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큐리와 채플린이 스위스 품에 안긴 까닭은

[스위스 올레 여행기 ①] 레만 호수의 명소, 브베와 몽트뢰

등록 2010.06.23 16:26수정 2010.07.10 10:50
0
원고료로 응원
스위스정부관광청은 올해와 내년을 '스위스 걷기여행의 해(The Year of Walking)'로 정했다. 그림같은 풍경의 알프스만 감상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자연과 호흡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여행을 적극 알리겠다는 취지다. 지난 4월 6일에는 (사)제주올레와 공동 발전을 위한 업무 제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걷기여행의 노하우를 배우고, 네트워킹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빠르면 올 하반기에는 스위스 하이킹 코스에 제주올레 홍보 표지판이 설치된다. 스위스를 방문하는 한국 여행자들을 위한 '스위스 올레' 같은 하이킹 코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오마이뉴스>는 스위스 정부 관광청의 지원을 받아 지난 6월 6일부터 12일까지 '7일5박' 일정으로 스위스의 라보지구, 체르마트, 알레치 빙하, 루체른 호수 일대의 하이킹 코스를 걸었다. 몇 차례에 걸쳐 '스위스 올레 여행기'를 연재한다. [편집자말]

카펠교(Kapellbrucke) 스위스 루체른 로이스강에 있는 다리. 1333년 로이스강에 놓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나무 다리로 길이가 200m에 이른다. 루체른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다. ⓒ 유성호


스위스 걷기여행? 아직까지는 생소하다. 스위스가 유럽여행의 필수 코스이긴 하지만, 걷기여행을 할 만큼 여행 경비나 체류 일정이 넉넉한 여행자는 많지 않다. 10년 전쯤 유럽여행을 하면서 스위스에 이틀 정도 머물렀다. 기억나는 건 루체른의 카펠교와 등산철도를 타고 오른 리기산, 그리고 얄미울 정도로 깔끔한 도심과 도시 깍쟁이처럼 생긴 사람들이다.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었으니 피상적인 이미지만 남아있다. 두 번째 방문이라고 생각하니, 새로운 그 무엇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스위스의 이미지는 뚜렷하다. 동심의 판타지를 불러일으켰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 스위스 작가 요하나 슈피리(Johanna Spyri)의 아동문학 작품 <하이디>(Heidi)를 원작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등 일본 만화 영화계의 거물들이 만든 명작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 하이디를 절친처럼 여겼다. '맥가이버 칼'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빅토리녹스, 스와치부터 롤렉스까지 손꼽히는 정밀기계, 초콜릿과 치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위스 퀄리티'를 자랑한다. 이보다 더한 명작은 빼어난 자연환경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근심 지수가 높다고?

두 번째 방문이긴 한데, 정작 상대에 대해 아는 지식이 빈약했다. 조금이라도 알고 가자는 마음에 두 권의 책을 샀다. <Just go 스위스>(시공사)와 <제노포브스 가이드-스위스 문화 이야기>(푸른나무). 하나는 여행정보를 담은 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위스와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사고방식 등을 다룬 책이다. '외국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인 제노포브스 가이드(Xenophobe's Guide)는 냉소적인 시각과 사실 관계만 잘 분리해서 본다면 꽤나 흥미로운 책이다.

스위스 루체른의 카펠교 인근에는 산책나온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유성호


<제노포브스 가이드>에서 가장 흥미롭게 봤던 대목은 "재산으로는 텍사스 사람, 효율성으로는 독일인, 외교적으로는 프랑스인을 능가하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스위스 사람들의 근심지수였다.

"스위스 사람들이 지닌 '근심지수'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제각각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독일계 스위스인은 매사에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면서 근심 걱정을 하느라 언제나 최고의 근심지수를 기록한다. 프랑스어를 하는 라틴계 스위스인들은 고매한 상념과 원대한 꿈과 '글로벌 비전'을 가진 대사상가들이라서 근심지수 역시 그에 걸맞은 수준을 유지한다. 반면에 이탈리아계 스위스인들은 무슨 일에서든 너무 겁이 없는 경향이 농후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스위스인들의 근심지수는 '완벽한 대안'을 좇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납세자들이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한 세금 인상안에 그토록 적극적인 지지표를 던지는 나라는 스위스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게 그런 사례다. 수백년 동안 큰 전쟁을 치르지 않았는데도 모든 남성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게 하는 징병제를 고집하는 것도 '유리잔과 같은 평화'에 대한 근심지수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스위스 국토는 남한 면적의 절반이고, 인구는 758만명(2008년)으로 이미 1000만명을 넘어선 서울시보다 적다. 전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로 돼 있는 건 한국과 비슷하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내륙 국가다. 한국을 유럽이라고 가정한다면 경기·강원·경상·전라도와 맞닿아 있는 충청북도에 해당한다.

