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주방에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등록 2010.07.06 20:02수정 2010.07.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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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함께 사는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주방에 아기새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나. 살아 있는 한 마리는 밖으로 겨우 내보내줬는데 죽어 있는 한 마리는 도저히 처리할 수가 없어 그냥 외출한다는 것이었다.


평소 집안의 온갖 벌레들을 손쉽게 잡는 내가 퇴근하고 치워주마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정말로 아기새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이미 며칠은 된 것 같았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이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죽은 것 같았다. 쓰레기봉투에 넣어 처리하면서 도대체 이 아기새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의문이 생겼다.

첫 번째 추측. 평소 열어두는 화장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새가 주방의 와인 병 옆에 알을 깠을지 모른다는 것. 하지만 그 추측은 말이 되지 않는 게 어디에도 알 껍질의 흔적은 없었다. 물론 병 옆에 여린 나뭇가지와 억새 같은 것들이 있기는 했지만 도저히 거기서 알을 깠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알을 깔 동안 아무리 며칠동안 집에서 밥을 해먹지 않았기로서니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두 번째 추측. 어떤 배관 통로를 통해 주방으로 타고 왔을 거라는 것. 하지만 어디를 찾아봐도 역시나 아기새들이 들어왔을 만한 통로는 없었다. 어떻게 아기새들이 주방에 오게 된 것인지는 그렇게 미스터리한 일로 남겨버리려고 했는데 주방에서 짹짹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였다. 처음엔 바로 뒤에 산이 있어서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가만히 귀 기울였더니 주방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했다.

소리를 따라 주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냉장고 뒤, 보일러, 싱크대 아래 등을 다 뒤지다가 가장 유력한 곳 싱크대 위의 장을 보았다. 혹시 짠 하고 열었을 때 아기새 여러 마리가 있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며 문을 열어보았다. 없었다. 아무리 주방을 뒤져보았지만 새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새들의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소리로 추측컨대, 적어도 세 마리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알아낸 진실. 새들은 싱크대 위의 장 속에 있었다. 물론 장을 열었을 때 보이지는 않았다. 장 속에 있는 환기구 안에 집을 지었던 것이니까. 새는 가스레인지와 연결되어 바깥으로 나 있는 환기구 안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았던 것이다. 그런데 주방과 바깥 벽 그 틈새로 안타깝게도 아기새들이 떨어진 것이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보니 무서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저 아기새들이 자라서 날아갈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환기구를 잠시 빌려준 셈 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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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 떨어진 새 한 마리. 아기새라고 부르기엔 제법 큰 모습이다. ⓒ 김가영


그런데, 토요일, 또 한 마리의 새가 떨어진 것이다. 그 사이 많이 자라 아기새라고 부르긴 그렇지만 어쨌든 그 아기새는 날개도 제법 자랐고 부리도 제법 어른 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한 가지, 날 수 없다는 점만 빼면. 아직 살아 숨쉬는 그것을 나는 밖에 고이 내보내주었다. 저 멀리 어미새로 보이는 새가 보였다.

날이 더워 바싹 마른 시멘트 위에 누워 있는 아기새가 안돼 보였다. 무슨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물을 가져다 뿌려주었다. 아기새는 시멘트 위에 뿌려진 물을 먹으려는 건지 아님 단지 숨을 쉬는 건지 입을 자꾸 벌려댔다. 아기새를 집어서 환기구인 집 속으로 돌려보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 키로는 닿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어미새가 자신의 새끼를 내가 여기 데려다 놓은 것을 보았으니까 알아서 할 거라고 책임을 전가하고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몇 시간 후 깨고 보니 문득 아기새의 행방이 궁금해 밖에 나가 보니 아기새의 흔적은 없었다. 그 아기새는 어미새의 도움을 받아 다시 살아났을까? 아님 행여 그대로 있다 고양이 밥이 된 건 아닐까?

다음날, 여전히 새들은 재잘댔다. 새들과 동거 아닌 동거를 하며 그들이 지저귈 때는 밥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나보다 더 규칙적으로 식사했다. 아침 8시 무렵 아침을 먹고 낮 12시에 점심을,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는 간식도 먹는 모양이었고, 오후 6시가 넘으면 저녁을 먹는 것 같았다. 놀러온 친구는 어미새가 싱글맘인 모양이라고, 혼자서 애들 밥 주기 바쁘겠다고 농담을 했다. 어미새가 강하게 키우려고 일부러 새끼들을 떨어뜨리는 거 아니냔 얘기까지 했다.

주인집에 환기구에 새가 산다는 말을 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나와 누워서 전화 통화를 하다가 끊고는 문득 창가의 커튼 쪽으로 눈길이 갔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저게 뭐지? 혹시, 저거, 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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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것은 새가 분명했다. ⓒ 김가영


그랬다.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그것은 새였다. 야, 여기 너희 집 아니잖아! 이제 방까지 들어오면 어떻게 해? 나가! 나는 징징대며 대걸레로 커튼을 툭툭 쳤고, 새는 열린 방문이 아닌 방문과 벽 틈새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니?

함께 사는 친구에게 방 안에 새가 들어온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포즈를 취해주는 건지 새는 나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어미새인가? 혹시라도 주인아저씨가 어미새가 보지도 않는데 몰래 아기새들을 치워 버려 새끼를 찾으려고 틈새로 일부러 내려온 것일까? 그렇다면 날 공격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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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라도 취해주는 건지 사진 찍는 동안 나를 빤히 보며 가만히 있는 새. 사진을 축소했더니 나를 보고 있는 눈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 김가영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새는 날 공격하지 않았다. 커다란 비닐로 살며시 그러안고 밖으로 나와 놓아주었다. 비닐을 내려놓고 빼주었는데도 새는 바로 날아가지 않고 나를 보았다. 너 도대체 뭐니? 응?

새끼들을 잃어버려서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걸까, 조금 신경이 쓰인 건 사실이었지만 이제 짹짹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렇게 새들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얼마 후, 퇴근하는 길에 주인집 아저씨와 마주쳐 물어보았다.

"환기구에 새.... 치우셨어요?"

나는 아저씨가 아기새들을 산으로 보내줬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미새가 보지도 않는데 그리하였다면 어미새는 당연히 걱정되어서 주방과 벽 틈새로 내려와 새끼를 찾았던 거라고.

"아니, 안 치웠는데요. 이번 주말에 환기구 막아 줄게요."

이런 반전이! 아저씨는 새들을 치운 적이 없단다. 그렇다면 아기새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어 스스로 독립해 날아간 것일까?

"어미새가 아니라 네가 구해준 새 아냐? 너한테 인사 하려고 온 거지. 구해줘서 감사하다고."

친구는 나한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어른이 된 아기새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한 번 떨어진 경험이 있어서 우리 집 주방으로 오는 길도 알고 있으니 나보다 먼저 들어와서는 퇴근해서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덕분에 살아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떠나려고! 어쨌거나 한동안 우리집 안을 짹짹대고 주방에 종종 떨어져서 걱정 끼치던 새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나저나 전국의 새들아, 우리 인간적으로 남의 집에 세 들어 살진 말자. 나도 세 들어 사는데 우리 집 환기구에 세 들어 사는 건 좀 아니지 않니? 특히나 여자들만 사는 우리집은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난감했다구. 아, 그리고 우리집에서 잠시 살았던 새들아, 내가 구해줬다고 또 환기구에 집 지어서 새끼 낳지 말고 뒤에 산 많으니까 이제 거기에 집 짓고 잘 살아라. 알았지? 
#아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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