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으로의 시간여행

[맘대로 떠나 무작정 살다오기 19] 기억하기

등록 2010.07.06 16:13수정 2010.07.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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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였습니다. 번쩍 빛났습니다. 그것은 이제껏 아무도 본 적이 없는 피카였습니다.'
'다리만이 두 개, 꽉 콘크리트 길바닥에 달라붙어서…'
'날개가 타버린 제비는 하늘을 날 수가 없게 되어 깡총깡총 땅바닥을 걷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튀어나와 보니, 경례하는 모습인 채, 전우들이 서 있다. "이봐!" 하고 어깨를 두드리자 부슬부슬 전우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겨우 살았다고 기뻐하던 사람들이 몸 여기저기에 반점이 나타나거나 머리털이 몽땅 빠지거나 하면서 차례차례 죽어 갔습니다.'

1950년 일본에서 간행된 <피카동 (뜻 : 번쩍, 쾅)>이란 그림책 내용의 일부다. 이 책은 피폭상황을 너무 생생하게 그렸다 하여 '반미적'이란 이유로 미군에 의해 발행 금지됐다.


 나가사키의 코카이도. 도심을 달리는 전차가 '빠앙' 하고 기적을 울리면 마치 "노병은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 같다.
나가사키의 코카이도. 도심을 달리는 전차가 '빠앙' 하고 기적을 울리면 마치 "노병은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 같다. 이명주


2010년의 나가사키 코카이도. 도심 한가운데 여전히 전차가 달리고 수백 년 간 온갖 고초를 겪은 돌다리가 검버섯 가득한 얼굴로 이방인을 맞는다. 도시는 마치 65년 전 8월 9일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돌아가 미래로 가는 시계 침을 봉인해버린 듯 하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로 이동해왔다. 처음 사흘은 숙소 주변을 배회했다. 소후쿠지절에서 젠린지절까지 무려 11개 사찰을 볼 수 있는 일명 '템플 로드', 일본의 산토리니라 할 만한 '료마길', 료마길 끝에서 만나는 '카자가시라 공원', 해가 저물고 조명에 물들면 더욱 아름다운 돌다리군까지. 넋 놓고 걷다 보니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듯했다.

삶의 흔적이 켜켜이 녹아든 이곳 풍경은 늙은 어머니의 속살 같이 애틋하고 푸근했다. 그러다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파괴됐었구나.'


상처 들여다보기



 원폭자료관에 전시된 벽시계. 이 시계는 폭심지에서 약 800미터 떨어진 민가에서 발견되었는데 거짓말처럼 시곗바늘이 11시2분을 가리키고 있다.
원폭자료관에 전시된 벽시계. 이 시계는 폭심지에서 약 800미터 떨어진 민가에서 발견되었는데 거짓말처럼 시곗바늘이 11시2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명주

나흘째 아침이 밝고 마침내 히라노마치로 향했다. 이곳에 두 번째 일본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최대한 천천히 달렸다. 마침 시간이 오전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 향한 곳은 국립 나가사키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 본격적인 추모공간에 들어가기 앞서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추모공간 준비실에 잠시 머물렀다. 장소의 의미를 되새기고 마음을 차분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만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벽면 모니터를 통해 2-3초 간격으로 18명씩 보여주는 원폭 사망자들의 슬라이드 사진 때문이었다. 그것을 다 확인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사진 속 그 평범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새삼 치가 떨렸다. 울음을 참으니 '꺼억' 하는 소리가 새나왔다. 준비실을 나오는데 이런 광경이 처음이지 않을 백발의 안내원이 눈빛으로 다독여주는 듯했다.

추모공간으로 들어섰다. 에메랄드빛의 긴 육면체 기둥 안에는 원폭사망자들의 성명을 등재한 명부가 들어 있었다. 고개를 젖혀 천정을 바라보니 물이 담긴 둥그런 수반의 밑바닥이 보였다. 이 수반은 애타게 물을 찾았던 원폭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밤이 되면 약 7만 개의 추모 등불을 밝혀 슬프고도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한다.

