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대행? 수석 합격자 입학 막는 꼴...
희망파는 '장사꾼'되어 진보모델 만들겠다"

[인물연구 인터뷰] 강원도지사 당선자 이광재-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대담

등록 2010.06.24 10:33수정 2010.06.2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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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 ⓒ 남소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였던 지난 5월 23일.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는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오미자차였다. 생전에 노 전 대통령이 선거에 나설 때마다 목에 좋다며 손수 챙겼던 바로 그 오미자차였다.

권 이사장은 그 후로도 서너 번 더 직접 다린 오미자차를 이 당선자에게 보내 멀리서나마 선거 운동을 도왔다. 정치인 이광재가 아닌 노 전 대통령의 곁을 항상 지켰던 인간 이광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이 당선자는 이 오미자차를 마시며 강원도 곳곳을 누볐다. 기사 딸린 승용차 대신 택시를 타고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때로는 마을회관이나 찜질방에서 유권자들과 함께 잠을 청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치인은 희망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생각하는 이 당선자는 그렇게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자신의 봇짐 안에 들어있는 강원도의 '희망'을 세일즈했다. 이점이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강원도에서 민주당 후보로서는 유례없는 54.4%라는 득표율로 당선된 비결 아닌 비결이었다.

22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이광재 당선자를 만났다.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아 정상적인 도지사직 수행 여부가 불투명해졌지만 그는 오히려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 당선자는 "강원도를 아시아의 스위스로 만들겠다"며 "일자리와 복지, 교육,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강원도에서 진보의 모델을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는 재판에 대해서는 "박연차 전 회장이 돈을 식당 옷장안에 놓고 나갔다고 하는데 옷장이 유죄인 모양"이라며 결백을 호소했다.


참여정부 시절 '우(右) 광재'로 불렸던 이 당선자는 친구이자 동지이기도 한 '좌(左) 희정' 안희정 충남도지사 당선자의 선거 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박수를 치며 자기 일처럼 좋아하기도 했다. 

이날 대담은 의암호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춘천MBC 2층의 카페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인물연구 인터뷰>의 전문으로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오연호 대표의 질문이고 그 아래는 이광재 당선자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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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 인터뷰 1부 ⓒ 박정호


"이명박 정부의 강원도 소외에 회초리 들었다"

- <오마이뉴스>와 인터뷰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먼저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54.4%의 득표율을 기록했더군요. 한나라당 지지율이 60%가 넘는 강원도에서 민주당 후보로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득표를 할 수 있었는지 비결이 궁금합니다.
"영호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최대 표차였지요. 민주당 후보 이광재보다는 도민들께서 여야를 떠나 이광재를 한번 강원도 대표인물로 키워보자, 그래서 소외된 강원도를 한번 키워보자는 열망이 컸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실제 선거 운동 기간 중 도민들에게 '강원도 물감자' 소리 듣지 않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강원도 물감자'라는 말은 농담 삼아서 하는 이야기인데요. 그만큼 지역의 소외 의식이 컸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추진되던 많은 사업들이 취소되고 인사에서도 강원도 출신들이 밀려난 게 사실입니다. 지난 정부 때 추진 됐던 국회 고성연수원 건설은 물건너 갔고, 원주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대구에 뺏겼습니다. 원주-강릉간 복선전철은 백지화 되려다 지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겨우 회복이 됐지요. 또 지난 정부에서는 고영구 국정원장, 권오규 부총리 등 강원 출신 장차관들이 많았는데 이 정부 들어서는 한명도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중심의 지방 소외 정책에 도민들의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죠. 그래서 도민들 사이에서 '이번 선거에서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던 것 같습니다."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가 22일 강원도 춘천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가 22일 강원도 춘천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넘게 뒤졌지요. 서울에서 강원도 선거를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과연 뒤집을 수 있을까 비관적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역전승을 거두면서 이광재의 저력을 봤다는 평가도 나오고 어떻게 선거 운동을 했길래 뒤집었을까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선거 운동 했습니까.
"제가 그동안 2002년 대선, 그전에는 조순 전 서울시장 선거,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 2번 등 선거에서는 진 적이 없습니다. 각 선거에서 기획 분야 일을 해서 뭔가 비결이 있을 거라고 하는데 사실 별 게 없습니다. 그래도 꼽아보자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상대 후보를 비난하지 않는다, 포지티브 전략이 시간은 걸리지만 결국에는 이기는 길이죠. 두 번째는 경청하는 겁니다.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게 가장 큰 선거 전략이었습니다. 승용차 대신 택시 타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마을회관이나 찜질방에서 자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주민 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으면서 정책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런게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습니다."

