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신문고' 인권위... "현병철 취임 1년간 10년 후퇴"

[현장] '현병철 위원장 취임 1년 토론회' 인권위에 대한 비판 쏟아져

등록 2010.07.14 21:22수정 2010.07.1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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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7일이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취임한 지 딱 1년이 된다. 그동안 인권위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바짝 엎드렸다. 국내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국방부조차 손을 젓는 대북방송 재개를 추진하기도 했다. 자질시비를 빚는 위원들로 위원회가 채워지고 있다. 그야말로 후퇴다. 인권위 밖에서는 "1년 동안 10년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평가가 내려질 정도다.

인권위는 본래 기존 권력기관을 견제 감시하는 독립적 기구로서, 인권 사각지대를 조명하고 인권 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인권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 국민들이 인권침해를 입었을 경우 울릴 수 있는 신문고가 되어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인권옹호자'여야 한다. 그러나 신문고는 찢어졌고, 인권위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박원순·<PD수첩>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에 입 다문 인권위

 '현병철 취임 1년, 국가인권위 활동 평가 토론회'가 14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렸다.
'현병철 취임 1년, 국가인권위 활동 평가 토론회'가 14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렸다. 이주연

사회적 목소리의 '무음화'의 예로는 박원순 변호사와 <PD수첩> 사건을 들 수 있다. 지난 해 9월 국가(대한민국)는 박원순 변호사가 국정원 민간사찰을 폭로한 것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또한 검찰은 2008년 미국산 광우병소의 위협을 다룬 <PD수첩>에 대해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의 명예를 훼손했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이처럼 진실을 폭로하고, 정부를 비판했다고 정부가 한 개인과 프로그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명백히 침해되는 사안이었지만 인권위는 침묵했다. 인권위는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14일 오후 인권위에서 열린 '현병철 위원장 취임 1년, 국가인권위 활동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법에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판이 계속 중인 경우 인권위는 법원 재판부나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들이 정작 이 규정을 모르는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그는 "만일 이 법조항을 알고도 그런 거면 지나친 보신주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인권위 민주성 찾아볼 수 없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13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13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남소연
이렇게 인권위원들이 몸을 사리는 것에는 현 위원장이 끼친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는 본래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는 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에게 부담이 되는 의견 표명이나 결정을 하지 않으며 정부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취임 당시부터 'MB맨'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던 현 위원장이 친정부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명숙 활동가는 "기구의 수장인 현 위원장의 행보를 지켜본 위원과 직원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 때, 인권위 차원에서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는데 현 위원장이 동의할 수 없다며 논의가 이뤄지던 회의 자체를 폐회하고 나가버렸다"고 말했다. 현 위원장이 위원들 간의 합의로 의견 표명을 결정하는 체제를 뒤엎는 독단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가장 인권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할 인권위에서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제대로 된 민주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대북방송 재개 권고안 "이 대통령에게 하명 받은 현 위원장의 정치 액션"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할 인권위가 정부의 요구에 발맞추는 모습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11차 전원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된 '대북방송재개 권고안'이 꼽혔다.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는 정부가 주요하게 여기는 활동은 활발히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북한인권 사업"이라며 "지난 달 김태훈 인권위원이 제기한 '대북방송 재개 권고안'은 아무 효과도 없는 일방적 정보 발송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북방송의 경우 국방부조차 재개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는 입을 닫은 채 대북방송만 재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인권이 권력의 정치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취임 당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북한 인권에 대한 정책 추진을 하명받은 현 위원장이 정부 입맛에만 맞는 북한 인권에 대한 정치적 액션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 구성원 뽑을 땐 구체적 인권옹호 활동 경력 뒷받침돼야"

 토론회 참석한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왼쪽)와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토론회 참석한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왼쪽)와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이주연

인권위에서 주요 안건들에 대해 입장 표명 등의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인권위원들의 인선 절차도 도마에 올랐다. 위원장뿐 아니라 인권위원들 면면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배여진 활동가는 "인권위 회의에 참석한 친정부적이고 반인권적인 몇몇 인권위원들의 발언 내용을 들으면 인권위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낮은 수준의 이야기가 오간다"며 "맨 처음 회의 광경을 봤을 땐 인권위가 끝났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는 인선절차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홍성수 교수는 "인권위원의 전문성과 인권지향성을 검증할 수 있는 인선절차가 없다"며 "시민사회의 추천을 보장하는 후보추천위원회를 도입하거나 인사청문회를 실시해 인권전문성 있는 인물을 선출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태욱 '국가인권위독립성수호를 위한 교수모임' 교수도 "현 위원장이 취임하고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10년을 잃어버린 것 같다"며 "인권위 구성원을 뽑을 때에는 인권옹호 활동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경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조영호 인권위 홍보렵력과 과장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인권위의 독립성이 확보되려면 사회적으로 신망 있는 분들이 임명되어야 한다"며 "큰 원칙에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쉽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 어려운 내부 구성원도 인선절차 제도화에 공감을 표하듯, 인권위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사람을 뽑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 마무리 발언을 한 명숙 활동가는 "지금의 인권위는 시민과 사회단체들이 관심을 완전히 끊고 싶을 만큼 후퇴한 상황"이라며 "시민이 인권위에 등을 돌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인권위 구성원의 역할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위 #PD수첩 #현병철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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