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14)

― '두 사람의 존재를 확인', '아내의 존재' 다듬기

등록 2010.07.24 19:10수정 2010.07.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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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두 사람의 존재를 확인

 

.. 어느 날 아파트 주변을 낯선 남자 두 명이 서성거리고 있다고 동네 아줌마가 전화로 알려주었다. 나는 두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조선대학 교무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진희/이규수 옮김-해협,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 171쪽

 

'주변(周邊)'은 '둘레'나 '언저리'로 손보고, "두 명(名)"은 "두 사람"이나 "둘"로 손봅니다. '확인(確認)하고'는 '알아보고'나 '살펴보고'로 손질해 줍니다.

 

 ┌ 두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

 │→ 두 사람이 있음을 살펴보고

 │→ 두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보고

 │→ 두 사람을 곰곰이 살펴보고

 │→ 두 사람을 찬찬히 살피고

 └ …

 

두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음을 확인했다면, 두 사람이 '있음'을 알아보았다는 소리입니다. 또는, '서성거리고 있음'을 두고 한자말 '존재'로 가리키는 셈입니다. 아니면, 서성거리는 두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세 가지 느낌을 모두 나타내 보고자 "두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처럼 적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지만, 그냥저냥 이와 같이 쓰고 말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느낌을 나타내려고 하는지를 찬찬히 밝혀 주어야 알맞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가를 낱낱이 드러내 주어야 올바릅니다. 말뜻과 함께 말느낌을 살피고, 말투와 함께 말매무새를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ㄴ. 아내의 존재

 

.. 난 잃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내의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 ..  <토우마 (2)>(서울문화사,2009) 77쪽

 

"잃기 전(前)까지는"은 "잃기 앞서까지는"으로 다듬습니다. 또는 "잃을 때까지는"이나 "잃는 그날까지는"으로 다듬어 줍니다. 흔히 쓰는 말투이지만, 조금씩 생각을 넓히면 저마다 다 다르며 더 깊이 나타내 보는 말투를 찾을 수 있습니다.

 

 ┌ 아내의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

 │

 │→ 아내가 나한테 얼마나 컸는지

 │→ 아내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 아내가 있던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 아내가 지키던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 …

 

있을 때 잘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있는 동안 잘하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우리한테 우리 말이 넉넉하게 있는 동안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잘 가꾸면 좋으련만, 우리는 우리 말을 잃기 앞서까지는 우리 말을 알차게 가꾸며 보듬으려고 마음을 쓰지 못합니다. 아마 앞으로 우리 겨레가 우리 터전에서 우리 말을 잃고 나야 비로소 몇몇 사람들은 '왜 예전에는 제대로 돌보며 북돋우지 못했을까'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라 봅니다. 그리고 우리 겨레가 우리 터전에서 우리 말을 잃은 뒤에도 똑같이 '어차피 잘 되었네. 이제부터는 마음껏 새로운(바깥) 말을 쓰며 살자' 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잃은 말을 안타까이 여기는 사람보다, 우리가 잃은 말을 반기는 사람이 많을는지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제강점기에 우리 말글을 지키거나 가꾸려고 한 사람보다 우리 말글은 깡그리 잊고 일본말만 알뜰살뜰 배우며 밥그릇 지키기를 하려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영어바람에 휩쓸리는 모습하고도 같습니다. 이런 흐름이나 물결은 앞으로라고 나아지거나 거듭나거나 달라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아름다운 길을 걸으려 하는 사람이야 말뿐 아니라 넋과 삶을 아름답게 붙잡으려고 합니다. 처음부터 돈과 이름과 힘을 움켜쥐고픈 사람은 노상 어리석은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갑니다. 되레 어리석은 길을 자못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 아내가 떠나고 남은 자리가 얼마나 큰지

 ├ 아내가 없는 빈 자리가 얼마나 큰지

 ├ 아내 없이 홀로 지내는 자리가 얼마나 쓸쓸한지

 └ …

 

비어 있는 자리를 바라보면 씁쓸합니다. 비어 있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곱씹으면 괴롭습니다.

 

그런데 비어 있는 자리란 새로운 이야기가 깃들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빈 자리란 곧 열린 자리입니다. 안타깝고 슬프나, 지난날 이야기는 가슴에 묻어 두고, 오늘날 이야기를 새로 일구면서 채울 자리가 되곤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 삶과 넋과 말 모두 텅텅 비도록 내팽개칩니다. 제 둘레 가까운 사람을 만나든,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헤아리든, 누구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들 삶이 비고 넋이 비고 말이 비어 있습니다. 이렇게 빈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허전하며 힘겹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비어 있기 때문에 차근차근 새마음과 새힘으로 새말을 아로새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새삶을 가꾸어 보고 새넋을 추슬러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우리 말이기 때문에,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진 대로 어루만지면서 새옷을 입혀 봅니다. 조각조각 부서지는 우리 글인 까닭에, 이처럼 조각조각 부서진 대로 부둥켜안으며 새빛을 발라 봅니다.

 

그동안 이 겨레붙이가 써 온 말자취를 돌아봅니다. 앞으로 우리 겨레붙이가 함께 나눌 말빛을 그려 봅니다. 오래오래 살릴 만한 말이라면 살려 보고자 몸부림을 쳐 보고, 새롭게 빚을 만한 말이라면 살며시 빚어 보고자 용을 씁니다. 우리 동네 이웃 할매와 할배가 '헐리고 빈 집터'에 씨앗을 심어 골목밭으로 일구듯, 저는 제 둘레 비어 버린 사람들 마음밭과 말밭에 마음씨와 말씨 하나를 조용히 심어서 일구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7.24 19:10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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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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