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상은씨의 무대.
오행운 트위터
"우리는 뉴스채널 YTN의 기자들이다. 아니, 우리는 YTN의 기자들이었다. 2008년 10월 6일, 우리의 시계는 그때 멈췄다. 2008년 7월, 대선당시 특정후보 캠프에서 언론특보를 지냈던 이가 사장으로 왔다. 싸웠다. 버텼다. 방송을 지키고자 싸우고 또 버텼다. 6명의 기자가 해직됐다. 절대 무릎을 꺾지 않겠다고 우리는 남은 동료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레이션 노종면 YTN 해직기자'라는 자막이 뜨는 순간 놀라움과 처연함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그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담담히 YTN을 둘러싼 그간의 상황을 담담히 읽어 내려갈 때, 잊었던 막막함이 밀려왔습니다.
해직기자들이 YTN에 앞에 서 있던 화면은 또 어떤가요. "2010년 6월 우리는 지금도 거리에 서 있다"는 나직하면서도 굳건한 울림과 기자들의 모습이 겹쳐지며 울컥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후엔 더더욱 놀랐습니다. 다음 내레이터로 용산 참사 유가족 정영신씨가 나섰기 때문이었죠. "나는 그때 용산 망루에 올랐다, 시부모님, 남편과 함께였다, 실종됐던 시아버님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내 남편 이충연은 열흘 뒤 구속됐다." 조금씩 잊혀져 가는, 그러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용산 참사를 기어이 떠올리게 만드는 그 뚝심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이어 나온 어둠 속에서 몸무게가 40kg이나 빠졌다는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내뱉은 "내게 세상은 다시 감옥이었다"는 나직한 음성은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한 절망 그 자체와 맞닿아 있었고요. 촛불소녀 한채민씨의 청아한 목소리는 반가웠습니다. "제가 그때 본 것은 아마도 희망이란 것이 맞겠죠?"라는 물음에 반갑게 화답하고도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2010년 6월, 저는 지금 여기 혼자 있어요. 광장에서 만났던 언니, 오빠들, 아줌마, 아저씨들 어떻게 지내세요? 당신 안의 촛불은 지금… 안녕하신가요?"라고 묻는 한채민 양의 물음에 결국 참았던 눈물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들었던 그 촛불은, 우리 안의 촛불은 지금 꺼져있을 까요, 아니면 생생히 타오르고 있는 걸까요. 저 또한 스스로에게 묻게 되더군요. 그런데 그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저 혼자만은 아니더군요. 실시간으로 방송을 같이 시청하던 많은 트위터 친구들이 자신의 눈물을 고백하고 있었거든요.
연이어 바비 킴이 부른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이란 가사의 <소나무>를 들으면서, 저는 그 오프닝만으로도 <PD수첩> 20주년 방송은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어요.
YTN 기자 해직과 관련한 언론 장악, 용산 참사라는 참혹한 사건과 공권력, '미네르바' 박대성씨와 관련된 '고소' 정부, 무엇보다 '촛불' 이후 닫혀버린 우리의 광장, 그리고 우리 안의 촛불. MB 정부 이후의 암울했던 현안들을 당사자들의 입으로 다시금 조명하고 '망각'에 대해 일침을 가해 준 것 만으로 감사할 따름이었으니까요.
전원책 변호사, 왜 나오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