- 천안함 침몰 사고의 여파가 강원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여론조사 흐름으로 보면 한참 따라붙다가 천안함 사고로 상승세가 꺾인 건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강원도 지역에 접경지역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원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TV토론 시청률이 15%까지 올라갔고 제 마지막 TV 연설 시청률은 21%를 기록했죠. 그 정도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투표일을 앞둔 마지막 주말 뒤집을 수 있다는 감이 왔습니다."

- 당선이 확정되고 나서 봉하마을에 갔었죠?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그날 새벽에 바로 갔었죠. 많이 울었습니다. 권양숙 여사님도 많이 우시고. 마을 한바퀴를 돌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겪은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바람이 생기더군요. 또 제가 묘역조성위원장이었잖아요. 시민들이 기부한 박석에 있는 글들을 읽어보면서 노 대통령을 사랑했던 분들이 바라는 좀 더 아름다운 대한민국, 평화롭게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 무엇일지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내려와 고향을 지키는 운동을 하고자했던 것처럼 저도 제 고향 강원도를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 권양숙 이사장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그냥 많이 우셨습니다. 사실 제가 강원도에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셨대요. 그런데 가장 빨리 당선이 결정되는 것을 보면서 많이 기뻤다고. 선거 운동 기간 중에 권 여사께서 다섯 번이나 오미자차를 직접 다려서 보내주셨어요. 목이 쉬니까 마시면서 하라고. 오미자차는 노 전 대통령이 선거에 나섰을 때 항상 다려드렸던 건데 저에게도 똑같이 해주신 셈입니다."

"권한대행 세우라고? 법률적 미비 보완에 중앙-지방 지혜 모아야"

- 그렇게 해서 당선이 돼서 인수위원장도 정하고 강원도 내 시장·군수들과 워크숍도 하고 취임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행정안전부는 이 당선자가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다고 해서 부단체장의 권한대행체제로 가야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당선자는 직무를 계속 해 나가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는데요.
"어쨌든 중앙정부도 선출된 것이고 지방정부도 선출된 것입니다. 헌법적 가치로 보면 가장 최근의 국민의 선택이 존중돼야 한다는 법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중앙정부도 제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권한 대행 문제에 대해서는 법률적 미비점도 있고 위헌 요소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시험을 못 보게 한 것이 아니라 시험은 보게 해놓고 수석으로 합격해 입학을 하니까 학교는 오지 마라 이런 식인데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국회에서 보완을 해줘야 하는데 당파 갈등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상 초유의 일이라 혼란이 있는데 중앙과 지방이 함께 지혜를 모아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행정안전부 유권해석이 이 당선자 망신주기 아닌가 이렇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가 확인을 해봤는데, 행정안전부는 일체 지침을 내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일부 실무자가 과도한 의욕을 부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신중하지 못한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도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서로 절제된 행동을 해야 합니다. 법률 해석의 차이에 대해서 잘 협의해 나가겠습니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 후보 도시로 확정되면 1년 동안 (유치) 결전을 벌여야하는데 함께 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 남소연

- 지금 논란이 이 당선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 흔히 말하는 '박연차 게이트'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연관이 있는데 이 수사가 시작된 배경은 뭐라고 보고 있습니까.  
"정권이 바뀌고 시작된 수사인데요. 박연차 전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시발점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92년 대선 때 고 정주영 회장이 출마해서 떨어진 후 현대그룹에 대해서 이 정도의 세무조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광실업 같은 작은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치고는 대단히 예외적이었습니다. 저와 강금원 창신섬유회장(노 전 대통령 후원자) 등을 겨냥했던 수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죠."

