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323) 신사적 2

― '신사적이고 멋진 사람', '꽤 신사적이니까' 다듬기

등록 2010.07.26 19:42수정 2010.07.2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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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신사적이고 멋진 사람

 

.. 키가 큰 사람이네. 딱딱한 느낌인데 혹시 신사적이고 멋진 사람이면 애인 삼을까 ..  <소노다 마사하루/오근영 옮김-교실 일기>(양철북,2006) 199쪽

 

'혹시(或是)'는 '어쩌면'이나 '모르지만'이나 '알고 보면'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애인(愛人) 삼을까"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내 짝으로 삼을까"나 "사랑해 볼까"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 신사적이고 멋진 사람이면

 │

 │→ 사내답고 멋진 사람이면

 │→ 예의바르고 멋진 사람이면

 │→ 다부지고 멋진 사람이면

 │→ 착하고 멋진 사람이면

 └ …

 

'신사다운' 모습이란 예의를 차릴 줄 알거나 점잖은 모습입니다.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사람 가운데 사내라면, '사내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집이라면 '계집답다'고 할 텐데, 오늘날 우리 터전에서 '계집'은 좋게 들리지 못하는 말이니 '여자답다'로 써야겠지요.

 

사내다운 사람이라면, 멋진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보기글에 "신사적이고 멋진 사람"이라고 나오네요. 사내다워 멋진 사람인데 또 '멋진'이 끼어든 셈일까요?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는 "다부지고 멋진"이나 "착하고 멋진"처럼 써 보면 어떨까 싶군요. "씩씩하고 멋진"이라든지 "잘생기고 멋진"이나 "아름답고 멋진"이라 해 볼 수 있을 테고요. "괜찮고 멋진"이나 "점잖고 멋진"이라든지 "훌륭하고 멋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 그 사람 속내나 마음씨가 어떠한지 모르니까요.

 

 

ㄴ. 꽤 신사적이니까

 

.. "뭐, 걱정할 건 없다. 녀석들 그래도 꽤 신사적이니까 그렇게 나쁘게는 안 할 거야." ..  <오카 슈조/김정화 옮김-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웅진주니어,2010) 59쪽

 

"걱정할 건 없다"는 "걱정 안 해도 된다"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나 "걱정은 없다"로 다듬고, "나쁘게는 안 할 거야"는 "나쁘게는 안 할 테다"나 "나쁘게는 안 한다"로 다듬어 줍니다. 줄줄이 '것(건/거)'이 끼어들고 있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이처럼 '것'이나 '건'이나 '거'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함부로 쓰고 있습니다. 써야 할 자리라면 알맞게 쓰면 되지만, 쓰지 않아야 할 자리나 쓸 까닭이 없는 자리에까지 마구 쓰고 있어요. 겉으로는 우리 말이지만 속으로는 우리 말이 아니요, 널리널리 우리 말을 나눈다고 하지만 참다운 말과 글을 일구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 꽤 신사적이니까

 │

 │→ 꽤 점잖으니까

 │→ 꽤 괜찮으니까

 └ …

 

함부로 굴지 않는다고 해서 '신사적'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일본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자리에 으레 '신사적'이라는 말마디가 튀어나옵니다. 일본말을 우리 말로 옮기면서 '紳士的'을 한글로 '신사적'이라고 적는 셈 아닌가 싶습니다. '紳士的'을 '신사적'으로 적는다고 번역이 되지 않는데, 그러니까 'bookstore'를 '북스토어'로 적는다고 번역이 되지 않는데, 알뜰살뜰 알맞게 가다듬고 추스를 말글을 잊고 있구나 싶습니다.

 

더군다나 이 보기글은 동화책 글월입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는 동화책 글월에 '신사적'이라는 낱말을 적어 놓으면 아이들은 어린 나날부터 이 낱말에 익숙해지고 맙니다. 동화책을 옮긴 분이나 동화책을 펴낸 분이나 '아이 눈높이에 알맞게 다스릴 낱말'이 어떠한가를 살피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올바르게 배우거나 익힐 말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는 매무새입니다. 어린 날 버릇이 여든 간다는 옛말처럼, 어린 날부터 바르고 곧고 살갑고 따뜻하며 사랑스럽고 좋은 말을 들으면서 자라날 아이들인데,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마음밭과 말밭을 어지러이 휘젓고 있구나 싶은 모양새입니다.

 

 ┌ 녀석들 그래도 꽤 착하니까

 ├ 녀석들 그래도 꽤 마음이 좋으니까

 ├ 녀석들 그래도 꽤 너그러우니까

 └ …

 

거리를 걷다 보면 'since'라고 적은 글월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무슨무슨 가게를 언제부터 열었는가를 밝히고자 간판 귀퉁이에 적은 글월입니다. '부터'라고 적은 가게는 아직 보지 못했고, 햇수를 밝히려고 하는 가게는 한결같이 알파벳으로 'since'를 적어 놓고 있습니다. 가게를 고치거나 손질하면서 한동안 닫아 놓고 있을 때에는 '곧 다시 엽니다' 같은 글월을 적어 놓지 않고 'coming soon' 같은 글월을 적어 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이름쪽을 주고받으면서 살펴보면, 웬만한 분들은 'T'나 'A'나 'F' 같은 알파벳을 즐겨씁니다. '전화'와 '사는곳(일터)'과 '팩스'를 가리키는 알파벳입니다. '전화'라 적으면 되지만 애써 'phone'이라 적는 분이 많으며, '손전화'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휴대폰'이라 적으면 될 텐데 'mobile'이라 적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우리 식구는 되도록 생협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하여 먹고 있는데, 생협에서 다루는 먹을거리에는 으레 '무농약'이라는 글월이 적혀 있습니다. '농약 안 쓴'이나 '농약 안 친'이나 '농약 없는'이라는 글월을 적지 않습니다. 고작 한 마디일 뿐이라 하더라도 좀더 손쉽고 살갑게 적바림하고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한다고 할까요. '마른 표고버섯'이라 이름붙이지 못하고 '건 표고버섯'이라 하고, '달걀'을 놓고도 그냥저냥 '계란'이라 하고들 있습니다.

 

 ┌ 녀석들 그래도 꽤 미더우니까

 ├ 녀석들 그래도 꽤 믿음직하니까

 ├ 녀석들 그래도 꽤 믿을 만하니까

 └ …

 

창작이란 모두 문학이듯, 번역이란 모두 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번역을 문학답게 가누는 분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앞으로는 번역 또한 문학길을 걸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어른문학도 문학이요 어린이문학도 문학입니다. 문학이란 말을 다루는 일이고, 말을 다루는 일이란 말재주나 말장난이 아닌 말가꿈과 말나눔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화책 하나에 적바림하는 말 또한 아름다운 말이 되도록 가누고, 신문 1쪽에든 자그마한 귀퉁이에든 자리하는 기사글 하나 또한 아름다운 글이 되도록 가눌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지 한 통과 쪽글 하나에도 내 아름다운 넋을 내 아름다운 말로 담으면서 서로서로 아름다움을 나누는 우리 삶이 되도록 가눌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7.26 19:42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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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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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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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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