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 수난시대', 얼마나 살아남을까

불법찬조금·입학비리...'외고효과 무용론''5년 재지정' 스스로 초래

등록 2010.06.24 10:24수정 2010.06.24 10:24
0
원고료로 응원
외국어고의 수난시대다. 작년 한나라당 내에서도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외고 폐지론이 제기되어 진땀을 뺀 후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올해 들어서 연일 터져 나오는 외고 관련 악재에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3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펴낸 <한국교육>(4월호)에 "외고의 수능성적이 높은 것은 '학교 효과가 아니라 선발 효과'"라는 보고서가 발표된 데 이어, 22일에는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외고도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받고, 입학전형에서 필기 시험을 금지한다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의결함으로써 외고는 다시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런데, 이런 외국어고 수난시대는 외고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최고 학교가 최대 망신 : 대원외고] 수십억 불법 찬조금 모금, 형사 고발

a  서울 광진구 중곡4동에 위치한 대원외고

서울 광진구 중곡4동에 위치한 대원외고 ⓒ 권우성


지난 3월 한 학부모의 제보로 시작된 서울교육청 특별감사에서 대원외고가 2007년부터 3년 동안 불법 찬조금 21억여원을 조성하여 스승의 날 선물과 교사 회식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일로 이사장 해임 및 교장 이하 교사들 징계처분이 통보됐다.

이에 따라 지난 9일 대원학원은 이사장 사임, 교장·교감·행정실장 정직, 교사 35명 감봉 및 견책 처분했다고 서울교육청에 통보했다. 애초 1천만원 이상 수수한, 주도적 책임자 8명이 중징계 대상이었지만 3명은 정직을, 나머지 5명은 담임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감봉으로 감경됐다. 300만원 이상 수수 교사들은 견책을 받고, 300만원 이하 교사들은 아예 징계를 받지 않았다.

대원외고는 제식구 감싸기, 서울교육청은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게 되었다.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은 4월 초 대원외고 이사장과 교장을 배임 횡령 등으로, 이성희 서울교육감 권한대행을 직무유기로 고발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수사 결과가 대원외고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 전국 최고라고 자부하던 대원외고가 전국 최고 수준의 공개적 망신을 당하면서, 1984년 개교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대를 이어 사학비리 : 서울외고] 3부자 이사장과 교장이 입학 비리에 횡령

서울외고에 대한 검찰(서울북부지검 형사6부, 부장 김회종) 수사 결과, 아들인 이사장은 학교돈 17억을 빼돌리고, 어머니인 교장은 7명의 학생들을 부정입학 시켜주는 대가로 5500만원 챙겨서 빚을 갚거나 생활비로 사용하였다가 발각되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 학교의 설립자이자 전 이사장인 아버지(현 교장의 남편)도 4년 전 교비를 무려 26억이나 횡령했다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쫓겨났는데, 대신 아내와 아들이 이사장과 학교장이 되어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찰은 "전 이사장인 아버지가 2003년과 2004년 외고 전입생 학부모 20명으로부터 부정입학 대가로 1억6900만 원을 받은 사실도 밝혀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하지 못 했다, 이들이 1978년부터 학교에서 횡령한 학원 재산이 10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혀 횡령이나 입학비리 등이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이사장과 교장을 하면서 족벌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거의 외부 감시를 받지 않아 이 같은 구조적인 비리가 계속될 수 있었다.

과연 이것이 서울외고만의 문제일까? 현재 교육계에서는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대원외고와 문제가 된 서울외고 외에도 또 다른 외고에 대해서도 검찰이 내사를 벌이고 있고 조만간에 외고 관련 비리가 또 터질 것이라는 전언이다. 서울외고와 대원외고의 비리 문제는 사립학교의 폐쇄성과 외고의 특권이 결합되어 빚은 교육계, 특히 사립학교의 또 다른 참사이다.

