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톤 트럭이 갑자기 멈추어 섰다. 어둠이 내리는 정글 길에서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금방 다시 시동이 걸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운전병은 운전석에서 내려 엔진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내 생애 가장 길고 끔찍했던 2시간의 시작이었다.
1970년 4월인가 5월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매복조 1개 분대를 인솔하여 정글 한 가운데 매복지점 가까운 곳에 내려주고 돌아서 나오는 길이었다. 위치는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베트남 맹호사단 사령부가 있던 퀴논지역, 나는 당시 맹호사단사령부 본부중대 작전 담당이었다. 매복은 작전 명령으로 매일 하달되었고 밤마다 작전에 투입되었다.
장교 1명과 10명의 사병들로 구성된 매복조는 사단 사령부 부근 정글에 투입되어 야간 작전을 펼쳐야 했다. 작전 담당인 나는 매일 낮에 매복조장인 장교와 함께 작전명령으로 하달된 매복 위치를 찾아 확인하고, 병력배치 계획을 세운 후 돌아왔다, 그리고 해질녘에 낮에 동행했던 매복조장 장교를 포함한 매복조를 현장에 투입하고 다시 사령부로 돌아오곤 했다.
밤에 비가 내릴 것처럼 구름이 잔뜩 끼었던 이날 밤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글 속에 병력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매복조가 정글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트럭을 돌려 500여 미터 쯤 나오는 중에 트럭이 멈추어 버린 것이다. 무전기도 매복조가 휴대하고 정글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우린 빈 손이었다. 누구의 도움이나 구조요청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운전병이 트럭의 고장 수리를 하는 동안 나는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주변 경계를 했다. 그런데 잔뜩 흐린 날씨에 땅거미가 내린 정글은 금방 깊은 어둠이 내려 덮였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정글 속의 어둠은 더욱 깊었다. 그런데 운전병이 이번에는 트럭 밑으로 기어들어가며 손전등을 비춰달라고 한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손에 든 손전등으로 트럭 밑을 비춰주고 다른 한 손은 총을 움켜잡았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있는 우리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어둠 속 어디에선가 불쑥 나타난 베트콩(북베트남 게릴라)이 나를 덮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하기 시작했다.
트럭 밑에 기어들어가 차를 수리하고 있던 운전병이 작은 목소리로 하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었다. 온통 적진이나 다름없는 정글 속에 두 사람만 고립되었으니 어느 순간에 적의 표적이 되어 저격당하거나, 적에게 포위당하여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엊그제 내린 비로 낮은 곳은 질척하게 젖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전히 왼손에 든 손전등은 운전병이 차를 고치도록 비춰 주고. 오른 손에는 M16 소총을 움켜잡은 자세 그대로였다. 그런데 엎드려 있으려니 엎드린 내 뒤쪽은 완전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더구나 칠흑 같은 어둠속에 손전등을 비추고 있으니 주변에 적이 있다면 얼마나 확연히 드러나는 표적인가.
어두운 숲속에 나타난 두 개의 작은 불빛 눈동자
그런데 트럭 밑에 들어가 무언가를 열심히 정비한 운전병이 운전대로 올라가 시동을 걸어보다가 실패하고 다시 트럭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난감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무더운 정글 속에서 공포감으로 긴장한 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러 온몸이 비를 맞은 듯 젖어들기 시작했다. 목과 손목 부근에서는 무슨 벌레들인지 기어들어 스멀스멀 돌아다니는 느낌이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긴장과 공포 속에서 1시간여가 지났을 때였다. 웬일인지 등 뒤쪽에서 으스스한 느낌이 엄습한다. 머리가 쭈뼛 일어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불쾌한 느낌이었다. 몸을 약간 뒤틀고 고개를 돌려 뒤쪽을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안심하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약간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 같은 작은 불빛 두 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며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다시 몰려오는 으스스한 공포,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가슴도 답답해진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재빨리 손전등을 껐다. 그리고 운전병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 다음 몸을 돌려 움켜 쥔 총구를 그쪽으로 향했다. 주변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막감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다음 순간 불빛이 다시 나타났다가 약간 희미해지며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으로 들어갔는지 눈이 쓰라리고 흐릿해진다. 가슴은 극심한 긴장감으로 쿵쾅거리는 심장의 박동소리가 귀를 울리고 있었다. 오른 손은 총을 움켜쥔 상태여서 왼손 손등으로 눈을 쓱 문질러 닦고 두 눈을 부릅떴다.