여러 나라와 맞닿아 있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문화나 언어권도 독일·프랑스·이탈리아·로망슈 등으로 나뉘어 있다. 대다수의 스위스 사람들이 2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조로 불리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스위스 사람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이상할 뻔했다. 지방자치와 직접 민주주의의 발달은 국가 개념에 앞서 칸톤(Canton, 자치주) 등 지역의 자기 정체성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어울린다.

레만(Leman)호수 스위스 남서부에 있는 호수로 중앙 유럽에서 벌러톤호에 이어 두 번째로 넓다. 레만 호수에 증기선이 지나가고 있다. 배 선수와 선미에 프랑스, 스위스 국기를 걸어놓아 두 나라를 왕래하는 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유성호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드디어 스위스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지난 6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카타르 도하를 거쳐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했다. 비행 시간만 15시간, 스위스 서머타임을 감안하면 한국과 시차는 7시간. 피곤할만도 한데 견딜 만하다. 피곤과 함께 도착하는 여행의 끝과는 달리 설렘과 함께 출발하는 여행의 시작이 주는 힘이다. 제네바 공항에서 1시간여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브베(Vevey). 스위스에서 첫날을 보낼 도시다.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에 빠졌던 몽트뢰(Montreux)

스위스 남서부에 위치한 브베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레만(Leman) 호수를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마주 보고 있다. 인구 2만명도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인근에 있는 로잔·몽트뢰와 함께 국제적인 휴양지로 이름나 있다. 로잔(Lausanne)은 국제올림픽위원회인 IOC 본부가 있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올림픽 마크 로고와 깃발을 항상 사용할 수 있는 '올림픽 도시'로 유명하다. 로잔과 마주 보고 있는 프랑스 도시는 생수로 유명한 에비앙(Evian)이다. 로잔과 에비앙 사이가 레만호에서 가장 수심이 깊다. 300m가 넘는다고 하니 파리 에펠탑을 넣으면 물에 잠긴다.

또한 브베는 로잔·몽트뢰와 함께 스위스 와인의 대표적인 생산지인 라보(Lavaux) 지구 포도밭의 중심축을 이루는 곳이다. 2007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라보 지구 포도밭은 스위스 올레 취재팀이 이튿날 본격적인 하이킹을 하게 될 지역이다.

a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스위스 몽트뢰 호반 산책로에 있는 그룹 '퀸(Queen)'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 몽트뢰는 머큐리가 제2의 고향으로 삼았던 곳이다. 1978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머큐리는 몽트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음반 작업을 했다. ⓒ 이한기


브베 역에 도착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몽트뢰(Montreux)로 향했다. 기차를 타니 10분 거리였다. 인구 2만명의 작은 휴양 도시 몽트뢰는 해마다 7월이 되면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유럽의 대표적인 음악 축제인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다. 몽트뢰 역에서 내려 레만 호수의 호반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많은 관광객들이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는 동상이 나타났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퀸(Queen)'의 리드 싱어였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그 동상의 주인공이다. 그는 지금이라도 당장 동상을 깨고 나와 노래를 부를 듯한 역동적인 자세로 마이크를 잡고 있다. 1991년 40대 중반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머큐리의 동상을 보고 있자니, 그가 열창했던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위 아 더 챔피언스> 등이 떠올랐다.

몽트뢰는 머큐리가 제2의 고향으로 삼았던 곳이다. 그는 지인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몽트뢰로 가라"고 말할 정도로 이곳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1978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머큐리는 몽트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음반 작업을 했다. 머큐리가 죽고 난 뒤 만들어진 퀸의 마지막 앨범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의 재킷 사진도 몽트뢰에 세워진 머큐리의 동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동상 주변에는 늘 팬들이 놓고 간 꽃과 편지가 끊이지 않는다.

상처받은 찰리 채플린을 24년 동안 품어준 브베(Vevey)

프레디 머큐리 이전부터 몽트뢰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장 자크 루소의 편지글 형식의 연애소설 <신 엘로이즈>(La Nouvelle Héloīse)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배경이 된 도시도 몽트뢰다. 러시아 출신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 <페트로슈카>를 작곡한 곳도 이 작은 도시에서다. 그들은 이곳에 머물며 예술적 영감을 얻고, 그 에너지로 후세에 빛나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스위스 몽트뢰(Montreux) 호수 산책로에서 한 어린이가 망원경을 통해 건너편 프랑스 땅을 보고 있다. ⓒ 유성호


레만 호숫가에서 관광객들이 꼬마 열차를 타고 시내 경치를 둘러보고 있다. 뒤에 보이는 큰 건물에서는 일주일에 한 차례 야채와 꽃 등을 파는 시장이 열린다. ⓒ 유성호