- 고등법원에서는 박연차 전 회장에 대한 증인 신문이 불필요하다면서 이 당선자의 변론재개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에 상고를 했는데 대응전략이 있습니까.
"먼저 박연차 전 회장이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하겠다는데 검찰이 반대의견을 내고 그게 재판부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진술이 수사 때부터 1심 재판까지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다고 하는데 기소된 혐의 중 절반 이상이 무죄가 났습니다. 박 전 회장도 1심 법정에서 총선 때 6차례 10억 이상 저에게 주려고 했는데 거절 당했다고 했습니다. 돈이 가장 필요한 총선 때도 거절 했는데 제가 다른 때 받았겠습니까. 박 전 회장이 돈을 식당 옷장에 놓고 나갔다고 주장했어요. 한명숙 전 총리 재판에서는 의자 위에 돈을 놓았다고 해서 '의자가 유죄'라는 말이 나왔었는데 저는 옷장이 유죄인 모양입니다. 저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 취임식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 어떻게 치를 생각입니까.
"제 성격 그대로 조용하게 치를 계획입니다. 김진선 지사가 문화예술회관에서 퇴임식을 하는데 저도 그 장소에서 취임식을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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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 인터뷰 2부 ⓒ 박정호


"능력 있는 진보, 따뜻한 진보의 모델 만들 것"

-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단체장에서도 40대 당선자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제대로 된 지방자치 모델을 선보이는 것이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소중하다는 바람이 있다. 강원도를 이끌어 갈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둘 생각입니까.
"먼저 우리가 분단으로 섬나라처럼 돼 있는데 강원도를 대륙국가로 가는 전진기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장기적인 비전이고요. 또 산, 바다, 호수 등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강원도를 아시아의 스위스처럼 만들고 싶습니다. 아시아의 스위스라는 게 단순히 관광도시가 아니고 일자리와 복지, 교육,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의 전형, 모델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1993년부터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하면서 전 세계 사례를 연구했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하고 이곳 지역구에서 일을 하면서 생긴 경험도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 압도적으로 당선된 데에는 지역구에서 성취해낸 교육문제에 대한 성과도 한 몫 했어요. 교육혜택을 주는 게 복지라는 생각에 영어 공부도 시키고 방과 후 학교도 공짜로 하고, 이 지역에는 학원이 없어서 방학이면 연세대학교 기숙사에 보내서 공부도 가르치고 그렇게 하다 보니 학생들이 군단위에서는 성적향상 1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교육문제 만큼은 강원도에서 확실히 할 생각입니다. 능력 있는 진보, 따뜻한 진보, 그런 모델을 만들겠습니다."

