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교사, '굼떠서 일 못한다'고 쫓아냈죠"

CCTV로 보육시설 24시간 감시, 보육교사들에게 물어보니

등록 2010.06.26 11:16수정 2010.06.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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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공노조 서경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보육 노동자들

공공노조 서경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보육 노동자들 ⓒ 정현민

공공노조 서경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보육 노동자들 ⓒ 정현민

대학생 때, 과외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다. 그날은 새로운 학생과 첫 수업을 하는 날. 한참 떠들다 보니 방문이 빼꼼 열려 있다. 닫으려고 갔더니, 헉! 문 밖에 학생 아버지가 앉아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나 엿듣고 있었다. 그날로 과외를 그만뒀다. 당장 라면을 먹어야 했지만, 없이 살아도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다.

 

뉴스를 보니 어린이집에 IPTV를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어린이집에 IPTV를 설치해 준다는 말인 줄 알고 "잘 됐네" 했다. 그런데 신문에서 다시 보니 이게 웬 걸, 어린이집에 설치한다는 것은 CCTV!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찍어서 인터넷 텔레비전인 IPTV로 생중계하겠다는 소리였다. 그 말은 곧 교사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 '보육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몰래 카메라'로 감시하겠다는 거다.

 

6월 9일 저녁, 서울 서계동에 있는 공공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사무실에서 보육 노동자들을 만났다. 아무래도 CCTV 이야기가 먼저 나올 수밖에 없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때리고 학대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대책이랍시고 나온 건데, 사건이 충격적이다 보니 여론도 찬성하는 쪽이 더 많다. 교사들 생각은 어떨까?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한다고?

 

"'아, 저 CCTV로 누군가 나를 보고 있구나' 계속 그 생각에 빠져 있어요. 뭘 해도 그 생각, 애들을 돌봐도 그 생각……."

 

아…. 몇 마디 말하지도 못하고 눈물을 보인다. 홍수미씨는 11년째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그만큼 이번 일은 큰 충격이었다. 보육분회 분회장을 맡고 있는 심선혜씨가 말을 이었다.

 

"CCTV는 이미 한 시설에 하나씩은 다 있었는데, 저희 시설에서는 원장이 제일 싫어하는 교사의 반에 달았어요. 임신한 교사였는데, 원장이 CCTV를 증거 삼아서 저거 굼떠서 일 못한다고 하더니 결국 내보냈죠."

 

교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교사들이 항의를 해서 그 뒤로 한동안 CCTV를 꺼놓고 지냈단다. 그런데 오세훈이 서울시장이 되더니 '차별화된 안심 서비스'를 한답시고, CCTV로 찍고 IPTV로 생중계까지 하겠다고 한 것이다. 동네 골목길에 CCTV를 설치하는 것과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 뭐가 다른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채 일은 진행됐다.

 

겉으로는 "교사들이 동의한다면" 추진한다고 했다. 하지만 원장이 내미는 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할 수 있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전국에 있는 어린이집 가운데 교사가 다섯 명 미만인 곳이 3분의 2나 된다. 근로기준법이고 뭐고 원장 말 한마디로 교사를 자를 수 있는 곳이 태반이라는 뜻이다. 원장이 동의하라면 해야 되는 거다.

 

어린이집 교사-학생 비율, 숨 막힌다

 

"저희가 만날 교사 수를 늘려 달라고 했거든요. CCTV로는 아이가 다치는 걸 볼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교사 수를 늘리면 아이가 다치는 걸 막을 수가 있거든요. 어느 쪽이 근본적인 대책인지는 뻔하잖아요."

 

교사 한 명이 '공식적으로' 아이 몇 명을 돌볼까? 한두 살짜리는 5명, 네댓 살짜리는 20명까지다. 조카들이 생각났다. 네 살짜리 하나, 돌쟁이 둘이다. 가족들이 다 모이면 여기서 울고 저기서 찾고 또 여기서 자빠지고, 어른이 일곱이나 있어도 온 신경을 다 애들한테 쓰지 않으면 틀림없이 무슨 일이 터지고야 만다.

 

그런데 돌아서면 울고 밥도 혼자 못 먹는 돌쟁이들이 다섯 명, 아니면 한창 말 안 듣고 떠들고 싸우고 다치는 다섯 살짜리들이 스무 명이라니…. 그 많은 아이들을 하루 종일 먹이고 놀리고 재우고 가르치기까지 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죽었다 깨도 못하는 일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보육교사를 사랑과 봉사의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과 천사의 중간쯤에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교사-학생 비율 앞에서는 제아무리 천사라도 날개를 떼고 사표를 쓰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최대 세 명까지 '추가 보육'이 가능하게 됐다. 아이 한 명이 늘어나면 교사한테는 고작 1만5000원의 수당이 나온다. 교사들은 열이면 열, 수당을 안 받더라도 추가 보육을 안 하기를 바란단다. 아이들을 때리거나 학대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이렇게 죽어나는 노동 환경 속에서 교사들이 자기 통제력을 잃기가 쉽기 때문이다.

