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W총회에서 기조강연을 하는 나카타 씨6월 12일, 전문직 여성들의 일할권리와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조직된 단체 BPW의 2010년 총회에서 강연을 하는 나카타 케이코씨, 그녀는 이날 "사람과의 만남이 인생을 바꾼다"는 취지로 자신의 시민운동 라이프를 밝고 경쾌하게 이야기했다.
전은옥
나카타씨의 노르웨이 행은 본인이 처음부터 선택한 길이 아니라 남편을 따라 가족이 전부 이사를 하는 형태이기는 하였으나, 그녀는 보다 적극적인 생활을 했다. 북구의 신화를 읽고 아이들에게도 읽히면서 풍부한 자극을 얻었고, 어둡고 긴 겨울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맑은 날에도 비오는 날에도 어떠한 날씨에도 산책과 소풍,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삶의 방식을 이어간다. 그리고 자녀 교육을 하면서 '남녀평등 선진국, 인권교육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노르웨이의 교과서나 교육 실태를 더 면밀히 파악하고 공부했다.
"중학교 교과서 첫페이지에 선주 민족이나 소수 민족의 문화나 민족차별 반대운동이 담겨 있는가 하면, 청소 노동자나 초콜릿 공장 노동자들의 사진도 실려 있었습니다. 또 당시 일본이 1년에 5~6명 정도의 난민만을 허용했던 데 반해, 꾸준히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난민을 받아들여온 노르웨이의 난민 정책과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베트남 어린이들의 생활을 소개하는 부분 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당시 딸들이 다니던 학교는 일본인 학교가 아니라, 노르웨이 현지의 학교였는데 나카타 씨의 딸들처럼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모국어를 공부할 권리를 중시하여, 매주 4시간 모국어 수업을 개설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노르웨이에는 베트남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학교에는 베트남어 모국어 교사 스완씨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겐 모국어 수업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저에게도 수업료를 지불할 테니 딸들에게 매주 4시간씩 학교에서 모국어 수업을 해달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노르웨이 내의 모국어 교사는 교직원 조합도 결성했는데, 23개국어의 교사들이 모여서 노조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모임에 참가하면서 나카타씨는 난민과 정치적 망명을 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도 만나게 된다.
나카타씨는 상당히 많은 자료와 사진 등을 준비하며 파워포인트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각료의 절반이 여성이었던 브룬트란트 내각(노동당)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노르웨이의 여성 파워와 양성평등에 대해 소개할 때는 부러움과 동경의 마음도 표했다. 또 노르웨이 초등학교 교과서의 양성평등 교육이나 남성의 육아 휴가 취득, 보육교사 속 남성 등에 대한 이야기도 펼쳐 놓았다.
노르웨이 생활을 2~3년 동안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나카타씨는 교육잡지에 노르웨이의 교육에 대한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저술하여 무언가를 전하는 일의 소중함을 인식해 책을 펴냈다. 그것이 <내가 만난 노르웨이>였다. 당시 그녀는 친구로부터 "무언가를 바꾸려고 생각한다면, 동료를 만들고 공부를 하라, 서로 협력을 하라"는 조언을 접한다.
이윽고 1991년 봄, 나카타씨는 사회를 바꾸고 자신과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길로 이어지는 또 한 사람의 결정적인 동료를 얻는다. '카나'라는 이름의 여성 동료였는데, "응원할게요"라며 열렬하게 나카타씨의 시의회 의원 선거를 도왔다. 카나씨도 나카타씨도 선거운동은 초짜였다. 나카타씨의 시의원 입후보는 도쿄 생활자 네트워크 운동의 일환이었다.
일본 지역 풀뿌리 운동의 상징인 생활자 네트워크는 1977년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슬로건으로 걸고, 그룹 생활자(생활자 네트워크의 전신)를 결성해, 도의회 의원 선거에 첫 도전을 한다. 현재 도쿄 도내 33개의 자치체에 생활자 네트워크가 있는데, "보도가 좁다, 재취직하려고 하는데 연령 제한 때문에 취직을 할 수가 없다, 육아의 괴로움을 사회가 해결해주면 좋겠다"는 등의 실제 생활과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화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출발했다.
생활자 네트워크에서는 도, 시, 구 의회의 각 선거에 후보자를 내놓고 그 후보가 시 의원이 되면 최장 12년(3선까지 가능)까지 시의회 활동을 한다. 그 다음부터는 새로운 후보가 도전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자체 생활 현장에 기반한 정치가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본 지역 풀뿌리 운동, 혹은 지방자치의 상징이 생활자 네트워크다.
이들은 수질 조사와 거리 조사, 공원이나 놀이터, 방치 자전거 조사 등 발로 뛰는 조사활동과 인터뷰, 앙케이트 등을 실시하고, 생활자의 시점에서 정리한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하해서 정책을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1998년에는 육아와 개호, 여성과 연금, 99년에는 어린이 인권, 2000년에는 여성과 노동을 테마로 하여 조사를 펼쳤고, 정책을 정리하여 제안했다. 2009년을 기준으로 도의원으로 3명, 시·구 의회 의원으로 51명이 활약했다.
나카타씨도 1991년 처음으로 도쿄도 후츄우시 시의회 선거에 도전하여 "설마 당선될까?"하는 의구심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선거운동을 해보자라는 생각했을 뿐인데, 덜컥 큰 표 차로 당선되어 버렸다. 선거운동에 참여한 전원이 '첫 경험'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선이 확정된 순간 나카타씨는 "내일부터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