- 아시아의 스위스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오마이뉴스>도 '유러피언 드림' 기획을 진행하면서 한 달 전 쯤 스위스를 취재했습니다. 스위스는 대학 진학률이 20% 미만이지만 고등학교만 나와도 모두 취직이 되고 유치원부터 교육시스템도 탄탄하더군요. 강원도의 변신을 한번 기대해보겠습니다. 또 장애인과 노인분들에 대한 복지 확대도 공약했는데요.
"강원도 내 노인분들 중에 부양을 받지 못하면서도 호적상에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대상자가 못돼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죠. 이장님들과 또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써서라도 전수 조사를 해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입니다. 이 분들은 6.25 잿더미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켰고 자식 5~6명씩 낳아서 키우다 보니 결국 자신들의 노후 준비를 못했습니다. 사회가 보살펴야 합니다. 진보의 가치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한다면 공동체 정신을 지키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선거 운동 하면서 경로당에 대한 지원도 약속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할 생각인가요.
"당 중에 가장 중요한 당은 경로당입니다.(웃음) 노인분들 68%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지요. 이런 공간을 밀도 있게 만드는 게 노인복지의 핵심이죠. 그런데 정작 가보면 점심 해먹을 돈이 없어서 냉장고에 김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달에 100만 원 정도라도 드려서 밥이라도 제대로 드시게 하자는 겁니다. 또 지역의 교회나 성당, 사찰에서 노인대학을 하는데 자원봉사자들도 많고 인프라가 잘 돼 있거든요. 노인분들이 상당히 좋아하는데 지자체가 직접 하는 것보다 이런 시설들을 지원해서 내실 있게 만들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번 선거에서는 개발 위주의 공약들보다 무상급식 등 생활밀착형 이슈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강원도의 관광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발이 불가피할 수도 있는데 친환경적이고 공동체를 살리는 사업이 되게 하는 복안은 있습니까.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리조트와 같이 인공적인 시설을 만들 때는 고급화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자연과 함께 하는 관광상품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합니다. 강원도가 자연 속에서 쉬면서 명상하고 치유의 공간이 되게 하는 것이죠. 왜 우리가 산티아고까지 가야만 합니까. 수만 평의 소나무 숲을 조성하고 산 곳곳에 허브를 심는 등 독일의 본 같은 정원 도시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에 수제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생활과 나무라는 기업 매출이 연간 1조 원쯤 되는데 강원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기업이죠. 친환경적이고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일자리도 많이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역에 맞는 산업을 키워 나가면 굳이 파헤치는 개발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지역 발전이 가능합니다. 무상급식도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닙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학교 급식을 연결하는 푸드뱅크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지역의 농업을 살리는 정책이 됩니다. 일부에서는 부잣집 아이들까지 왜 혜택을 주느냐고 하는데 그럼 부잣집 아들은 군대 갈 때 자기 돈으로 총 사서 가느냐고 되묻고 싶어요.(웃음)"

- 동계올림픽 유치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7월 초 이건희 IOC 위원 등과 회동도 예정돼 있습니다. 삼수하는 셈인데 어떤 전략을 세워놓고 있습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최고의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도지사가 되면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게 되는데 양보를 했습니다. 머리가 두 개인 것보다는 단독위원장 체제가 좋겠다는 생각에서 고사를 했습니다. 중앙정부가 충실히 일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저는 제가 알고 있는 IOC 위원들을 접촉해서 유치활동을 벌이고 동시에 올림픽 유치 후 강원도에 필요한 변화 등에 대해서 준비하는 데 힘쓸 계획입니다."

"그동안 기회 없었던 안희정의 당선, 정말 기뻤다"

ⓒ 남소연

- 지금부터는 정치인 이광재 혹은 인간 이광재의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학생운동 할 때도 감옥에 갔었고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을 만든 사람으로서 역할을 하다가 결국 또 감옥에 갔는데요. 정치 보복과 연관됐다고 볼 수도 있는데 두 번째 감옥에서는 무엇을 배웠습니까.
"영등포 구치소에서 독방에 있었는데 그 방을 소개하면서 과거에 장세동 (전두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있었던 방이라고 하더군요. 권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

불교 용어로 무문관이라고 있잖아요. 누군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곳에 있으면서 벽에 '나는 누군가'라고 크게 써 붙여 놓고 자문자답을 많이 해봤어요. 책도 500권 정도 정말 많이 읽었고. 차분해지고 성숙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깨달음이 있었다면 인간에게 시련은 감당할 만큼만 오는데 딛고 일어서느냐 못하느냐는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사실이었죠."

- 심적으로도 힘들었겠지만 육체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안구 출혈이 생겨서 두 번 수술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시력이 많이 회복 됐습니다."

- 이 당선자가 감옥에 있을 때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이 무거웠을 것 같습니다.
"노 전 대통령과 저의 관계는 좀 독특했습니다. 1988년 처음 만났으니 당시 제 나이가 만으로 23세였어요. 저를 보좌관으로 채용하면서 전권을 다 줬어요. 승용차 운전사까지 제가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 친구는 아직도 봉하마을에 있어요. 20년 동안 정치하면서 어려웠던 적이 더 많았는데 함께 했던 사람들은 모두 한명도 흩어지지 않았어요. 아름다운 기억 중 하나죠. 그리고 저는 항상 참모였잖아요. 그래서 노 전 대통령과 제가 함께 찍은 사진은 5장 정도밖에 없어요. 제 역할은 노 전 대통령의 옆 자리를 비워주고 지켜보는 일이었죠. 참모는 자기 목소리가 없어야 한다는 게 제 오래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혹시 모시는 분에게 누가 될까봐 언론 인터뷰도 거의 안했던 것 같아요."