엎친 데 덮친 KEDI 보고서 '외고, 학교 효과 거의 없다'

이러한 때 지난 13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펴낸 한국교육(4월호)에 외국어고와 수능 성적 관련 재미있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여기에 실린 민병철 연구원과 박소영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의 공동논문 '외국어고 학교효과 분석'에 따르면, 외고 학생의 우수한 수능 점수는 학교 효과가 아니라 선발 효과와 배경 효과 영향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외국어고 학생들의 수능 성적이 높은 것은 학교가 훌륭하여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원래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며, 일반고 학생들보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기 때문으로, "외고에 가면 일반고 학생보다 쉽게 명문대에 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외국어고가 설립취지에 맞지 않는다, 또는 사교육비를 부추긴다 등의 각종 비판에도 "외고 가면 공부 잘 하잖아"라는 이유로 이 모든 것을 반박해왔는데 알고 보니 외고 다녀서 공부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 놓아서 그런 것이라는 점이 정부연구소의 연구 자료로 증명된 것이다. 안 그래도 잔뜩 주눅 들어있는 외고로서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무늬만 외고 : 외고 졸업생 25%만 어문계 진학

설립 취지에 의하면 외국어고는 초중등교육법에 의해 어학 분야 영재 양성을 위한 특수목적고이다. 그런데 이런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도 외고 졸업생 4명 중에 3명이 비어문계로 진학하고 정작 설립 목적에 맞게 어문계열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1명밖에 되지 않는다.

2009년 11월 진보신당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9년 4년제 대학 어문계열 입학정원이 2만6천 명으로 외고 졸업생 8100여 명의 3배가 넘는데도 이중 2천여명만이 외고 출신이라는 것이다. 외고 졸업 후 미진학자도 17.1%나 되는데 이 들 중 상당수가 일류대 진학을 위한 재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서울 소재 6개 외고의 서울대와 연·고대 진학률은 51.8%인데, 어문계 진학률은 25.6%였다. 최근 5년간 사법고시 합격생, 검판사 임용자 수는 압도적으로 전국 1위인 대원외고는 어문계 진학률이 15.6%인데, 이는 경기의 성남외고 14.2%, 안양외고 14.4%와 더불어 전국 최하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니 외국어고가 어학분야 영재 양성을 위한 특수목적고가 아니라 명문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명문고라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서 결코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무늬만 외고"였다. 이런 외고에 대해서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은 교육당국의 직무유기라는 비판 역시 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증산외고의 일반고 전환 선언... 외고 위기는 자업자득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충북의 증산외고가 일반계 전환을 선언했다. 일반계 학교가 외고로 전환하는 경우는 많이 있었지만 외고가 일반계 학교로 전환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증산고는 이전부터 10%대의 낮은 어문계열 진학률로 외고의 설립목적에 부합하느냐를 두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 결국 2011학년도부터 전격적으로 일반계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외고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각종 악재에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6명이나 당선이 되었다. 특히 대표적인 외고들이 밀집된 서울과 경기도에서 모두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어 외고 관계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주름살이 늘어가는 상황이다. 물론 이들 진보 교육감들이 당장 외고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외고가 그 설립 목적에 어긋나 사교육을 부추기고 입시명문고로 운영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손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에 중앙 정부까지 나서서 '특목고 지정·운영위원회'를 시도별로 설치하여 5년마다 외고 등 특목고의 재지정 여부를 평가한다고 하니 외고로서는 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외고의 위기라고까지 비유되는 현재의 연이은 '외고의 수난시대'는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대원외고나 서울외고의 사학비리도 폐쇄적인 사학의 특권적 운영으로 스스로 비난을 초래한 경우이고, 25%밖에 안 되는 어문계열 진학률, 그리고 KEDI의 '외고 학교효과 없다'는 연구 논문 역시 외고가 설립 목적에 맞도록 운영하지 않고, 자기 혁신을 게을리한 때문이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고 자격도 없다. 외고가 이 수난시대를 스스로 초래했듯 해결책도 자신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애초 외국어고가 왜 생겨났는지 그리고 외국어고가 우리 공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 것이다. 스스로 못 찾으면 외부로부터의 더 큰 메스가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고는 스스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외국어고 #대원외고 #외고폐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