평화정보코너에서 오래도록 앉아 피폭 당시 상황과 피폭자들의 증언 자료를 보고 컴퓨터에 평화 메시지도 남겼다. 울고 나니 급격하게 기운이 떨어져 소파에서 잠시 졸기도 했다. 점심 때가 훌쩍 지났지만 밥 생각은 없었다. 

 '평화를 기원하며'
'평화를 기원하며'이명주

힘을 내서 원폭자료관으로 향했다. 자료관 입구는 각지에서 평원을 염원하며 만들어 보낸 종이학 조형물이 가득했다. 자료관 안으로 들어가자 피폭의 참상이 한층 더 피부로 와 닿았다. 

폭심지에서 약 800미터 떨어진 민가에서 발견된 벽시계는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오전 11시 2분에 정확히 멈춰 있었다. 폭격 당시 순간 온도가 3000~4000도에 달하는 열섬으로 형체 그대로 재가 된 모녀의 사체, 얼굴 반쪽이 완전히 녹아내린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 앞에서 끝까지 눈을 돌리지 않았다. 또 다른 민가에서 발견된 유리 묵주는 사탕처럼 녹아 있었고, 14살 쓰쓰미 사토코란 소녀의 도시락 안엔 숯덩이가 된 밥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65년 전의 '현실'이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의 항복을 받아낼 최후(분명 최선은 아니었다)의 수단으로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15분에 히로시마에, 바로 3일 후인 9일 오전 11시2분 나가사키에 'FAT MAN'이라 이름 붙인 원폭을 투하했다.

그 결과 히로시마에서는 약 14만 명, 나가사키에선 약 7만 4천 명이 사망했고 부상자와 이재민의 수는 집계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엄청났다. 그러나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감히 '죽는 게 나았다' 말할 수 있을 피폭 후유증이었으며, 그것은 세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에겐 생경한, 혹은 희미해진 과거가 또 누군가에겐 지금 이 순간에도 삶 전체를 옥죄는 아픈 현실인 것이다.

 원폭자료관에 전시된  피폭 당시의 사진. 폭심지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우라카미란 역 앞에서 발견된 원폭이 뿜어낸 엄청난 열선(약 3000~4000도씨)에 온몸이 재로 변한 모자의 사체다.
원폭자료관에 전시된 피폭 당시의 사진. 폭심지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우라카미란 역 앞에서 발견된 원폭이 뿜어낸 엄청난 열선(약 3000~4000도씨)에 온몸이 재로 변한 모자의 사체다. 이명주


이 역사의 흔적을 둘러보는 것만도 힘에 부쳤다. 심장에 붉은 벽돌 한 장을 매단 것 같았다. 그러나 원폭 낙하 중심지와 평화공원까지 남김없이 둘러본 뒤에야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과 헛헛함에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는 일 외엔.

많은 이들이 원폭은 일본의 세계정복 야욕이 부른 응당한 대가라고 한다. 일본이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벌인 참혹한 살상은 원폭 피해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잘못했느냐' 하는 1차원적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 아닌 생명을 처참하게 말살시키는 것, 이유가 뭐든 그 폭력을 다수가 묵인했다는 것, 그러한 살육이 지금도 광범위하게(때로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두렵고 소름 끼치는 사실이다.

식탁에 홀로 앉아 오래도록 술을 마셨다. 친숙해진 게스트하우스의 직원과 몇몇 여행자 친구들이 다가와 "왜 그러냐"고 묻는다. "낮에 원폭기념관에 다녀왔거든"이라고 하면 대부분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저 감상에 취하는 것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줄 알지만 이날만은 슬픔을 만끽할 수밖에 없었다.

 폭심지에서 약 7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쓰쓰미 사토코란 14살 소녀의 도시락. 야만의 전쟁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날 아침 어머니가 정성껏 싸줬을 도시락을 친구들과 함께 먹었을 것이다.
폭심지에서 약 7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쓰쓰미 사토코란 14살 소녀의 도시락. 야만의 전쟁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날 아침 어머니가 정성껏 싸줬을 도시락을 친구들과 함께 먹었을 것이다. 이명주

#나가사키 #원폭 #전쟁 #FAT MAN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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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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