시옹성(Chateau de Chillon)은 레만 호숫가 우뚝 솟은 암반 위에 세워져 호수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유성호

6월의 스위스는 오전 5시가 되면 날이 밝고, 오후 9시가 넘어야 어두워진다. 오후 4~5시면 벌써 해가 지는 겨울철과는 달리 하루 해가 무척 길게 느껴진다. 몽트뢰의 호반 산책로에는 데이트를 즐기러 나온 연인들, 망원경으로 레만 호수 건너편 프랑스를 바라보는 아이들, 꼬마 열차를 타고 호숫가 경치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몽트뢰의 호반 산책로를 따라 동쪽으로 40분 정도 걸어가면 시옹성(Château de Chillon)이 나온다. 오후 5시 40분, 저녁식사를 하러 가기 전에 시옹성을 다녀오기로 했다.

몽트뢰에서 버스로 10분쯤 가니 시옹성이 나타났다. 호숫가 바위섬 위에 지어진 탓에 시옹성은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탈리아쪽에서 알프스로 넘어오는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받기 위해 세워진 중세시대 성이다. 성의 기원은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지금의 모습은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16세기 제네바의 종교 지도자 보니바르가 이곳 지하 감옥 기둥에 쇠사슬로 묶인 채 4년 동안 갇혀 있었던 사건을 주제로 만든 서사시가 영국 시인 바이런의 <시옹의 죄수>다. 바이런의 서사시가 발표된 이후 시옹성은 더욱 유명해졌다.

갑작스럽게 내린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관람 시간이 지나 시옹성 안에 들어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숙소인 브베로 발길을 옮겼다. 다음날 아침 라보 지구 포도밭 하이킹에 나서기 전 레만 호숫가를 찾았다. 브베를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찾아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이름 앞에 별도의 수식이 필요없는 전설적인 영화인 찰리 채플린(Charles Spencer Chaplin)의 동상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독재자>, <황금광 시대>, <모던 타임스>에서 채플린은 독재자 히틀러로,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부속품 같은 노동자로 등장해 그 시대의 자화상을 필름에 담았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했던 그는 인생의 후반기를 스위스에서 마감했다. 매카시 선풍이 할리우드까지 집어삼킬 때 그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강제 추방돼 1953년 가족들과 함께 스위스로 왔다. 그리고 1977년 12월 25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24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 바로 이곳 브베였다. 채플린과 그의 아내 우나 오닐(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은 브베 서쪽 외곽의 코르시 묘지에 잠들었다.

"세상은 내게 최상의 것과 최악의 것을 동시에 선사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지 않은 일을 많이 겪었지만 나는 행운과 불운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런 믿음 때문에 나는 아무리 나쁜 일이 일어나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일이 일어나면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기뻐했다."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중에서)

채플린의 동상은 작고 소박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콧수염과 중절모에 연미복 차림이다. 그런데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였던 지팡이는 웬일인지 잘려나가 손잡이만 남았다. 그의 동상 주변에는 5월을 말해주듯 장미꽃이 만개했다. 공산주의자로 몰려 강제 추방되는 최악의 상황 때문에 '중립지대'인 스위스로 올 수밖에 없었던 채플린에게 브베는 어떤 도시였을까. 분명한 것은 브베가 상처받은 채플린을 오랫동안 품에 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찰리 채플린(Charles Spencer Chaplin) 스위스 브베(Vevey) 호숫가 산책로에 있는 찰리 채플린의 동상. 채플린은 1953년 브베에 와서 1977년 12월 25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24년 동안 살았다. 채플린은 아내 우나 오닐(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과 함께 브베 서쪽 외곽의 코르시 묘지에 잠들었다. ⓒ 유성호



브베(Vevey) 레만 호수 북동쪽에 위치한 인구 2만명도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인근에 있는 로잔·몽트뢰와 함께 국제적인 휴양지로 이름나 있다. ⓒ 유성호


a

스위스 남서부에 위치한 레만(Leman) 호수 지역에는 브베와 몽트뢰 등 세계적인 휴양지가 위치해 있다. 브베와 몽트뢰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사람을 받았던 곳이며, 로잔과 함께 와인 생산지 라보지구 포도밭의 중심 축을 이루는 도시이기도 하다. ⓒ 스위스정부관광청


#스위스 #프레디머큐리 #찰리채플린 #몽트뢰 #브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2. 2 한국에서 한 것처럼 했는데... 독일 초등교사가 보내온 편지
  3. 3 임성근 거짓말 드러나나, 사고 당일 녹음파일 나왔다
  4. 4 저출산, 지역소멸이 저희들 잘못은 아니잖아요
  5. 5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요양원 나온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한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