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취직하고 우울증이 사라졌당께"

9명 어르신이 뭉쳐 창업한 식당 전북 군산의 '곽밥'

등록 2010.07.22 11:44수정 2010.07.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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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여기 간 좀 봐주쇼. 싱건가 짠가."
"아따~ 주방에서 40년간 음식 만들었으면 그 정도는 척척해야지.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그래두 형님~ 식구들 먹을 음식할 때보다 더 신경 쓰이고 떨려유."
"동상도 그런가. 하긴 나도 그려. 어디 함 먹어봅세." 

오전 10시. 조리실 안이 분주하다. 오늘의 요리는 구수한 아욱국에 고등어튀김, 미역초무침, 애호박부침, 어묵조림, 메추리알 장조림, 소시지부침, 계란말이 등등. 한쪽에선 부치랴, 다른 한쪽에서는 볶으랴 정신이 없다.

61세 어르신이 막내인 이곳, 72세 남자 어르신이 홀서빙을 하는 이곳, 바로 어르신들이 창업한 식당 '곽밥'이다. 곽밥은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 산한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노인일자리사업 공모에 군산노인종합복지관이 응모·선정된 노인일자리 창업모델형 식당으로 지난 6월 14일 문을 열었다.

쉽게 말해 어르신들이 뭉쳐서 창업을 한 것이다. 그동안 주유소 아르바이트나 어르신 택배 사업 등의 노인 일자리가 있었지만 이렇게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없었기에 '곽밥'은 새로운 도전은 지역사회는 물론 인근 시군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맛에 한번, 가격에 또 한 번 놀라는 '곽밥'


어르신들의 솜씨 '곽밥' 엄마의 마음으로 정성껏 만든 반찬들과 국. 가격은 3~5천원 밖에 안한다. 맛은? 끝내준다!
어르신들의 솜씨 '곽밥'엄마의 마음으로 정성껏 만든 반찬들과 국. 가격은 3~5천원 밖에 안한다. 맛은? 끝내준다!장희용


문을 연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지만 현재 곽밥은 성공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 9명의 어르신이 직접 조리, 시골밥상의 향수가 물씬 풍기는 음식으로 벌써부터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 비결은 바로 '맛'. 주부 경력 40~50년, 그 중에서도 손맛이 있기로 소문난 사람들 중 실제 맛 테스트를 거쳐 선발했다. 경험과 타고난 솜씨가 만났으니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여기에 저렴한 음식 값은 손님들의 만족도를 200%로 높였다. 폭탄곽밥이 3천원, 만수무강곽밥이 4천원, 불로장생곽밥이 5천원 밖에 안 한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반찬이 소홀한 것은 아니다. 도시락을 뜻하는 곽밥은 1인분씩 찬합의 형태로 나오는데, 국과 밑반찬이 정갈하고도 먹음직스럽다.

이날 식당을 찾은 한 손님은 "우리가 엄마 손맛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바로 딱 엄마 손맛이다. 보통 식당은 여러 번 먹으면 물리는데, 여기 곽밥은 늘 맛있다"며 곽밥 예찬론을 펼친다. 이렇게 찾아오는 손님은 하루에 50명 내외.

맛 소문을 타고 이제는 '배달'까지 늘고 있다. 식당 인근에서 맛도 좋고 값도 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배달 주문이 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2천~3천원에 파는 각종 밑반찬도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식 다 키우고 허탈했는데, 이제는 삶이 재밌어"

"이제는 삶이 재밌어졌어" 곽밥에서 일하는 어르신 9분은 '곽밥'에서 일하면서 삶이 재밌어졌다고 말한다.
"이제는 삶이 재밌어졌어"곽밥에서 일하는 어르신 9분은 '곽밥'에서 일하면서 삶이 재밌어졌다고 말한다.장희용
'곽밥'이 손님들에게 엄마의 맛을 선물해 주었다면 곽밥을 창업한 9명의 어르신들은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자식, 손자 다 키워 보내고 이제 홀가분하게 살겠거니 했는데, 어느 날 내 자신이 껍데기만 남은 것 같더라고. 드라마에서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와도 청승맞게 눈물만 나오고. 내가 이제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확 우울증이 와버린 거여.

한번 우울증이 온 게 약도 필요없더만. 그런데 이곳에 취업하게 된 거야. 여기서 좋은 형님, 동상들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하고, 맛있게 먹고 가는 손님들 보니 삶이 재미있어지더라고. 일을 해서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우울증이 없어진 게 가장 좋당게. 이제 삶이 재밌어졌어."

어느 날 인생이 허탈해 우울증까지 왔지만 곽밥에서 일한 후부터는 '삶이 재미있어졌다'고 말하는 공성순(62) 어르신이다. 김영자(64) 어른신도 "나 같은 사람도 아직 쓸모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 재밌어. 웃는 일이 많어"라며 밝은 표정을 짓는다.

노인일자리, 공공근로 등 공익형 아닌 시장형 필요

이처럼 창업식당인 '곽밥'의 등장은 그 자체가 고무적이다. 그간 공공근로 등 공익형 노인일자리사업만으로 한계를 느끼던 노인일자리창출문제를 '시장형 노인일자리사업'으로 변화하는 발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위탁운영기관인 군산노인종합복지관의 박수진(곽밥 사장) 사무국장은 "시장형 노인일자리사업의 활성화가 제기되는 때에 '곽밥'은 노인일자리사업의 새로운 지표를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제2호점, 3호점을 내 어르신들의 일터를 많이 만들어주고, 또한 전국 모범 사례로 널리 알려 노인일자리 창출에 새로운 창을 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어르신은 용돈 벌고, 삶에 활력소를 찾아서 좋고, 손님들은 어머니 손맛 나는 맛있는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어서 좋고. '곽밥'이 노인일자리사업의 성공모델이 되길 응원해본다.

시장형 노인일자리 사업 모델 '곽밥' 공공근로 등 그동안 공익형 노인일자리 창출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이번 시장형 노인일자리 사업 창업식당 '곽밥'이 주목받고 있다.
시장형 노인일자리 사업 모델 '곽밥'공공근로 등 그동안 공익형 노인일자리 창출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이번 시장형 노인일자리 사업 창업식당 '곽밥'이 주목받고 있다.장희용

#창업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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