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322) 신사적 1

― '아주 신사적으로 서로 헤어진다' 다듬기

등록 2010.07.22 13:14수정 2010.07.2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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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적으로 서로 헤어진다

.. 그러나 만약 그동안에 암놈의 애정이 식어져 버리면 암놈은 수놈이 만든 산란장을 떠나 버리고 만다. 이럴 때는 아주 신사적으로 서로 헤어진다 ..  <정문기-어류박물지>(일지사,1974) 45쪽


'만약(萬若)'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자칫'이나 '어쩌다가'로 손볼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좋은 우리 말이 있으니 굳이 '애정(愛情)'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산란장(産卵場)'은 '보금자리'로 손질합니다. '이별(離別)한다'라 하지 않고 '헤어진다'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 신사적(紳士的) :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   - 신사적 태도 / 신사적인 사람 / 신사적으로 대하다 /
 │     문제를 신사적으로 해결하다
 ├ 신사(紳士)
 │  (1)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
 │   - 중년 신사 / 보기만 해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로 기품 있는 신사
 │  (2) 보통의 남자를 대접하여 이르는 말
 │   - 신사 네 명과 숙녀 세 명이 가고 있다
 │
 ├ 아주 신사적으로 서로 헤어진다
 │→ 아주 깨끗하게 서로 헤어진다
 │→ 아주 점잖게 서로 헤어진다
 │→ 아주 얌전히 서로 헤어진다
 │→ 아주 조용히 서로 헤어진다
 │→ 아주 뒤도 안 보고 서로 헤어진다
 └ …

어린 날부터 운동경기를 즐겼고,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중계도 곧잘 보았습니다. 고향 인천에서는 야구를 가장 많이 자주 했고, 더러더러 공차기를 했습니다. 다른 놀이도 끝없이 즐겼는데, 코흘리개 어린이들 입에서 '비신사적'이라는 말마디가 쉽게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저나 동무들이나 텔레비전 운동경기 중계에서 "비신사적 행위"라는 말마디를 참으로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비신사적 행위"란 "남모르게 규칙을 어기는 나쁜 짓"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말마디가 얼마나 알맞을 말마디요, 우리들이 쓸 만한가 아닌가 하는 대목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익살꾼이 내놓는 유행말처럼 익히 쓰는 말마디였습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는 말마디도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에서 자주 들으면서 익숙합니다.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일 텐데, 텔레비전이란 아이들 말과 글에 깊이 파고듭니다. 좋은 쪽으로든 궂은 쪽으로든 아이들 말과 글에 속속들이 스며듭니다. 예나 이제나 방송말을 돌아보면 좋은 쪽보다는 궂은 쪽으로 기울어 있어 안타깝게도 아이들한테 궂은 말과 글에 젖어들도록 하고 있습니다만, 방송 일꾼 스스로 이 대목을 바로잡거나 손질하거나 가다듬는 매무새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집에 텔레비전 들여놓는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서 하나하나 가리키고 짚으면서 "이런 말은 올바르지 않구나"라든지 "저런 말은 바로잡아야겠구나"라고 이야기하며 오순도순 말살림을 하는 모습 또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신사적 태도 → 점잖은 몸가짐 / 바른 몸가짐
 └ 신사적인 사람 → 점잖은 사람 / 바른 사람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을 뜻한다는 한자말 '신사 + 적'입니다. 여기에서 '예의(禮義)'란 무엇인가 궁금하여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과 의리"라고 풀이합니다. 다시금 '예절(禮節)'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예절' 말뜻은 "예의에 관한 모든 절차나 질서"로 풀이합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돌아본다면 '예의 → 예절'이고, '예절 → 예의'입니다. 이야말로 엉터리 말풀이이고, 더할 나위 없이 형편없는 국어사전 짜임새입니다.

다만, 이모저모 곱씹으면서 '예절'이든 '예의'이든 "사람이 지킬 매무새나 몸가짐"이라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신사적'이란 "지킬 일을 곧고 바르게 잘 지키는"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착한 사람"이 "신사적인 인물"이요, 때와 곳에 따라서는 "다소곳한 사람"이나 "얌전한 사람"이나 "바른 사람"이나 "올바른 사람"이나 "좋은 사람"으로 일컬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 신사적으로 대하다 → 점잖게 맞이하다 / 바르게 마주하다
 └ 신사적으로 해결하다 → 점잖게 풀다 / 올바르게 풀다

보기글을 새삼스레 곰곰이 짚어 봅니다. 어떤 일을 '신사적으로' 풀자고 나선다고 한다면, 이는 '깨끗하게' 풀거나 '말로' 풀거나 '조용히' 풀거나 '군더더기없이' 풀거나 '속임수없이' 풀거나 '서로 다치게 하지 말고' 풀거나 '얼굴 찌푸리지 말고' 풀거나 '좋은 말로' 풀자는 소리입니다. "신사적으로 헤어진다"는 소리란 "뒷말이 없도록 헤어진다"는 소리요, "깨끗이 헤어진다"는 소리이고, "말끔히 헤어진다"는 소리입니다.

우리 삶자락을 따지면, 이 나라에는 '신사'란 없었고 '신사답게' 일을 맺고 풀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숙녀' 또한 없습니다. 'lady'와 'gentleman'을 우리 말로 옮기려고 하다 보니 어쩌는 수 없이 '신사'와 '숙녀'라 하는 한자말을 어찌저찌 받아들여서 쓴다 할 텐데,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점잖거나 바르거나 착하거나 맑거나 고운 모습을 말해 왔습니다. 느낌 그대로 말하고 삶 그대로 말하며 매무새 그대로 말해 왔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신사'하고 '숙녀'라는 낱말을 아예 안 쓸 수는 없다지만, '신사적'이라는 말투를 쓰고 싶다면 '숙녀적'이라는 말투도 써야 하겠지요? 틀림없이 어디에선가 누군가 '숙녀적' 같은 말투도 쓰지 않겠느냐 싶은데, 올바르게 가누는 우리 말투라 할 때에는 남자와 여자를 따로 갈라서 '신사적'이니 '숙녀적'이니 읊지 않습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똑같은 사람이라, '사람다운'을 이야기합니다. 사람다운 매무새란 '곧은' 매무새이고 '착한' 매무새이며 '좋은' 매무새입니다. 곧고 착하고 좋은 매무새를 이어나가며 차츰차츰 '고운' 매무새로 발돋움하고, '멋진' 매무새도 될 테며, '사랑스러운' 매무새도 되었다가 '훌륭한' 매무새로 우뚝 서기도 하겠지요.

참된 매무새를 살리며 참된 삶으로 북돋우고, 참된 넋을 가꾸며 참된 말을 일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매무새란 한 마디로 '참된' 매무새요 '참다운' 몸가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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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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