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저리 가라, '옥녀'납신다

[공모-이 여름을 화끈하게]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던 30년 전 공포물

등록 2010.07.08 19:53수정 2010.07.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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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더위와 함께 찾아온 공포의 계절! 오싹한 공포를 즐길 줄 아는 담력 좋은 당신은 혹시 특별한 납량특집을 기대하고 있는가. 최근 몇 년 동안 방영한 납량드라마가 거의 실망스러웠기에 별로 관심이 생기질 않는다고?


하지만 30여 년 전 여름밤을 서늘하게 했던 공포의 납량드라마를 기억해보라. 무더운 여름밤을 후끈하게 달구며 더위를 잊게 했던 공포드라마의 추억, 얼마나 무서웠는지…. 또 무슨 귀신이 그리도 많았던가. 기나긴 여름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때를 떠올려본다.

30여 년전 <전설의 고향>, '내 다리 내놔'편을 기억하니

a 전설의고향 "이 이야기는 전라도 OO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로~ " 라는 형식으로 끝맺는 도움말은 공포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설의고향 "이 이야기는 전라도 OO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로~ " 라는 형식으로 끝맺는 도움말은 공포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KBS


서양 공포물의 주인공이 흡혈귀, 드라큘라, 몬스터 등이었다면 우리 드라마의 공통적인 주제는 한 맺힌 여인의 복수였다. 한이 많아, 죽어서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복수를 해야만 비로소 평안을 찾고 저승으로 간다는 단순한 소재의 드라마가 서양의 그것보다 백배 천배는 더 무서웠다. 외국 호러무비는 그저 잔인함을 느끼거나 깜짝 놀라는 수준에 그쳤지만 한여름밤 소복을 입고 피를 흘리는 여인을 볼때의 공포란···.

어린 시절 여름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공포물의 원형은 뭐니 뭐니 해도 <전설의고향-'내 다리 내놔'>편이었다. 이 드라마는 전설, 민간 설화 등을 바탕으로 한 귀신이야기로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방송됐다. 특히, 극의 종반부 "이 이야기는 OO도 OO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로~ " 라는 멘트는 공포의 결정판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드라마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전설의 고향> 한 편만 보더라도 대충 줄거리는 다 접수되고, 오히려 자신도 작품을 한편 쓸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용과 상관없이 드라마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음산함은 그 자체로 공포였던 것이다.


<전설의 고향> 드라마를 보다가 터져 나오려는 소변을 움켜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경험을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나오지 않는가? 그때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을 과감하게 다녀올 수 있던 사람이라면 아마 '귀신'이거나 귀신의 탈을 쓴 존재였으리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엔 특히 더했다. 평소보다 한결 공포의 수위가 높아지는데 승려로 변신한 구미호가 길을 가다 홱 돌아보는 장면에선 거의 숨이 멎어 혼절한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설의 고향>은 이상하게도 끌리는 매력이 있었으니, 아마도 '귀신'이 붙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여름밤마다 머리끝까지 뒤집어쓸 이불을 미리 준비해 놓은 채, 음산한 배경음악과 함께 공포의 화면이 나올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불 속에서 빼꼼하게 눈만 내놓고 공포에 떨다가도 또 일주일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신문 '오늘의 방송 하이라이트'를 챙겨보며 공포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던 <전설의 고향>그 공포의 위력은 어떤 최신 에어컨이 따라올 수 있으랴.

어디 <전설의 고향>뿐이었는가. 70년대 말 공포드라마의 절정을 장식한 <옥녀>는 또 얼마나 무서웠는가? 산채로 매장되려던 소녀는 구출되고 신통력이 주어진다. 그 후 옥녀를 둘러싸고 괴기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녀에게 점지됐던 낭군의 집과는 원한관계가 깊었는데 정권의 각축과 사랑의 갈등이 엇갈리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옥녀>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옥녀(김영란 분)의 관이 벌떡 일어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

"옥녀야~!" 엄마의 혼령에 놀란 옥녀의 왕방울 눈

당시 시골집의 방문은 바람이 불면 문풍지가 파르르하고 떨며 갑자기 문이 사르르 열리곤 했는데, <옥녀>를 보던 중 방문이라도 열리는 날이면 혼비백산하고도 남았다. 사실 그때는 어린나이에 충격을 받아 너무 무서웠지만, 엄마와 함께 자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혼자서 그냥 '깡'으로만 긴긴밤을 버텨야 했던 슬픈 추억도 있다.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옷고름에 눈물적시다 고이 간직해 놓은 사각면경을 열면 거울 속에서 "옥녀야~! 옥녀야~!"하고 부르던 엄마의 혼령에 화들짝 놀란 옥녀의 왕방울만한 눈. 그 눈이 클로즈업되면서 드라마는 감질나게 끝났는데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

반공드라마의 색다른 후끈함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5년 매주 토요일 저녁, 전국의 까까머리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지직거리던 흑백화면 앞으로 집결시켰던 <113수사본부>.

이 드라마는 <전우>이후 대공기관 '113 수사본부'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로 난수표 해독, 독침사건 등 매주 한 차례씩 간첩의 흉악함을 소재로 한 일종의 시추에이션 드라마였다.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아예 간첩단 사건을 소재로 일일드라마를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다.

깊은 여름밤, 흉악한 갑첩이 나를 따라온다면?

중앙정보부에서 제공한 허무 맹랑한 소재에 또 다른 드라마식 허구를 추가해 만들었으니 온 국민의 무의식속에 '반공의식'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하지만, 늦은 여름밤 텔레비전이 있는 친척집에서 <113수사본부>를 본 후 컴컴한 언덕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갈 때면, 뒤에서 흉악한 간첩이 따라오는 것만 같아서, 집을 향해 마구 달리던 기억이 나지 않는가? 색다른 공포를 전해준 <113수사본부>도 역시 여름밤을 후끈하게 해준 일등공신(?)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당시 공포영화의 스토리는 전부 '한'에 관한 것이고 귀신의 모습도 비슷하기에 무섭냐 안무섭냐의 척도는 그것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그때는 소복 입은 여자가 곡성을 내면서 피 흘리고 나오면 여름밤 무더위는 싹 물러갔다.    

올해도 어김없이 공포의 계절이 다가왔다. 하지만 물 건너온 공포물들은 피와 살점이 화면 가득 튀기며 죄 없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줄줄이 죽어나가는 연쇄살인물이거나 정체불명의 괴수영화일 따름이다. 아마 올해도 이런 여름용 납량특집 공포물이 판을 치겠지만 30여 년 전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것에 비할 수 있으랴.

여름밤 후끈한 기억을 떠올릴때면 함께 따라오는 <전설의 고향>. 정말 이 여름을 시원하고 화끈하게 만들 '옥녀'가 그리울 따름이다. 시원한 팥빙수 한 그릇, 그리고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오싹한 공포의 <전설의 고향> 한 편이 그립다.

30여 년 전 <전설의 고향>을 보고도 기절하지 않고 지금껏 건강하게 여름을 지내온 당신, 영원히 위대할지라.

덧붙이는 글 | '2010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글


덧붙이는 글 '2010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글
#이 여름을 화끈하게 #여름 #전설의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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