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제와 '전화'가 도대체 무슨 상관?

기아차, 노조 교섭 없이 전임자 '무급휴직' 처리... 사측 "그동안 너무 잘해줬다"

등록 2010.07.14 20:58수정 2010.07.14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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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소하리공장 내에 위치한 노동조합 사무실. 기아차 노조는 타임오프제에 반대하며 사측과 대립하고 있다. ⓒ 최지용


"노조사무실 전화기로는 휴대폰에 전화를 걸 수 없습니다. 유선 전화도 서울과 경기도만 연결되고 다른 지방으로 거는 시외전화도 안 됩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 지부 김태영 부지부장의 푸념 섞인 말이다. 그는 "도대체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제도)랑 노조사무실 전화가 무슨 상관이냐"며 "사측이 타임오프제 시행을 빌미로 법과 무관한 노조활동까지 탄압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노조사무실의 몇몇 간부들은 바로 앞에 유선전화기를 두고도 자신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 7월 1일 타임오프제 시행과 동시에 노조 사무실 전화기의 발신을 구내전화와 시내 전화만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노동조합 전임자의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타임오프제도가 도입된 이후, 그 시행방안을 놓고 각 기업의 노동조합과 사업자간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사측이 노동조합의 전화를 차단하고 업무지원 차량을 회수하는 등 타임오프제 시행과는 관계없는 일방적인 행정조치를 취해 탈법논란이 일고 있다. 그 가운데 노사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민주노총 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 지부를 찾았다.

잘나가는 기아차, 노사는 제자리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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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사물실에 놓여진 전화기. 이 전화기로는 이동전화로 발신이 안된다. ⓒ 최지용


14일 오전, 가장 인기가 좋은 신형 모델인 'K5'는 아니지만, 방금 출고된 매끈한 차량들이 운반트럭에 가득 실려 공장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부품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의 출입도 쉴 틈 없이 이어졌다.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기아자동차 공장 입구. 최근 사상 최대의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는 기아자동차답게 공장은 입구에서부터 활력이 넘쳤다.

그러나 공장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노동조합 사무실로 가는 길에는 '노동조합을 지키겠습니다', '전임자 축소 반대', '정몽구 회장이 나서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노동조합을 들어서는 입구에는 '사측 간부 출입금지'라는 경고장이 붙어 있기도 했다.

고용부의 '타임오프제 매뉴얼'에 따르면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경우 206명의 노조전임자 가운데 18명만 '근로시간면제자'로 사측에서 임금지급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노조에서 임금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조가 이에 반발하고 나섰지만 노사 양측은 아직까지 협의 창구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2년 전 체결한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지난 3월 31일로 종료돼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타임오프제 시행 관련한 협의를 하자고 사측에 제안했다. 그러나 사측은 노조의 제안을 거부하고 타임오프제에 관련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협의할 것을 요구했다.

타임오프제를 시행하며 '근로시간면제자의 인원'과 '노동조합 활동 시간'은 노사 양측이 교섭을 통해 결정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단협 또는 특별위원회)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양쪽은 각자가 유리한 상황에서 협상을 하기 위해 팽팽히 맞선 것이다.

이렇게 양쪽의 입장이 전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사측은 지난 7월 1일 타임오프제 시행과 함께 노조전임자로 있는 204명에 대해 전원 무급휴직 처리뿐만 아니라 ▲노조사무실 전화 발신제한 ▲교육 참여 조합원 무급처리 ▲업무차량 회수 및 지원중단 ▲사무기기 반납 ▲노조간부 숙소(아파트) 철거 ▲판매·정비 분회 노조 사무실 철거 등의 행정조치를 취했다.

'단체협약' VS. '부당노동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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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 지부 김태영 부지부장. ⓒ 최지용

김태영 노동조합 부지부장은 노조 전임자들에 대한 무급휴직 처리에 대해 "타임오프의 인원과 시간에 대한 교섭 없이 일방적으로 무급처리 한 것은 사측 스스로가 고용부의 업무 매뉴얼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타임오프제를 실시하는 다른 나라의 경우 '전임자를 최소 몇 명'으로 하라는 하한선이 규정되어 있지 우리나라처럼 '몇 명까지만 된다'는 식의 상한선을 정해놓은 곳은 없다"며 타임오프제 자체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측이 실시한 그밖에 모든 사안은 노조법에서 금지한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나 금품지급이 아닌 노조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단체협약을 통해 노사 양측의 합의한 사안"이라며 "타임오프제와 관계없이 탈법적 탄압을 자행하는 것은 노조활동 자체를 무력화 시키려는 악의적인 행위"라고 성토했다.

실제로 고용부에서 발행한 '타임오프제 시행 매뉴얼'에는 '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 금지'와 '근로시간면제자에 대한 규정과 운영 방법' 등만 나와 있을 뿐 기아자동차 사측이 실시한 행정조치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기아자동차 사측 관계자는 "타임오프제 매뉴얼에 따라 실시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은 것"이라며 "전임자 무급휴직 처리는 노조가 타임오프제 시행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계속 거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처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전화에 대한 발신 제한은 이동전화나 시외전화를 연결할 경우 과도한 통신비를 사측에서 부담하는데 이는 금품지급으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구내전화와 시내전화만 되는 것은 다른 공장과 동등한 조건"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측에서 행한 그밖에 조치에 대해서도 "모두 같은 이유"라며 "그동안 회사가 과도하게 노조를 지원해왔다"고 말했다.

임태희 장관은 "타임오프 빌미로 노조 탄압 안돼"

그러나 사측의 이러한 해명은 법해석의 문제가 있어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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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자료사진). ⓒ 남소연


노무법인 '나무'의 신지심 노무사는 "기아자동차 사측은 노조법 81조 4항의 '노동조합에 대한 경비원조의 부당노동행위'를 근거로 설명했지만 이는 사측의 지원을 받는 노조가 어용노조여서 정상적인 노조활동이 안되는 경우, 다른 노동자들이 제기해야 성립하는 법률"이라며 "거꾸로 기업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설령 부당노동행위가 있더라도 대부분 단체협약을 통해 합의 된 것인데 고용부의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명령 없이 사측이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측은 부당노동행위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못 박았다.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 또한 사측의 노조탄압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임 장관은 지난 5일 고용노동부 출범식 이후 열린 오찬 간담회에서 "타임오프 시행으로 노동계가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경영진이 타임오프를 핑계로 노사가 협의해 처리할 수 있는 사안까지도 모르는 척하는 경우가 있다"며 "일부 경영계가 노조 전임자에 대한 타임오프제를 빌미로 노조활동을 과도하게 옥죄려고 하고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타임오프 #K5 #기아자동차 #임태희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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