- 참여정부 시절 '우광재'로 불리던 이 당선자와 함께 '좌희정'으로 불렸던 안희정씨가 충남도지사에 당선됐습니다. 안 당선자의 친구로서 그의 당선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요.
"(박수를 치면서) 정말 너무 기뻤던 것이 저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있으면서 30대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했어요. 그리고 국회의원도 2번 당선 됐습니다. 그런데 희정이는 기회가 없었잖아요. 지난 번에 희정이가 안산 재보궐 선거 출마를 고민할 때 정치는 길게 보고 해야한다면서 충남을 지켜야 한다고 말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과연 충남에서 당선될 수 있을까 확신은 안생기고 조마조마 했는데 결국 해내더라고요. 너무 기뻤습니다."

- 당시 이 당선자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있었고, 안 당선자는 검찰 수사를 받고 감옥으로 갔는데 안 당선자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의 짐은 진짜 말도 못합니다. 민주당 최고위원에 출마하려고 준비하다가 희정이가 나가겠다고 해서 양보도 했었죠. 저는 주로 기획 파트 일을 하고 희정이는 살림을 맡았어요. 만약 역할이 바뀌었다면 내가 그 길을 갔을 겁니다."

- 참모로서 대통령을 만들어보고 참여정부 5년을 함께 운영해 봤는데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아쉬웠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핵심 참여자로서 아쉬운 점을 하나만 꼽는다면요?
"국가를 끌고 갈 만한 참모들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실현해나갈 인재풀이 두텁지 않았던 거죠. 그게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참여정부가 삼성에 포획? 과도한 해석"

- 참여정부 들어서 양극화 현상을 좁히지 못한 측면을 지적하는 목소리와 함께 참여정부도 삼성공화국으로 대변되는 재벌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기도 했는데요. 참여정부가 삼성에 포획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민간경제연구소가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소가 살아남았습니다. 정부가 이런 민간경제연구소의 의견을 듣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사람일수록 이들의 의견을 듣고 취할 것은 취하고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죠. 다만 그들의 의견대로 정부가 움직인다는 것은 너무 과도한 해석입니다. 참고 자료일 뿐입니다."

- 이건희 삼성 회장과는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함께 뛰게 될 텐데요.
"해외에 나가보면 아시겠지만 삼성은 세계적인 회사가 됐습니다. 또 동계올림픽의 공식 스폰서이기도 해서 유치전에서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동계올림픽을 강원도에서 치르고 나면 남북관계 변화는 물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저도 열심히 도울 생각입니다."

- 이번 지방선거에서 예전에 참모그룹을 형성했던 40대가 전면에 등장해서 광역단체장 등에 대거 당선이 됐습니다. 71년에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지 40년만인데요. 민주당만 해도 당 지도부에 젊은 세대가 진출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세대의 에너지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DJ와 YS 모두 20년대 생인데 이분들이 가장 왕성했던 젊은 시기에 8·15 해방을 맞고 6·25 전쟁을 겪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좌우갈등 속에서 생존하는 것에도 강한 투쟁이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대리석과 석회석은 성분이 같지만 대리석이 단단한 것은 고열압축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련 속에서 그 세대는 강할 수밖에 없는 에너지라는 게 있는 것이죠. 지금의 40대는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대학생 시절에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과 전두환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고문과 분신 등 어둠의 시절을 겪어 왔죠. 이런 과정을 거친 세대의 에너지가 이번에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도 68혁명을 이끌었던 학생운동 지도자들이 2000년대에 전부 지도자로 일제히 등장한 바 있습니다."

