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얀거탑>의 한 장면.
MBC
오바마 대통령이 '히틀러! 공산주의자!'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까지 의료시스템 개혁에 온 힘을 기울였지만 새로운 공공보험을 도입하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시장에 의존하는 미국 의료시스템의 비효율성은 거의 개선되지 못할 전망이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바마의 소원이었던 바로 그 공공보험을 무너뜨리기 위해 한국 정부는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세계 5위 정도의 효율성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되는데도 말이다.
'의료 산업화'(참여정부)와 '의료선진화'(이명박 정부)로 이름만 달라졌을 뿐 참여정부 때 제출되었던 의료 민영화 법안이 다시 부활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시장 요소를 더 많이 도입하면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보수시대'의 신화, 2008년부터의 금융위기로 사경에 처한 시장만능론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의료부문에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은 애로우(Kenneth Arrow, 197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고전적 논문('불확실성과 의료의 후생경제학') 이래 경제학자들에게도 상식이다. 표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시장 실패'가 다 관찰될 뿐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위험과 불확실성이 넘실대는 곳이 바로 의료부문이다.
건강보험 질병리스트가 민간보험에 넘어간다면?우리는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고 암을 치료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러나 어떤 은행도 암에 걸린 사람에게 치료비를 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병이 나아서 돈을 빨리 갚을 수 있을까, 지극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것이 보험이다.
그러나 민간보험시장은 소비자의 역선택과 보험사의 위험선택(risk selection)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인)라면 가난한 사람, 노인, 임산부 등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과 함께 보험에 들지 않으려 할 것이고 보험회사는 건강한 사람, 젊은 사람, 부자들만 뽑아서 보험에 가입시키려 할 것이다. 결국 보험의 원래 기능은 사라지고 만다.
후자의 경우를 특히 "단물 빨아먹기"라고 부르는데 교육 등 서비스 시장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다. 최근 정부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보험사기(보험에 가입할 때 당신이 앓았던 질병 리스트를 하나도 빼 놓지 않고 말해야 사기가 아니다)를 막으려 한다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질병 정보가 민간 보험회사에 넘어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은 사람들을 그룹별로 분리한 상품을 만들어 가격차별화를 통해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 할 것이다. 원리 상 늙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보험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또한 거대한 자본과 방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몇 안 되는 보험회사들이 시장에 진입장벽을 치고 카르텔을 형성하기 십상이다. 즉 독과점이라는 시장실패도 필연적이다. 보험시장이 분리되고 또한 독점이 형성되면 당연히 보험료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최근 실손형 보험이 한국의 의료비 급증을 주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병원 내 소비자 주권 찾기, 불가능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