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 "밥 먹을 공간도 없다"

공공노조 '청소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발표

등록 2010.07.21 19:48수정 2010.07.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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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밥을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은 물품보관실 같은 창고 뿐이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밥을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은 물품보관실 같은 창고 뿐이다. ⓒ 공공노조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밥을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은 물품보관실 같은 창고 뿐이다. ⓒ 공공노조

 

서울대병원의 청소노동자들이 물품보관실에서 식사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조사가 발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서비스노조에서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209명(응답자 1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88%가 식사비 부담으로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그 가운데 64%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마땅한 휴게장소가 없어 물품보관실 등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응답자 가운데 54%가 일하는 도중 다친 경험이 있지만 64%는 본인이 치료비를 내야했다. 그 가운데는 쓰레기통을 비우다 주사바늘에 찔린 경우가 43%나 됐고 그로 인해 C형 간염에 걸리는 사례도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21일 오전 민주노총 공공서비스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는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일하다 다쳐도 서울대병원에서는 치료 못 받아

 

a  21일 기자회견에서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민들레분회 이영분 분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21일 기자회견에서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민들레분회 이영분 분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최지용

21일 기자회견에서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민들레분회 이영분 분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최지용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들어서자마자 '10년 연속 브랜드파워 1위'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국가중앙병원'이면서 대표 공공병원이라는 그 명성에 걸맞게 병원은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전 시간에도 주차장은 이미 빈자리가 없었고 병원 앞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가 수십 대 서 있었다.

 

그렇게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병원 곳곳에 놓인 쓰레기통에는 쓰레기가 절반도 차 있지 않았다. 길에 떨어져 있는 휴지도 없었고 오래된 본관 건물도 안으로 들어서니 마치 새건물처럼 깨끗했다. 서울대병원이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선정하는 '브랜드파워'에서 10년 동안 1위를 지킬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같은 쾌적한 환경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의 청소면적은 4만9천여 평, 209명의 청소노동자들이 하루에 각각 230여 평씩 청소한 결과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병원 구석구석을 청소한 이들의 노고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오전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며 쓰레기통을 비우다 주사바늘에 찔리기도, 허리와 무릎을 삐기도 했지만 자신이 일하는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125명의 청소노동자 중 67명(54%)이 일하다가 다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 응답한 부상 사례는 주사바늘에 찔리는 경우가 37명(42.5%), 관절부위의 꺾임 및 삐는 사례가 37명(42.5%)으로 가장 많았으며 일하다가 다치고도 어떠한 치료도 받지 않거나 집에서 치료하는 경우가 40명(42.8%)에 달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비율은 12명(17.1%)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치료를 받았다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39명(63.9%)은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했으며, 서울대병원에서 부담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치료비 액수를 기입한 34명의 평균 치료비는 27만5400원이었다. 주사바늘에 찔려 C형간염에 걸린 청소노동자의 경우 본인이 부담한 치료비만 1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병원 "직원 휴게공간도 없다"

 

a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병원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병원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최지용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병원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최지용

청소노동자들은 하루 약 12시간에 달하는 긴 근무시간으로 하루 두 끼를 병원에서 먹어야 하지만 잠시 쉬면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청소노동자들이 식사를 하는 공간은 주로 물품보관실로 각종 청소 용품들이 보관돼 있어 매우 비좁고 위생상태도 좋지 못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106명(88.3%)이 식사를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있고 그 이유는 식사비 부담 때문이 92.5%로 가장 많았다. 구내식당을 이용한다는 응답자는 10명(8.3%)밖에 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구내식당의 식사 가격은 3000원 이상으로 한 달 임금이 10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청소노동자들이 매일 이용하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밖에도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공간도 없어 대부분 물품보관실이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는 응답도 나왔다.

 

이에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민들레분회 이영분 분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병원은 우리를 철저히 무시하며 유령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서울대병원에서 일하지만 서울대병원의 직원은 아니라는 식의 태도는 참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병원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밥을 먹는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며 "청소노동자의 실질임금을 보장하고 식사, 탈의 등을 위한 휴게 공간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병원을 이용하던 시민들도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기자회견장 옆에까지 와서 회견을 지켜보던 김아무개 할머니는 "돈도 조금 주면서 밥 먹을 곳도 안 준다는 것이 말이 되나"라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아줌마들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라고 혀를 찼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측은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도 병원에 공간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서울대병원 복지과 관계자는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청소원분들의 요구를 잘 알고 있고 필요성도 인식하고 있다"며 "그러나 건물이 오래되고 병실도 모자란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원청과 하청업체의 역할에 대해서도 아직 불분명한 게 많아 병원에서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며 "병원 직원들도 휴게공간을 요구하는 데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공간을 마련하기에는) 병원 상황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대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공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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