- 국회에 386정치인들이 많이 진출했지만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시련을 겪으면서 스스로를 단련할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우리 세대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4·19혁명 세대가 강연을 오곤 했었습니다. 그때 그분들을 보면서 '이미 기득권화된 사람들 아니냐'는 비판을 하곤 했는데, 386정치인들도 친구들이나 동세대로부터 그런 지적을 들었죠. 먹고사는 문제, 교육문제, 집값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소홀한 게 사실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는데 누가 봐도 훌륭한 지방자치단체의 모델을 만들어내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혼자서만이 아니라 다른 야권의 단체장들과 협력하면서 반드시 성과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 남소연

정치인은 희망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희망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삶에 있어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죠. 행복의 조건을 따져 보면 결국 일자리가 중요하고 유아 보육과 교육이 중요하죠. 또 이제 100세까지 사는 시대에서는 노후 복지도 중요합니다. 유럽에서는 연세가 많은 층에서 진보정당 지지율이 높아요. 진보 정당이 연금 등 복지에 있어서는 강점이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진보의 확실한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 10여년 전 <오마이뉴스> 창간 즈음에 이 당선자를 만났을 때 정치 벤처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후 10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부터 서거라는 비극까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뒤 돌아보면 감회가 어떻습니까.
"제가 92년 겨울에 결혼했는데 93년 신혼여행 다녀와서 아내에게 노무현을 대통령 만들어야겠다고 말했어요.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낙선한 국회의원이었죠. 같이 밥을 먹던 아내가 그만하고 밥 먹자고 하더군요.(웃음) 93년부터 연구소를 만들어서 정치인들의 흥망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봤습니다. 그 결과 뜻이 있는 소수가 열정을 가지고 해나가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정치인은 현실에서도 이겨야하지만 역사와의 승부에서도 이겨야 하는데 이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현실에서 대통령이 되어도 후대의 평가가 나쁘면 나쁜 대통령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정치를 해나갈 때는 겸허한 자세를 갖추면서도 원대한 이상을 가지고 잊지 않아야만 긴 역사의 호흡 속에서 승부를 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권? 욕심 많이 내면 몸에 해롭지만..."

- 민주당 등 야권의 승리 이유 중 하나가 야권 연대였습니다. 강원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으로도 야권이 연대해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미래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이 당선자는 왜 참여당을 선택하지 않고 민주당 안에 있나요.
"정치는 현실이 중요합니다. 이게 결국 국민참여당으로 가지 않은 이유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면서 꼬마 민주당이 '3김 청산'을 내걸었어요. 당시 우리 당에 현역 국회의원 청문회 스타 10명이 모여있고 국민들 지지도 높았습니다. 만약 총선이 있었다면 교섭단체 구성도 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지방선거를 치러야했죠. 그런데 수천명의 후보를 구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야권의 분열만 초래하고 지리멸렬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DJ가 지도자로 있는 정당과 합치자고 한 거죠. 지금 생각해도 그 길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국민참여당도 이번 선거 후 결과적으로 보면 전국적으로 후보를 내기에는 약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정치가 새로워져야한다, 특히 민주당이 더 분발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을 주는 측면은 있습니다. 정치적 현실 속에서 연대와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하는데 정치적으로는 쉽지 않은 문제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 대통령을 만들어 본 사람으로서 강원도지사직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대선에 도전해볼 생각이 있나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욕심을 너무 많이 내는 것은 몸에 해로운데요. 일단 도지사로서 성과를 확실히 내겠습니다. 예전에 한나라당에 있는 원희룡 의원에게도 그랬고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도 '대통령이 될 생각을 가지고 노력하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을 때 자기를 더 단련해 나갈 수 있다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앞으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화두에 어떤 내용을 채워갈 것인가, 또 후손들에게 어떻게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이 두 가지에 있어 성공 모델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트위터에 조철현씨가 이런 글을 남기셨네요 "직무를 정지시킬 수는 있어도 민심의 흐름은 정지시킬 수 없다" 이제 마칠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사해 주시죠.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여기는 호반의 도시 춘천입니다. 여름 휴가 강원도로 와주세요. 제가 직접 마중 나갈 수는 없겠지만 여러분들이 조금이나마 더 좋은 환경에서 잘 지내시다 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이광재 #지방선거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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