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음 울리지 않은 도난사고, 경비업체 책임

1심 "경비업체 50% 책임"→ 항소심 "책임 없다"→ 대법원 "경비업체 책임"

등록 2010.07.20 18:51수정 2010.07.2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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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방 업주가 귀금속을 금고에 보관하지 않은 경우 도난 배상책임이 없다는 면책약관이 있고, 이상신호를 접수한 경비업체 직원이 즉시 출동했더라도, 도둑이 들었음에도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면 경비업체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경기 여주군에서 귀금속 상점을 운영하던 L(65)씨는 2007년 2월 무인경비시스템을 작동시킨 뒤 이 건물 3층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퇴근했는데, 다음날 새벽 3시40분경 절도범 4명이 해머 등으로 유리문을 깨뜨리고 침입해 진열장에 보관 중이던 1억 4000만 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쳐 달아났다.

그러나 당시 경비시스템은 아무런 경보음도 울리지 않았다. 사고 발생 직후 이상신호를 접수한 경비업체 A사는 접수 시각으로부터 2분 14초 만에 직원을 현장에 출동시켰으나 범인들은 이미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뒤였다.

이에 L씨는 "A사가 경보기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주의의무를 게을리 해 피해를 봤다"며 2억 3500만 원 상당의 소송을 냈다.

A사는 재판 과정에서 "계약의 주요 내용은 이상신호를 감지했을 때 즉시 출동하는 것이지 경보음의 발생 여부가 아니므로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정도의 과실에 해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심 "경보음 울리지 않은 경비업체에 50% 과실 책임"

이에 대해 1심인 수원지법 여주지원 민사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 경비업체 A사의 책임을 손해액 50% 인정해 "피고는 원고에게 7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경보기기가 작동해 경보음이 울릴 경우 범인으로 하여금 초조하게 만들어 범행을 지속하기 어렵게 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같은 건물 3층에 거주하는 원고가 즉시 가게에 내려와 피해의 방지 내지 축소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적어도 경보음이 울리지 않은 피고의 과실과 도난 손해의 확대 사이에 인과관계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사고 발생 직후 피고의 조치에 따라 출동요원이 사고접수로부터 2분 14초 만에 현장에 도착했으나 전문절도범들은 이미 도망간 점, 원고가 고가의 귀금속을 금고에 보관하지 않아 도난사고로 인한 손해의 확대에 기여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가 배상할 손해배상책임은 5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면책약관 있고 범행이 신속해 막을 수 없어 경비업체 책임 없다"

그러자 경비업체 A사는 "원고가 절취당한 귀금속을 금고에 보관하지 않고 진열장에 보관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이므로, 면책약관에 따라 배상할 책임이 없다"며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21민사부(재판장 김주현 부장판사)는 지난 1월 A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1심 판단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에서는 경비업체가 면책약관을 계약 가입자에게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그 약관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지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즉 경비업체가 L씨에게 면책약관을 설명했는지를 다퉜다.

문제의 약관 제21조(귀금속 등의 손해배상)는 현금 유가증권(수표, 상품권, 주권, 채권, 어음 등), 매입단가 15만 원 초과의 귀금속류(금제품, 보석류) 및 시계류, 광파기 등의 귀중품은 경비업체의 금고감지기가 부착된 금고 내에 보관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경비업체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 한해 배상한다고 돼 있다.

재판부는 "약관의 설명의무도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에 관해서는 사업자로서는 고객에 대해 약관의 내용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며 경비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피고는 사고가 감지된 후 즉시 출동요원에게 출동을 지시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 2분 14초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이는 통상의 경우와 비교해 봐도 매우 빠른 출동으로 보이는 점, 범인들이 경보기기 작동 여부에 개의치 않고 해머로 유리문과 진열장을 무차별적으로 깨뜨린 다음 순식간에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점 등에서 출동요원이 더 신속하게 출동했어도 범죄를 막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서 경보음이 울리지 않은 과실만으로 피고의 경비에 중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항소심 사건 다시 심리 판단하라"

하지만 대법원은 경비업체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금은방 업주 L씨가 경비업체 A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보석상을 운영하는 사람이 매일 진열장에 전시한 귀금속 등을 금고에 넣고, 다음날 이를 진열장에 전시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대단히 번거로운 일인데, 경비업체가 제시한 면책약관은 이 같은 번거로움을 감수하지 않으면 배상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취지를 규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원고가 사전에 면책약관에 관한 설명을 들었더라면 귀금속을 진열장에 놔둔 채 가게를 비우거나 퇴근하는 행동을 자제했을 것이고, 적어도 다이아몬든 등 고가의 귀금속은 금고 안에 넣어 뒀으리라는 측면에서 면책약관은 고객에게 설명해줘야 할 '중요한 내용'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또 "경보음이 울렸을 경우 범인들을 초조하게 만들어 범행을 지속하기 어렵게 하거나 서두르게 해 범행시간을 짧게 하는 효과가 있음이 분명하고, 건물 3층에 거주하는 원고와 그의 가족 또는 인근 주민, 행인 등이 출동요원이 도착하기 전에 가게로 오거나 범인들을 추적하는 등의 방법으로 범인들이 현장을 완전히 이탈하기 전에 적절한 초치를 취할 수 있었던 가능성이, 경보음이 울리지 않은 경우보다 현저하게 높아지므로, 경보기기의 작동불량과 도난피해 발생 및 확대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이와 다른 판단을 한 원심 판결은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는 만큼 사건을 다시 심리 및 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법원으로 되돌려 보낸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경비업체 #도난사고 #경보음 #금은방 #귀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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