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자료관에 전시된 벽시계. 이 시계는 폭심지에서 약 800미터 떨어진 민가에서 발견되었는데 거짓말처럼 시곗바늘이 11시2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명주
나흘째 아침이 밝고 마침내 히라노마치로 향했다. 이곳에 두 번째 일본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최대한 천천히 달렸다. 마침 시간이 오전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 향한 곳은 국립 나가사키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 본격적인 추모공간에 들어가기 앞서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추모공간 준비실에 잠시 머물렀다. 장소의 의미를 되새기고 마음을 차분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만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벽면 모니터를 통해 2-3초 간격으로 18명씩 보여주는 원폭 사망자들의 슬라이드 사진 때문이었다. 그것을 다 확인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사진 속 그 평범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새삼 치가 떨렸다. 울음을 참으니 '꺼억' 하는 소리가 새나왔다. 준비실을 나오는데 이런 광경이 처음이지 않을 백발의 안내원이 눈빛으로 다독여주는 듯했다.
추모공간으로 들어섰다. 에메랄드빛의 긴 육면체 기둥 안에는 원폭사망자들의 성명을 등재한 명부가 들어 있었다. 고개를 젖혀 천정을 바라보니 물이 담긴 둥그런 수반의 밑바닥이 보였다. 이 수반은 애타게 물을 찾았던 원폭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밤이 되면 약 7만 개의 추모 등불을 밝혀 슬프고도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한다.
평화정보코너에서 오래도록 앉아 피폭 당시 상황과 피폭자들의 증언 자료를 보고 컴퓨터에 평화 메시지도 남겼다. 울고 나니 급격하게 기운이 떨어져 소파에서 잠시 졸기도 했다. 점심 때가 훌쩍 지났지만 밥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