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101) 이별

[우리 말에 마음쓰기 943] '이별'과 '헤어짐' 생각하기

등록 2010.07.27 10:34수정 2010.07.2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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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 : 이별이란 만남 뒤에 오는

.. 헤어짐이 밥 먹는 일보다 잦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어려울까 싶지만, 이별이란 늘 만남 뒤에 오는 최초의 사건이므로 서로 다 슬픈 것이다 ..  <민봄내-그림에 스미다>(아트북스,2010) 288쪽


"최초(最初)의 사건(事件)이므로"는 "첫 번째 일이므로"로 다듬고, "슬픈 것이다"는 "슬프다"나 "슬프기 마련이다"로 다듬어 줍니다.

"밥 먹는 일보다"라 하고 "식사(食事)하는 일보다"라 하지 않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이처럼 알맞게 잘 쓴 줄을 깨닫고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무엇이 어려울까"라 하며 "무엇이 곤란(困難)할까"라 하지 않은 대목 또한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이 대목을 이렇게 살뜰히 잘 가눈 줄을 느끼고 있을 듯하지는 않습니다.

 ┌ 이별(離別) : 서로 갈리어 떨어짐
 │   - 이별의 인사 / 영원한 이별 / 아내와의 이별 / 친구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
 │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다 / 군에 가는 친구와 역에서 이별했다
 │
 ├ 이별이란 만남 뒤에 오는 (x)
 └ 헤어짐이란 만남 뒤에 오는 (o)

글쓴이는 첫머리에서 '헤어짐'을 말합니다. 이러다가 이내 '이별'을 말합니다. 보기글 다른 대목을 보면서도 느끼는데, 이 글을 쓴 분은 우리 말을 어떻게 가다듬거나 우리 글을 어떻게 보듬어야 좋을는지를 헤아리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신한테는 말이 나오는 대로 스스럼없이 말을 한다 볼 수 있습니다만, 찬찬히 따지면 제대로 생각을 하지 않고 내뱉는다거나 올바로 곰삭이지 못하며 읊조린다고 해야 알맞지 싶어요.

 ┌ 이별의 인사
 │
 │→ 헤어지는 인사
 │→ 떠나는 인사
 │→ 헤어지며 나누는 인사
 │→ 떠나며 나누는 인사
 └ …


이 보기글을 쓴 한 분만 탓할 수 없고 나무랄 수 없으며 타이를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거의 모두 이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우리 말을 옳게 살피거나 우리 글을 알뜰히 건사하는 사람은 몹시 드물기 때문입니다.

옳게 살피지 않는 우리 말인데 아직 우리 말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모습은 놀랍다 할 만합니다. 알뜰히 건사하는 사람이 아주 드문 우리 글인데 한글이 영어와 한자한테 아주 잡아먹히지 않고 있는 모습은 퍽 재미있다 할 만합니다. 앞으로 우리 말과 글이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이와 함께 앞으로 우리 말과 글은 가뭇없이 사라질밖에 없다고 여기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껍데기인 한글은 남을는지 몰라도, 한글에 담을 알맹이인 참되며 고운 우리 말은 간데없이 없어질밖에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 영원한 이별
 │
 │→ 영원한 헤어짐
 │→ 다시 보지 않는 헤어짐
 │→ 마지막 헤어짐
 │→ 이제 만나지 않는 헤어짐
 └ …

한자말 '이별' 한 마디를 쓴다 해서 우리 말글이 사라질 까닭은 없습니다. 한자말 '이별' 한 마디가 우리 말글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까닭은 없습니다. 다만, '이별' 한 마디는 우리 말글을 허물거나 흔드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됩니다. 이와 같은 작은 돌멩이가 모이고 모여 큰 바위와 같은 힘을 냅니다. 처음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였을 테지만, 이내 숱한 돌멩이가 가득 쌓여 시원하고 힘차던 물줄기가 막히며 고인 물이 되고 맙니다.

