대로 펼쳐진다. 흘러내린 산자락은 멀리 섬진강에 가 닿는다. 높은 봉우리와 산자락, 계곡 그리고 그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섬진강이 만들어내는 풍경도 한 폭의 수채화다.

 

한때 해우소에서 똥돼지를 키워 화제가 됐던 문수사는 여러 고승이 수행한 문수도량이다. 백제 성왕 때 창건됐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의 난입으로 파괴됐다. 그러던 1980년대 중반 요사체와 함께 3층 목탑 형태의 대웅전을 세웠다.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과 비슷하다. 층층이 올라간 단청과 지붕이 일반적인 절에서는 보기 드문 색다른 풍경이다. 대웅전 옆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과 문수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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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반달곰. 아기 반달곰이 대웅전 앞에 놓인 꿀통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 이돈삼

문수사 반달곰. 아기 반달곰이 대웅전 앞에 놓인 꿀통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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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반달곰. 대웅전 앞에 놓인 꿀덩이를 먹기에 앞서 사방을 살피고 있다. ⓒ 이돈삼

문수사 반달곰. 대웅전 앞에 놓인 꿀덩이를 먹기에 앞서 사방을 살피고 있다. ⓒ 이돈삼

사실 문수사가 일반에 알려진 건 지리산 반달곰 덕분이다. 지금도 반달곰이 살고 있다. 대웅전 왼편에 반달곰 우리가 있다. 여기에 어미 반달곰과 아기 반달곰이 살고 있다. 어미 반달곰 5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지난해 아기 반달곰 3마리가 들어왔다. 가슴에 V자가 선명한 반달곰은 아무 데서나 보기 드문 곰이다.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고, 환경단체에서도 어느 정도 키워 야생으로 돌려보냈지만 적응하지 못했던 그 곰이다.

 

곰은 꿀과 사과를 좋아한다. 과자 커피 같은 달콤한 것도 좋아한다. 여기선 반달곰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대웅전 앞마당을 노니는 반달곰을 만날 수도 있다. 평소 반달곰이 밖으로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필요에 따라 고봉 주지스님이 밖으로 불러내 운동을 시킨다. 그때와 맞아떨어지면 주지스님이 돌보는 반달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밖으로 나온 반달곰은 스님을 따라 탑돌이를 하기도 한다. 스님이 주는 꿀이나 사과를 두발로 버티고 서서 받아먹기도 한다. 나무에 오르는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반기며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반달곰의 외출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곰은 먹이를 먹고 있을 땐 온순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배가 부르거나 먹이가 떨어졌을 땐 난폭해진단다. 곰이 먹이에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외출시간이 길지 않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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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뒤주. 마개에 새겨진 ‘타인능해(他人能解)’가 선명하다. ⓒ 이돈삼

운조루 뒤주. 마개에 새겨진 ‘타인능해(他人能解)’가 선명하다. ⓒ 이돈삼

운조루는 한마디로 아름다운 집이다. 건물의 건축학적 특징이나 한옥이 지니고 있는 멋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운조루를 더 빛나게 하는 것은 이 집을 지은 옛사람 류이주(1726∼1797년)와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자손들의 마음 씀씀이다.

 

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의 본보기이기도 한 이 마음 씀씀이는 서민을 위한 양반의 배려다. 옛날 쌀 뒤주는 집안 깊숙이 보이지 않는 곳에 놔두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운조루의 뒤주는 사랑채 옆 부엌에 놔뒀다. 뿐만 아니라 뒤주의 마개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씌어 있다. 다른 사람도 열 수 있다는 뜻으로, 누구든지 쌀이 필요하면 마음대로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주인이 직접 쌀을 퍼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가져가는 사람의 자존심까지도 생각한 것이다. 운조루 대문에 문턱도 없다. 이 또한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 집주인의 배려다.

 

집에 굴뚝도 없다. 집을 지을 때 굴뚝을 설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건물 아래에 구멍을 내고 거기서 연기가 나오도록 했다. 연기가 굴뚝으로 빠지지 않음으로써 집안사람들이 고생을 하겠지만 거기에도 이유가 있었다. 양반집에서 밥을 해먹는다고 연기를 피우면 가난한 이웃들이 더 힘들어 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 마음 씀씀이가 정말 예쁘다. 우리나라 지도층이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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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민물고기생태관. 섬진강에 사는 민물고기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이돈삼

섬진강민물고기생태관. 섬진강에 사는 민물고기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이돈삼

운조루 건너편에 섬진강어류생태관도 가볼 만하다. 버들치, 누치, 꺽지, 동사리, 쏘가리 등 섬진강에서 사는 민물고기를 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는 저마다 이름과 생태적 특성을 알 수 있도록 설명서를 따로따로 다 붙여 놓았다. 섬진강에 사는 어류의 생태 표본도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수달도 직접 볼 수 있다. 철갑상어와 비단잉어 노니는 대형 원통수족관도 볼거리다.

 

섬진강변 드라이브도 환상적이다. 차를 타고 돌아도 좋지만, 잠시 차를 세워두고 일정구간 거닐면 더 좋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운치 있는 강변이다.

 

지리산 문수사와 운조루는 구례읍에서 그리 멀지 않다. 구례읍에서 하동 방면으로 19번 국도 타고 가다보면 화엄사 입구 삼거리 지나 왼편에 운조루가 보인다. 구례읍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다. 문수사 입간판도 그 옆에 세워져 있다. 문수사는 이 국도에서 산길로 20여분 차를 더 운전하면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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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조선시대 대표적인 양반가옥으로 아흔아홉 칸 집이었다. ⓒ 이돈삼

운조루. 조선시대 대표적인 양반가옥으로 아흔아홉 칸 집이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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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문수골. 문수저수지 앞으로 오미리 일대가 펼쳐진다. ⓒ 이돈삼

지리산 문수골. 문수저수지 앞으로 오미리 일대가 펼쳐진다. ⓒ 이돈삼
#문수골 #반달곰 #문수사 #운조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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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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