불빛은 움직임을 멈춘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공포심을 이기려고 두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다음 순간 약간 희미해졌던 불빛이 다시 밝아지며 위쪽으로 조금 올라간다. 그리고 휘리릭 춤추듯 빠른 속도로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짧은 순간이었다. 너무 놀란 나는 하마터면 소총의 방아쇠를 당길 뻔 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 냉정을 회복한 나는 다가오는 불빛을 노려보며 총구만 그쪽으로 향한 채 참아냈다.
정체를 확실히 파악하지 않고 사격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정글은 온통 적의 활동 무대였기 때문이다. 불빛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우리들의 머리 위를 몇 미터 높이로 휘릭 지나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체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깊은 숨을 토해냈다.
겨우 지탱하고 있던 힘이 빠지며 맥없이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총을 들고 있을 힘마저 빠져버려 흙 위에 내려놓고 개머리판 위에 얼굴을 묻었다. 우리들은 그렇게 엎드린 채 또 몇 분 동안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나는 다시 손전등을 켜 운전병을 비춰주었다. 모든 상황판단과 대처는 내 몫이었다. 계급은 같은 병장이었지만 운전병은 내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 병장님 괜찮으세요? 조금 전 그 불빛은 무엇이었죠?"
"아, 아무 것도 아냐? 도깨비불이거나 올빼미겠지 뭐. 아직 원인 못 찾았나? 겁먹지 말고 침착하게 고쳐봐? 경계는 내가 책임 질 테니까."
공포와 긴장으로 온몸은 물에 빠진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지만 운전병에게는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었다. 내 지시와 격려로 운전병은 다시 힘을 얻은 듯 했다. 운전병은 다시 달그락 달그락 정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달그락 거리는 소리는 왜 그렇게 크게 들리는지, 온몸의 세포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일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던 2시간의 공포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났다. 하루 밤을 꼬박 지새우는 것 같은 기나긴 시간이었다. 손전등은 운전병의 작업방향에 맞추고 있었지만 시선은 주변의 어둠속을 부지런히 살펴보았다. 부대를 나올 때 짙게 내려앉았던 검은 구름이 언제 비를 쏟아 부을지 그것도 걱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까지 쏟아지면 시동이 걸려도 자동차 바퀴가 진흙에 빠져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이제 다 된 것 같습니다."
질식할 것 같은 공포와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 운전병이 트럭 밑에서 기어 나왔다. 나도 총을 들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다음 순간 "부르릉~~~" 시동이 걸렸다. 재빨리 트럭 조수석에 올랐다. 늘어졌던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났을까, 트럭은 거친 정글 길을 조심조심 달렸다.
"흐휴~~ 이제 살았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네."
사령부로 연결된 포장도로에 들어서며 운전병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어느 정도 안심해도 좋은 길이었다. 처음으로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긴장이 많이 풀린 것이다. 트럭이 고장난 지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부대 정문을 들어서자 부대는 발칵 뒤집혀 있었다.
야간작전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상례였지만 구조대를 보내야 할 것인가가 심각하게 논의 되고 있었다고 한다. 본부사령을 비롯한 당직 장교들 몇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병과 함께 샤워장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우리 두 사람은 핏기 잃은 얼굴에 옷은 흙탕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땀과 흙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줄까?" 응모기사입니다
2010.07.16 13:53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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