 

방광염, 위장병, 관절염, 성대결절, 청력손실...

 

"저희는 아이들 변기 써요. 어른 화장실은 밖에 있고 아이들 화장실은 교실에 있거든요. 선생님이 없으면 아이들이 울고 그러니까 아이들을 두고 나갈 수는 없고,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아이들을 보면서 볼일을 봐요. 저희는 변기에 앉아 있고 문 앞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거죠."

 

눈물로 시작한 인터뷰 분위기를 바꾸려고 재미있는 일은 없냐고 물었더니 함부로 상상해서는 안 될(?) 대답이 돌아온다. 다른 이들도 다들 웃으면서 "공감 백 배"라고 맞장구를 쳤고, 나도 웃으면서 재미있게 들었다. 그런데 어째 뒷맛이 씁쓸하다.

 

"볼일 볼 때도 우는 아이들 손잡고 달래면서 봐요. 1분 1초도 쉬지 않고 항상 아이들하고 뭐라도 해야 되는 거예요. 세상에 누가 유아 변기에서 볼일 보고 싶겠어요? 그런데 원장들은 그거 가지고도 뭐라 그래요. 변기 망가진다고."

 

7년째 일하고 있는 이주영씨의 이야기다. 그 말을 들으니 아까 뭣 모르고 웃은 게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다. 교사들은 대개 방광염, 위장병, 관절염, 성대 결절, 청력 손실 정도는 달고 산다. 화장실을 못 가니 방광염에 걸리고, 밥 먹을 때도 아이들을 봐야 하니 위장병에 걸린다. 눈높이를 맞추느라 항상 무릎을 꿇고 있으니 관절염이 생기고, 20명씩 되는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목소리를 높이다 보니 성대 결절이 오고, 그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청력이 약해진다.

 

하지만 아프다고 병원에 가거나 휴가를 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교사 한 명이 쉬면 그 교사가 돌보는 아이들을 고스란히 다른 교사가 떠맡아야 하기 때문에, 아파도 무조건 안 아파야 된다. 죽어도 나와서 죽어야 된다. 한번 상상해 보자. 지금 어린이집에서 울고 있는 당신의 아이를, 열이 40도가 넘는데 병원을 안 가 봐서 신종플루인지 그냥 독감인지도 모르는 교사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안아 달래고 있다. 그런데도 당신은 '사명감이 투철한 훌륭한 교사로군!'하면서 칭찬할 건가?

 

누구나 자기 아이를, 비실비실한 교사보다는 건강한 교사가 돌보기를 바란다.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오늘 그만둘까 내일 그만둘까 하는 교사보다는 걱정 없이 오래오래 일하는 교사한테 아이를 맡기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 보육교사들의 노동 환경이 아이들에 대한 보육의 질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하기보다 교사를 충원해 달라는 보육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글 아래에, 섬뜩한 댓글을 주렁주렁 달아 놓는 것이 바로 우리다.

 

교사에게도 행복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눈물을 보게 될 일도 많다. 이날도 아예 탁자 위에 화장지를 올려놓고 이리저리 돌려 가며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부모들은 CCTV를 통해 아이들을 보지만, 교사들을 CCTV를 통해 부모들의 불신을 확인한다.

 

4월호에, 3만 원짜리 설날 선물 때문에 특근 수당 80만 원을 거부한 발레오공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노동자들한테 정말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자존심이라고 했다. CCTV의 감시를 받는 '예비 범죄자'가 되면서, 보육 노동자의 자존심도 완전히 찢겨졌다. 이 날 흘린 눈물에서 그 상처의 깊이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잖아요. 마찬가지로 행복한 교사한테 돌봄을 받은 아이가 행복한 거예요. 지금 같은 교사-학생 비율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어요. 우리 아이들을 사람이라고 본다면, 절대 이 비율을 유지하면 안 돼요."

 

아이들한테는 '행복하게 자랄 권리'가 있고 교사들한테는 '행복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 아이들은 행복하게 키우고 싶지만 교사들이 행복하게 일하는 건 싫다는 우리들, 과연 '사람'을 키우고 있는 걸까?

덧붙이는 글 월간 <작은책> 7월호에 실었습니다.
#최규화 #작은책 #일터탐방 #보육교사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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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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