낱말 하나하나를 돌아본다면 굳이 안 써야 할 까닭이 없다 할 만하고, 구태여 이러한 낱말까지 안 써야 하느냐고 투정할 만하며, 이런 낱말 하나가 무슨 대수냐 여길 만합니다. 틀림없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이런 생각조차 없이 이냥저냥 쓰는 사람이 많으며, 말과 넋과 삶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살피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 아내와의 이별
 │
 │→ 아내와 헤어짐
 │→ 아내와 갈라짐
 │→ 아내와 갈라섬
 │→ 아내와 따로살기
 │→ 아내와 갈라서기
 │→ 아내와 헤어지기
 └ …

우리 말은 '헤어지다'입니다. 또는 '갈라서다'입니다. 또는 '갈라지다'이고 '흩어지다'이며 '떨어지다'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아내와의 이별"을 "아내와 따로살기"로 풀어낼 수 있는 만큼, '따로살다' 같은 낱말을 쓸 수 있습니다. '떨어져 살다'라 말할 수 있고, '갈라져 살다'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별'은 이름씨이고 '이별하다'는 움직씨라면, '헤어짐'과 '헤어지기'를 이름씨로 삼고, '헤어지다'를 움직씨로 삼을 수 있어요.

 ┌ 친구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
 │→ 친구한테 헤어지자고 말했다
 │→ 동무한테 그만 만나자 했다
 │→ 동무한테 우리 헤어지자 했다
 │→ 동무한테 서로 만나지 말자 했다
 └ …

헤어지는 일이란 '안 만나는' 일이거나 '그만 만나는' 일입니다. '다시 안 보는' 일이거나 '다시 마주하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곰곰이 돌아보며 우리 넋을 담아 우리 말을 하고 있다면, '헤어지다' 한 마디는 좋은 말밑이 되어 숱한 다른 말나무로 뻗어 나갑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찬찬히 둘러보며 우리 얼을 실어 우리 글을 쓰고 있다면, '헤어지다'를 나타낼 수많은 글월과 글투와 글씨와 글결을 일굴 수 있습니다.

애써 쓰려고 할 때에 싱그러우며 새로운 말투가 태어납니다. 힘껏 갈고닦으려 할 때에 튼튼하며 아름다운 말결이 꽃피웁니다. 몸소 부둥켜안으며 사랑하고자 할 때에 맑고 밝은 말빛이 반짝입니다.

 ┌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다
 │
 │→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다
 │→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지다
 │→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다
 │→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다
 │→ 사랑하는 사람과 등을 돌리다
 │→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길을 가다
 └ …

사람들은 서로 만나기에 서로 헤어집니다. '만남'이라는 낱말이 있어 '헤어짐'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아귀를 맞추는 우리 말입니다. 흐름을 살피고 앞뒤를 살뜰히 잇는 우리 글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는 모습은 여러 가지이며, 이 여러 가지로 다른 모습만큼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를 다 다른 말씨로 드러내 보입니다. 헤어지는 모습도 저마다 달라, 이토록 저마다 다른 헤어지는 모습이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말씨와 느낌을 담아 다 달리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자말 '이별'이 좋다고 느끼면 써야 합니다. 한자말 '이별'에는 이 낱말로만 나타내거나 드러낼 말빛이나 말느낌이 있다고 여기면 이 낱말을 쓸 노릇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말 '헤어짐'에는 이 낱말로만 나타내거나 드러낼 말빛과 말느낌이 있음을 깨닫거나 알아채야 하며, '헤어짐'은 우리 말이요 '이별'은 한자말임을 똑똑히 살피고 있어야 합니다. '바이바이'라 인사한다고 하더라도 이 '바이바이'가 영어인 줄 똑똑히 느끼고 있어야 하고, '카센타'에 자동차를 고치려고 맡긴다 하여도 '카센타'가 우리 말이 아닌 영어인 줄 옳게 알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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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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